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말을 잘하고 싶었다. 워낙 말주변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안의 어떤 열등감 같은 것이 있어서 말을 잘해 다른 사람을 쉽게 제압하고 싶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싸움’을 잘하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OO의 레전드 토론 영상’, ‘OO토론 참교육 영상’ 같은 것을 찾아보고 꿈을 키웠다(?).
흔히들 ‘토론’이라고 하면 내 주장을 상대방이 받아들이게 하는 싸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인식은 아무래도 TV토론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특히 정치 토론). 이해관계가 지독하게 얽혀있는 정치판은 말 그대로 전쟁이기 때문에, 총과 칼로 상대방을 제압하기보다는 말과 논리로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 제대로 된 토론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와 TV에서 전쟁 같은 토론만 보게 되니 자연히 ‘토론’이라는 말만 들어도 겁을 낸다. ‘혹시 내가 지면 어떻게 하지?’
“많은 사람들이 토론을 자신의 관점을 관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공격적인 주장을 두고 벌이는 경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이해다. 토론은 자신의 논증을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하도록 돕고, 새로운 생각을 탐색하게 고무하는 일에 더 가깝다. 쟁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하는 사람들 간의 자연스럽고 신나는 상호작용이며, [2] 토론은 새로운 세계, 새로운 기능, 새로운 생각을 가르치는 힘 즉 해방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다른 어떤 지적 노력보다 더 학습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라나는 학생들이 미래를 준비하게 돕는다 “_위키피디아 <토론>
실제로 제대로 된 토론을 겪으면서 이런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 토론은 즐거운 행위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내 의견을 관철시키려 억지를 부리고 감정적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제대로 토론의 자세를 갖추고 토론하면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님을 배우게 되며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더 나아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된다. 토론이 지식과 더불어 겸손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계속 토론 얘기를 해왔지만 사실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대화’다. 대화는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관철시키고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지금도 잘 안 되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이렇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대화는 오직 상대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내가 얼마나 뛰어나고 능력이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보다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본인의 얘기를 꺼내놓기 쉽도록 해주는 나를 더 좋아해 줬다(아니, 내 자랑만 했었을 때는 아무도 안 좋아했겠지...). 이 생각만 바꿔도 대화는 한결 쉬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사람을 안 좋아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