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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Oct 14. 2019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하자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크 라캉


 이 말은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그로부터 만족을 얻는 인간의 본성을 얘기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달과 사회화 과정에서 이 본성이 나타난다. 맨 처음에는 부모가 원하는 것을 행한다. 아기가 웃었는데 부모가 좋아하면 아기는 더 웃는다. 아기가 걷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박수 쳐주면 계속 걸으려 한다. 이 과정은 성장해감에 따라 대상이 옮겨질 뿐 형태는 비슷하게 나타난다. 성적을 잘 받으면 선생님이 좋아해 주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 한다. 친구들에게 착하게 대하면 나를 좋아해 주니 더욱 친구들에게 착하게 대한다. 이렇게 부모, 학교, 친구에서 좋아하는 사람, 상사에게로 뻗어간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사회화가 되어간다는 말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욕망과 내 욕망이 충돌할 때 일어난다. 매번 다른 사람만 만족시키며 살아갈 수는 없다. 내 욕망이 무엇인지 깨닫고 다른 사람의 욕망과 균형을 이루며 내 욕망을 조금씩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도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고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느낌을 받을 때가 온다. 도덕 시간에 나오는 얘기던가. 전문용어로 ‘자아성찰’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어야 한다.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인정’을 받는 것은 기분이 좋다. 아무 대가 없이 그저 베푸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베푼 만큼의 인정을 받는 것이 다시 베풀고자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의 인정, 타자의 시선에 종속될 위험도 크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중독성이 있다. sns에 좋아요를 받고 댓글이 달리는 것에서 나와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의 칭찬까지, 받아도 질리지가 않고 받을수록 집착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내 욕망을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욕망과 충돌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쉽게 내 욕망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지만 애인이 원하는 것이 내 것과 다르면 쉽게 말하기 어렵다. 내가 원하는 전공, 내가 원하는 직업이 있어도 사회의 시선과 부모님의 기대와 다르다면 쉽게 내 뜻을 관철시킬 수 없다. 부모님도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지만 자식과 가족들을 생각해 포기한 것이 많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는 날이 온다. ‘내가 지금껏 남의 인생을 살아왔구나.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지 못했구나’


 29살 밖에 되지 않은 아직 어린애가 인생을 다 산 것처럼 가르치려 든다고 반감이 들지 모르겠다. 사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고 2012년 베스트셀러인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 원제는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 - 의 저자 브로니 웨어의 말이다. 


저는 완화 치료사(호스피스)로 수년간 일했어요. 제가 보는 환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숨을 거둘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었죠. 저는 그분들의 마지막 날을 지켜주면서 그분들과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냈어요. 저는 그분들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즐거웠던 여행,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죠. 헌데 그분들이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후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분들이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한다고 얘기한 것들 중 몇 가지들은 이상하리 만큼 비슷했어요.


저자가 말하는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이다.

1.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삶을 산 것

2.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

3.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은 것

4. 옛 친구들과 연락이 끊긴 것

5. 변화를 두려워해 즐겁게 살지 못한 것


1, 3, 5번은 모두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과 욕망 때문에 나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삶을 산 것’은 다섯 가지 중 53%를 차지하고 압도적 1위를 차지한 후회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전혀 안 보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눈치만 보다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은 더욱 비참한 것 같다. 



“우물쭈물 살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_조지 버나드 쇼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아직 다른 사람에게 필요 이상 맞추며 살아간다. 내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틀렸다’는 느낌을 주기 싫고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 싫어서 내가 내키지 않아도 상대에게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꼭 했어야 하는 말을 참고 넘어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생각, 감정을 온전히 말 못 할 때가 많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명이 양보해서 평화롭게 넘어간 것 같지만, 이게 장기적으로 쌓이면 균형이 깨어진다. 참는 쪽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결국 곪아서 터지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관성이 있어서 계속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면 더욱 큰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게 되고 상대에게 종속되거나 관계가 깨어진다. 


 여러 번 데인 이후로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웬만하면 말하려 노력한다. 상대의 기분을 생각해 말 못 하면 결국 관계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하려 노력한다. 실패하면 그걸로 자양분이 되지만 시도하지 않고 끝에 후회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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