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타를 새로 샀다. 3만 원짜리 싸구려 기타였다. 조금만 쳐도 금방 줄이 풀리고 잘 짚어지지도 않고 화학약품 냄새가 가시지를 않는다. 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언젠가 150만 원 정도 하는 기타를 쳐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3만 원짜리랑은 소리가 달랐다. 비유를 하자면 내 싸구려 기타는 문방구 앞에 파는 불량식품 느낌인데 비싼 기타는 고급 레스토랑의 코스요리 같은 느낌이었다. 150만 원은 비싼 기타도 아니라고 한다. 300만 원, 500만 원, 심지어 1000만 원이 넘는 기타도 많다. 악기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한 가지, 비싼 가격에 비례하여 성능이 좋아지는가? 150만 원 기타보다 300만 원짜리 기타의 성능이 2배 더 좋을까? 그렇지 않다. 가격이 비싸졌다고 해서 성능이 그만큼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가격이 책정되는 기준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 단순하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격이 오르는 것에 비해 성능은 아주 약간 오를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로그함수와 같다.
처음에는 가격을 투자하면 할수록 성능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3만 원짜리 기타를 쓰다 100만 원짜리 기타를 써보면 재질이나 마감, 소리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1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가면 그 차이는 줄어든다. 3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가면 더 줄어들고 1000만 원으로 가면 더 줄어든다. 이는 비단 기타나 악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고 옷이나 가방 같은 명품과 비명품과의 차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반떼나 벤츠 둘 다 만들어진 목적이나 동작 원리는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가격에 비례하여 성능이 증가하지 않는다.
옷도 마찬가지. 동대문 시장에서 1-2만 원 주고 산 셔츠와 톰브라운 셔츠는 소재나 마감의 디테일, 핏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하지만 몇십 배의 가격차이만큼 성능 또한 몇십 배가 나지는 않는다.
가격과 기능이 비례하지 않는다. 이 둘은 로그함수의 관계이다.
사람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로그 함수 그래프에서 y축을 성능 대신 ‘실력’이라고 둔다면 x축은 가격 대신 ‘들이는 노력’으로 둘 수 있다. 처음에는 노력하면 그만큼 실력이 빨리 오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체되고 포화 구간에 들어선다. 그때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이것은 운동이든 악기 연주이든 업무든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디테일에서 실력이 판가름이 나지만 들이는 노력에 비해 실력이 크게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성과를 측정할 정량적인 방법이 없다면 더욱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작은 차이가 많은 차이를 불러온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은 남들보다 ‘조금만 잘하는 것’ 만으로도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것은 마치 지수함수와 같아 보인다.
실력을 올리는 것은 힘들지만, 한 번 올리고 나면 그에 따르는 보상은 역시 비례하지 않는다. 실력이 쌓이는 만큼 보상을 받는 것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번 그렇게 검증을 받고 나면 그 효과가 더 과속화된다. 여기에는 운이 개입한다. 실력이 완전 똑같은 연주자 두 명이 있다고 가정하자. 한 명은 작은 시골 교회에서 반주를 하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본인을 알릴 수 있는 곳에서 연주를 한다. 우연히 누군가의 눈에 띄어 음반을 내게 되고 사람들의 인지도를 얻는다. 여전히 다른 한 명은 교회 반주에 그칠 뿐이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연주자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많아지고 점점 유명해진다. 실력은 같은데 보상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렇게 주목받지 못한 아티스트, 작가, 사업가가 얼마나 많을까.
첫 번째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의 성능을 올리는 일이다. 이는 포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지루하고 단조로운 의식적인 연습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노력에 비해 그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게 된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실력을 쌓으면 보상은 실력차에 비례하여 늘어나지 않는다. 여기에 배팅할만하지 않은가.
두 번째는 ‘운’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기회’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기회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기회를 막상 만나면 딱히 흥미로워 보이지 않는다. 기회를 예측할 수는 없다. 단지 기회(운)를 만날 수 있는 환경에 자주 노출시키는 것이 유일한 전략이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실력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노출시키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며 인정을 받는 현명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