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투원 - 피터 틸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 캐피털리스트이자 이 책의 저자인 피터 틸이 사람을 채용할 때 자주 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나는 이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할지 마음속으로 생각해보았다.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세상에 정해진 길은 없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늘 정답은 아니다’. 이 외에 이상하고 급진적인 생각이 많이 떠올랐지만 선뜻 표현하기가 어렵다. 질문 자체가 개인적으로 중요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틸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로벌화(globalization)가 전 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기술(technology)이 더 중요하다.(p.18)
책에서 말하는 글로벌화, 기술의 의미는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의 의미와는 다르다. 책의 맥락에 맞는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틸이 말하는 글로벌화란 다른 말로 수평적 내지는 확장적 진보를 얘기한다. 더 간단히 말해 '효과가 입증된 것을 카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붕어빵 장사가 돈이 된다고 하니까 붕어빵 가게를 차리는 것을 말한다. 1에서 n으로 진보하는 것이다. 이 길은 시장이 보장이 되어있고 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경쟁자가 많다. 잘되는 사업이라 해서 너도 나도 뛰어들면 정작 본인이 먹을 파이는 남아있지 않을지 모른다.
기술이 의미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수직적 진보 내지는 집중적 진보다. 기존에 없던 개념을 만들어 내는 것, 불편함을 점진적으로 개선시키는 정도가 아닌 아예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 0에서 1을 만들어 내는 것, "zero to one" 전략을 책에서는 ‘기술’로 표현한다. 왜 기술이라는 단어를 썼는가 하면, 기술은 근본적으로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기술은 기존에 있던 개념을 단순히 확장시키고 선형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증가, input은 줄어들지만 오히려 output은 늘어나는 기적을 보여준다. 저자는 기술이 0에서 1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한 가지,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 같지 않은(하지만 진실일지도 모르는) 주장을 한다. ‘경쟁은 나쁜 것, 독점은 좋은 것’. 저자는 책의 전반에서 줄기차게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사례와 근거를 내보인다. 이제부터 저자가 왜 ‘경쟁을 피하고 독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간단히 알아보겠다.
1982년 이후 미국은 불명확한 낙관주의 사고방식이 지배해왔다. 불명확한 낙관주의란, 미래가 현재보다 더 좋아지리라 생각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더 좋아지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그 어떤 구체적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가 낙관적이라는 희망을 가지지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장기적 계획 아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고안되어 있는 제품들을 재조합하는 데에 그친다. 현재 미국은 왜 불명확한 낙관주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일까? 미국 시장이 강세되고 금융과 공학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이유도 있지만, 1990년대 일어난 ‘닷컴 버블’이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난 닷컴 버블은 시대적 요구와 맹목적인 광기가 만들어낸 열풍이었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세계에 마땅히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 등장하는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었다. 인터넷을 이용해 사업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투자하고 돈을 빌려주고 보는 그런 광풍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게 들끓던 광기는 18개월 만에 급락하고 시장도 붕괴되었다. 닷컴 버블의 트라우마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남기게 되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미래는 근본적으로 불명확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분기별 계획을 넘어 몇 면 단위의 큰 계획을 그리는 사람은 누구든 과격분자로 치부해버렸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희망은 기술이 아니라 글로벌화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p.31)
미국의 불명확한 사고의 흐름에도 불과하고, 저자는 명확한 미래를 그리고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경쟁 자체가 나쁜 것임을 인식하고 작은 시장이라도 독점적으로 사업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쟁은 자본주의에 피할 수 없는 특징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와 상극인 요소이다.
창조적 독점이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동시에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은 지속 가능한 이윤을 얻는 것이다. 경쟁이란, 아무도 이윤을 얻지 못하고 의미 있게 차별화되는 부분도 없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p.50)
그것은 경쟁이 단순히 경제학적 개념이나 개인 또는 기업이 시장에서 겪어내야 하는 불편함이 아니라 하나의 강박관념, 즉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p.50)
경쟁은 회사의 본질에 집중하기보다 경쟁 그 자체 혹은 경쟁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될 위험이 있다. 또한 경쟁 구도는 해묵은 기회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만들고, 과거에 효과가 있었던 것을 그대로 베끼게 만든다. 경쟁 때문에 사람들은 기회가 없는 곳에서 기회라는 환상을 보기도 한다. 경쟁은 우리가 학교 교육에서부터 산업 전반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경쟁이 없는 것이 좋다. 오히려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독점이야말로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목표이다.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독점 이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목표가 되고, 독점을 이루었을 때 보장되는 이윤이 장기적 계획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계속해서 설명했듯, 1에서 n개를 만든다는 것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말과 같다. 회사는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그것을 독점해야만 한다. 독점의 다른 말은 ‘신기술'이다.
기술 기업은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이익을 목표해야 한다. 단기적 이익을 바라본다는 것은 현재를 바라본다는 것과 같으며 다른 대체 기업이 등장한다면 경쟁을 통해 그 이익마저 없어질 수 있다. 처음 몇 년 간은 손실을 기록하더라도 미래의 매출을 위해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어 정작 회사가 ‘존속’할 수 없게 된다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기업은 정반대의 궤도를 그린다. 기술 기업들은 처음 몇 년 간은 손실을 기록하는 경우도 많다.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려면 시간이 걸리고, 따라서 매출은 뒤늦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술 기업의 가치는 대부분 적어도 10년에서 15년 후에 발생할 것이다.(p.63)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장기적으로 존속하는 회사를 만들 것인가? 저자는 보통 다음의 네 가지 특징을 가진 회사가 미래에도 존속할 독점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 가장 가까운 대체 기술보다 적어도 10배는 더 뛰어나야 진정한 독점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독자 기술이 있으면 해당 제품을 따라 하기 어렵다. 10배의 개선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고안해내는 것이다.
: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할수록 해당 제품이 더 유용하게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같은 sns가 그렇다.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품의 가치가 더 빛이 난다.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려면 초창기 사용자들에게 해당 제품이 가치가 있어야 한다.
: 독점기업은 규모가 커질수록 더 강해진다. 특히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라면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고정비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극적인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훌륭한 신생기업이라면 처음 디자인할 때부터 대규모로 성장할 잠재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 ‘애플’과 같이 강력한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주의할 점은, 브랜드 가치에만 집중해 제품의 실질 가치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위험하고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네 가지 특징을 잘 생각해 회사를 설립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핵심 기술이 생태계를 파괴하면 안 된다. 기존 기업과의 경쟁은 최대한 피하며 win-win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면 경쟁은 피하는 것이 좋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세상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숨겨진 비밀에 대한 믿음을 뿌리째 없애는 여러 가지 추세가 있다.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 틀릴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이미 다 해놓은 것들을 토대로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 나 말고도 똑똑한 인재들이 이 세상에 많다는 의심의 목소리.
틸은 사람들이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않은 영역에 발을 내딛기를 권한다. 0에서 1을 만들어 내려면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처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비밀을 발견할 때 위대한 기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독점기업이 되기 위해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것도 없거나, 무언가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미래는 지금보다는 낫겠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p.250)
글을 마무리하며 짧게나마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짧게 내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우선 저자의 주장은 원론적이고 꽤 단순화된 주장이라 생각한다. 책의 두께(250페이지)를 보면 짧은 지면에 핵심만 담아야 하기에 단순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주장 자체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근에 대가들이 쓴 책과 문장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 세상에 큰 영향을 준 수많은 위인들은 현실의 시각을 뛰어넘어 일반적이지 않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위대함을 얻어낼 수 있었겠지만, 일반적이지 않아서 쉽게 수용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독점 만능론’과 ‘미래 통제’, ‘기계-인간 대체론’이다.
저자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독점기업은 지대 수금원밖에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역동적이라서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을 발명해내는 창조적 독점이 가능하다. 이 주장은 경쟁과 독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한 시장에서 독점을 했다고 경쟁이 없을 수는 없다. 세상이 역동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틸의 주장과는 반대로 세상은 변하기 때문에 한 번 독점이 영원한 독점이 아니게 된다.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경쟁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 경쟁에서 패했고, 그 이전에는 IBM이 독점 경쟁에서 패한 이력이 있다.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도 쉽게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많이 위험한 전략 같다.
‘기업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각화된 위험분산 전략에 적합한 회사인가’라는 금융 질문으로 넘어가는 순간, 벤처 투자는 복권을 사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고 만다.(p.117)
기업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다각화된 위험분산 전략이 꼭 반대되는 개념일까? 둘을 전략적으로 섞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각화된 위험분산 전략이 마치 아무것도 재지 않고 복권을 사듯이 무작정 여러 군데 분산 투자하는 것처럼 설명해 놓았는데(이분은 참 흑백논리를 좋아하신다), 기업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통해 가능성이 있는 영역에 투자 비율을 더 높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여기서도 둘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말고, 불명확성을 인정하되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최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 어떨까? 나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마지막으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노동을 더 쉽게 만들어 준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러한 분야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단순한 제조업 분야에서부터 인력 대체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경리 나라’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번거로운 경리업무를 확 줄여주는 프로그램 경리 나라! 경리를 위한 맞춤 프로그램!’. 경리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사실 많은 경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자동화가 될수록 단순 업무 종사자의 일자리가 그만큼 기계에게 대체되는 것은 상식적인 생각이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컴퓨터 과학 분야만 살펴봐도 그렇다. ‘기계학습’이라는 용어는 ‘대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해야 한다는 편견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유행어는 ‘빅데이터’다.(p.197)
IT 기술 분야의 예시만 제시해놓았지, 기계와 코드가 대체하는 수많은 인력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대목에서 피터 틸은 엘리트주의적 사고방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던 앙투아네트처럼, ‘빅데이터, 기계학습이 나오더라도 인간이 잘하는 영역은 달라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저자는 머리말에서부터 ‘기술이 기적인 이유는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인즉,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최소한 같은 일을 하게 만들어 준다.’라는 말이 아닌가. 기술이 사람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사실을 이상적인 생각에 가려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