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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Jan 06. 2020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을 하라

 어린 시절 ‘피터팬’이라는 동화를 자주 읽었다. 워낙 어릴 때라 구체적인 내용은 다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피터팬이 웬디를 네버랜드로 데려가 후크와 싸워 이기고 돌아온다는 얘기다. 이 동화에는 큰 상징적인 인물이 두 명이 등장한다. 피터팬과 후크 선장. 피터팬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후크 선장은 피터팬과 앙숙이다. 후크 선장은 악어에게 손을 잃고, 동시에 손목시계를 먹혀서 ‘똑딱똑딱’ 시계 소리만 들어도 악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달아난다.  


 피터팬은 나이를 먹지 않는, 어른과 대립하는 ‘아이’를 상징한다. 아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하지만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반면 후크 선장은 제약이 있다. 후크는 시간(악어)에 쫓긴다. 놀랍게도, 악어에게 먹힌 것이 하필 시계였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른은 늘 시간에 쫓긴다. 잠재력과 희망이 점점 줄어든다. 동화에서는 후크 선장이 피터팬을 미워하는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징의 관점으로 본다면 후크는 아마 희망과 잠재력을 지닌 피터팬을 시기하고 질투하였기 때문에 무작정 미워한 게 아닐까. 시간은 항상 우리를 쫓아온다. 시간에 따라 잡힌다고 후크 선장처럼 하나 남은 팔을 빼앗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인류사를 살펴보면 ‘제사’라는 개념은 꽤 오래전, 문자가 발명되기도 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유물론과 환원주의적 시각이 지배적인 지금 시대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멍청하거나 둘 다거나, 어쨌든 현명한 행동으로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따르면, 제사는 현재와 미래를 인식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충동을 자제하는 것이 행동으로 표현된 것이라 말한다.


조상들은 제물을 희생시키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 제 손에 있는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할 테니 미래에 더 나은 것을 얻게 해 주십시오!’
(…)
죽음은 노동을 통해 늦춰진다. 노동은 ‘나중에’ 얻을 이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행위다. 추방이라는 극적인 사건 직후 제물이란 개념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제물과 노동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제물과 노동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동물도 노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본능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비버가 댐을 쌓는 이유는 비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댐을 쌓는다.
  ‘아이고, 힘들다. 며칠 쉬면서 여자 친구랑 해변에 놀러 가고 싶네.’
 비버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p.243)


 노동에 담긴 이런 희생은 심리학적 용어로 ‘만족 지연(delay of gratification)’이라 부른다. 지금 현재의 만족을 늦춰 미래에 더 큰 수확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마시멜로 실험’도 이 만족 지연이 성공을 예측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말한다. 만족을 늦출 수 있다는 발견은 시간의 발견이었고, 시간의 발견은 인과 관계의 발견이었다. 자발적인 인간의 행위가 특정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시간은 우리를 쫓아와 팔을 먹어버리기도 하지만 보상을 주기도 한다.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얻을 더 큰 보상을 위해 지금의 욕구를 자제하고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택한다. 지금 올바르게 행동하면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얻을 수 있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이런 식으로 틀을 잡아왔다. ‘지금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면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저 사람이 나를 돕겠지’, ‘내가 하루에 8시간씩 여기서 일을 해주면 사장은 나에게 그만한 돈을 주겠지’, ‘내가 싫어하는 저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나는 좋은 평판을 얻어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겠지’ 이런 암묵적인 약속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왔다.


 만족 지연의 개념은 중요하다. 그게 인내심이던 그릿이던 졸꾸정신이던 마시멜로던, 뭐라 부르던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좋은 것을 위해 지금을 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YOLO(you only live once.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자)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YOLO는 한때의 유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쉴 때 쉬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 사회가 쉼을 죄악시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숨 막히는 사회와 반대되는 쉼을 향한 욕구가 욜로나 워라밸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뭐든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미래를 계획하고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우리 하나 남은 팔을 마저 먹어치워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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