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대화’는 참 중요하다. 타인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역시 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자가 등장하면서 편지로 소통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편지는 말과는 목적이 다르고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누기가 어렵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소통 방식이다. 편지의 등장에도 소통의 대부분은 면대면으로 하는 대화로 이루어졌다.
전화가 등장하면서 대화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얻는 비언어적 정보를 얻지 못한다. 면대면 소통 방식보다는 대화의 질이 떨어진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로 소통의 방식이 급변한다. 기존의 편지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라는 단점을 '실시간’이라는 장점으로 보완하게 되었다. 이메일과 메신저가 발달하고 sns로 소통하는 일이 많아졌다. 더 이상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에 연결된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소통방식의 변화는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꽤 많다. 나는 오늘 여기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 방식(이하 인터넷 소통)의 단점에 대해 지적해보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화’의 초점은 용건만 주고받는 업무용 대화가 아닌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사적인 대화에 중심을 뒀다)
첫 번째, 인터넷 소통은 흐름이 일정하지 않다. 면대면 대화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상대방에게 더 집중하고 대화가 밀도 있게 진행된다. 상대방의 말에 곧바로 피드백을 줄 수 있고 나도 마찬가지로 응답을 바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소통은 그런 흐름과 무관하다. 내가 응답을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다. 이것은 큰 장점이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아침에 받은 질문을 점심 먹고 답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기 전에 받은 카톡을 일어나서 답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정한 흐름이 없고 맥락이 끊어진다. 메시지를 처음 받을 때의 내 상태와 답장을 줄 때의 내 상태가 다를 수도 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흐름이 끊어진다면 깊이 있는 대화가 힘들다는 것은 자명하다.
두 번째, 인터넷 소통에는 비언어적 표현에 한계가 있다. 이것은 편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편지는 대화보다는 ‘글쓰기’에 가깝다.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적은 후에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편지로 실시간 소통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텍스트 만으로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다. 편지와 같이 텍스트 기반 소통이지만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대화가 만들어졌다. 말로 하는 대화와 비슷한 것 같지만 여기에는 비언어적 표현이 빠져있다. 전화 통화에서도 상대방의 표정과 몸짓을 볼 수 없어서 상대방의 의도를 100% 읽을 수 없다. 하물며 텍스트로는 어떨까. 말에서 나타나는 억양, 어조, 톤, 빠르기, 호흡, 강조 등 다양한 비언어적 표현을 놓친다. 텍스트로는 ‘ㅋㅋㅋ’, ‘ㅠㅠ’ 같은 이모티콘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 마침표 하나 느낌표 하나 물결 하나 띄어쓰기 하나 잘못해서 의도가 잘못 전달될 수 있다. 텍스트로는 정확한 의사표현, 특히 감정의 전달이 이루어 지기 어렵다.
세 번째,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실제 만남의 중요성을 떨어트린다. 인터넷 소통이 없던 시기에는 만나지 않으면 전화 외에 소통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어린 시절, 전화만 있던 시기에도 친구와 전화로 소통하기보다, 전화는 용건만 묻고 대화는 모두 만나서 이루어졌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시공간을 초월해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도 언제든 연락을 할 수 있고 서울에 있는 친구와도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전화가 힘들면 카톡을 통해도 된다. 이렇게 세상이 좋아지고 간편해지고 많은 사람과 소통이 가능해졌지만, 실제 면대면 만남은 예전보다 더 줄어든 느낌이다. 사회가 더욱 바삐 돌아가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용건이 있거나 간단한 안부 정도는 손가락 몇 번 틱틱하는 것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에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만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네 번째, 실시간 메신저(카톡이나 sns)는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일본의 한 실험에 의하면, 일이나 공부를 할 때 책상에 핸드폰을 올려두기만 해도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일에 집중을 하다가 잠깐 메시지 확인을 위해 스마트폰을 보면, 다시 집중모드로 돌아가기 위해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sns와 메신저 어플은 24시간 켜져 있다. 언제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나도 누군가에게 언제든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그나마 전화 통화는 통화 외의 시간과 구분이 됐지만, 실시간 메신저는 삶과의 경계가 없다. 운동하면서도 가능하고 요리를 하면서도, 출근을 하면서도, 쉬면서도, 자고 일어나서도 소통이 가능하다. 이 말을 바꿔보면 운동도 요리도 휴식도 자는 것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실시간 메시지의 99%는 지금 확인하나 2시간 뒤에 확인하나 큰 차이가 없다.(업무용 메시지 제외)
회사에서는 말보다 메신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게 효율적일 때가 있다고 한다. 기록이 남으니까. 하지만 업무적 소통이 아닌 정서적 교감을 위한 소통은 아무래도 면대면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사람과 직접 교감하는 일은 줄지 않을 것이다. 소통 플랫폼은 소통의 보조 역할을 할 뿐, 주된 소통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표정과 분위기와 몸짓을 보며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읽으면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