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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Apr 24. 2019

여행이 뭘까

“여행 좋아하세요?”


이 질문에 여행 안 좋아한다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물어보면 물을수록 신기했다. 왜냐면 내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처럼 여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꽤 있겠거니 싶었는데 진짜 거의 없었다. 100이면 95, 아니 어쩌면 99는 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억울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누리는 재미를 나만 못 누리는 건가 싶어서. 아직 여행다운 여행을 가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친구랑 군대 가기 전 기차여행, 전역하고 부산-서울 자전거 여행, 수학여행, 교회 선교 정도 가본 게 전부다. 예산 짜고 장소 조사부터 예약까지, 국내든 해외든 이렇게 각 잡고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남들 다하는 거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그 시간에, 그 돈으로 다른 가치 있는 일을 하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왜 여행을 가세요?”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한 번씩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다양하다. 각자 꽂혔던 여행도 하나씩 있다. 그 추억으로 살고 다시 여행 자금을 모으는 원동력이 된다고들 한다. 누구는 그냥 다른 문화를 체험하고 다른 음식을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누구는 그냥 그 공간이 주는 매력이 있어서 그곳의 카페에서 멍 때리고만 있어도 좋다고 한다. 누구는 일상에서 벗어나 걱정, 고민 다 내려놓고 다른 세상에 있다가 오는 게 좋다고 한다. 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도저히 공감이 안 된다.


 책도 읽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점점 여행이 어떤 것인가 깨닫게 될 거라 생각했다. 경험이 쌓이고 점점 공감력이 올라가면서 ‘아 이래서 여행을 가는구나’하고 와 닿는 이유들이 늘어가기는 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를 여행을 가기 위한 준비로 이끌지는 못했다.


 여행을 가려면 기본적으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그리고 약간의 용기도). 시간이 있어도 돈이 없는 경우가 있고,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둘을 다 충족시키려면 의지를 가지고 돈과 시간을 따로 떼어둬야 한다. 먹고 싶은 게 있고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아야 한다. 여유 시간이 나면 밀린 잠을 자고 싶고 책도 보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지만 그 시간을 따로 빼둬야 한다. 여행의 재미를 알면 알수록 수월해지겠지만, 나는 여행에 돈과 시간을 따로 구별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지 못하고, 여행을 가지 못하니 여행의 재미를 모르고. 악순환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틀간 서울에 올라갔다 온 적이 있다. 전공 관련 최신 기술에 대한 컨퍼런스 때문이었는데, 여기서 여행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부산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코엑스로 가서 등록하고 저녁까지 강연을 듣는다. 중간중간 전시회도 참석해 경품도 받고 신기한 볼거리도 봤다. 간식도 나눠주고 근처 몰에서 맛있는 음식도 사 먹었다. 친구와 둘이 이틀간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같이 강연장을 돌아다니느라 하루에 2만보씩 걸었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친구와 단 둘이 여행을 가서 그 나라 문화를 체험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기념품도 사고 발 아프게 돌아다니고 비행기도 타고 버스도 타고, 마치 여행을 간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낯선 서울 지하철도 1시간 넘게 타보고, 지하철 물품보관함이 고장 나 30분 넘게 쩔쩔매기도 하고. 발상을 약간만 바꾸니 정말 여행을 갔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틀간 서울을 갔다 오고 느낀 것이 많다. 여행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우선 학교를 째고 간 것이기 때문에 뭔가 나쁜 짓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일상을 잠깐이나마 탈출했다는 묘한 주체의식이 느껴졌다. ‘수업 따위는 내 앞길을 막지 못해’하는 기분도 들고 뭔가 멋있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완전 새로운 세상에서 이틀간 살며 당장 그곳의 내일만 고민하지 내 일상의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됐다. 정확하게는 일상의 고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고 거짓말 같이 똑같은 일상을 다시 살아내야 했다. 마치 꿈을 꾸다 온 것 같았다.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은 일인데 2-3주는 지난 일 같다. 서울 가서 사실 엄청 재밌었다거나 유쾌하지는 않았다. 고생을 더 많이 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집에 와보니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래서 다들 여행을 다시 가고 싶어 하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조금은 여행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다음번에 진짜 제대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그래서 남들이 다 좋다는 여행 나도 누려보며 살아야지. 아니더라도 괜찮다. 세상에는 여행 말고도 재밌는 게 많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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