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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May 22. 2023

삽시간 사라질 황홀을 모아 '이어도'를 만들다

그냥 제주 살아요 :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이것저것 하려 갈팡질팡 하다
인생이 그냥저냥 흘러 갑니다
삽시간에 사라질 황홀을 찾아
비에 젖으며 칼바람 맞으며
신명대로 산 당신
오늘은 바람 되어
내 등짝을 번쩍 죽비처럼 후려치고 가는군요
당신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시네요”


김영갑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됐던 해, 떠나보낸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마음들이 모였고 그 때 양인자 작사가와 김희갑 작곡가가 만들었던 노래가 있었다. ‘김영갑씨’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있는 악보를 한참 들여다봤다.

아, 그랬다.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처럼 평범했던 시작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기억했다. 몇 번 눈 인사를 한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마주 앉아 얘기란 것을 한 것은 1998년 쯤이었다.

1985년 제주에 정착해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온 섬을 누비며 제주 자연이 던지는 순간의 표정과 잃어서는 안 될 풍경을 손바닥 만 한 창 안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 건너 들었다.

기자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기는 했지만 신문사에 입사해 겨우 2년 정도 됐을 때였다. 문화부라고 해도 출입처라는 것을 배정받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바위 같은 선배들이 무려 4명이나 있던 터라 소위 순수 문화 영역 쪽으로는 그림자도 걸칠 수 없었다. 그만큼 작가를 직접 만나는 일이 어려웠다. ‘꼭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요청에 잔뜩 긴장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헤아려보니 그 때가 루게릭(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 그의 손발을 잠식하던 무렵이었다. ‘조카처럼 아끼는 제자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무슨 의미인지를 한참 생각해야 했다. 그 제자의 첫 전시 기사를 쓰고 몇 번인가 그와 관련한 소식을 보도자료로 만났다. 2002년 폐교한 삼달분교를 임대해 직접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었다는 말에 놀라 먼 길을 달려 구경이라는 것을 갔었다. 그리고 얼마 없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작품을, 그가 떠난 후 더 많이 봤다. 그 때 소개받았던 박훈일 관장의 시간을 운 좋게 나눌 수 있었다. 

    

찰나가 만든 영겁의 시간


오랜 인연을 따라, 오랜만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갔다.

고 김영갑 작가가 사랑했던 두 곳, 용눈이 오름과 구름 언덕 중 구름 언덕에서 포착한 찰나를 전시하는 중이었다.

개인전만 17차례, ‘마라도' ‘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 등 사진집과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등 자전 에세이집 등을 펴냈던 것들 중 아주 일부였지만, 이내 온통 그것이 됐다. 한참 숨을 멈추고 순간 셔터를 눌렀을, 그 호흡에 맞춰 숨을 쉬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상처받을까 조심스러웠던 보폭에 따라 발을 움직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시장에 한참을 머물었다. 작가는 '찰나'를 말했지만 나의 기간은 그 찰나가 모여 만든 영겁 속에서 허우적댄다. 머뭇머뭇 뒷걸음으로 공간에서 벗어났다. 더 안으로 들어갈 용기를 차마 준비하지 못했다.

그 때 그 제자가 지금 두모악 갤러리의 박훈일 관장이다. 서로 알고 있는 조각들로 '김영갑'이란 이름을 채운다. '왜'에 더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자리를 찾아간다. 생전 전시회에 누굴 초대하거나 사진을 팔 생각을 하지 않는 등 시속에 타협하지 않았던 작가에게 '작품'이란 걸 선물 받았던 것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씩 멀리 떨어져 그를 살폈다. 사회에 나와 만난 이들 중에 가장 먼저 잃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병마와 싸운 지 7년여 시간 동안 눈을 맞춘 횟수는 두 손을 빌리기 부끄러울 정도였다.

어쩌면 그래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 곳에서는 일부러 시간을 느슨하게 늘어뜨리고 미지근한 분위기를 타는. 급하지도 그렇다고 서둘지도 않는다. 모자라다 싶은 기분을 이내 '다음에'로 채운다. 그럴 수 있는 곳이 인생이란 이름 안에 과연 몇 곳이나 될까.

한참 용눈이 오름의 숨으로 채워졌던 공간들이 익숙하게 구름이 빚어낸 것들을 감사하게 품어낸 앵글들에 자리를 내준다.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될 때까지도 시간과 노력이 꽤 걸렸음을 안다.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시련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설레임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어제 하루가 고통스러웠듯, 오늘의 시련이 내일로 이어짐을 알기에 새날이 시작되어도 절망하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따뜻한 봄을 만날 수 있다. 추위가 강할수록 따사로움은 돋보인다. 풀과 나무가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나무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풍성한 열매를 기뻐하지도 우쭐대지도 않는다. 열매는 사람, 곤충, 새들의 몫이다. 아낌없이 모두 나누어주고, 나무는 다시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음을 알았을 때, 주저없이 자신을 자연에 내맡겼다.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나는 그렇게 하늘만을 믿고 나에게 허락된 하루를 감사하며 신명을 다해 오늘을 즐긴다. - 김영갑”


버려진 폐교에 구현한 '이어도'


지금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라 부르지만 원래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성산초등학교 삼달분교에 아이들 소리가 사라진 뒤 늙고 또 낡아가던 공간에 자신을 담을 생각을 했던 이유 중에는 야생화를 사랑하는 오랜 제주 지인도 있다.

다시 공간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떠난 교실은 전시장이 됐고, 흙먼지가 풀썩이던 학교 운동장은 정원이 됐다. 설계도를 그리고 여기는 나무, 저쪽은 돌 하고 척척 짚어넣은 것이 아니라 직접 정직 작업부터 어린 묘목을 구해 심었다. 돌 하나의 위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기도 했다. 마치 그가 제주 삶이 그랬던 것처럼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거저 자리를 잡은 것은 없었다.

대충 묶은 댕기 머리, 낡은 작업복과 카메라, 제주의 바람과 삶을 담은 20만 장의 사진, 그리고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그가 제주에 동화해 남긴 20년이다.

그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유품전시관을 지나면 그가 매료됐던 '삽시간의 황홀'을 마주할 수 있는 '두모악관'과 '하날오름관'이 있다.

은은한 조명과 바닥에 깔린 현무암들이 모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적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작가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20여 년간 그가 제주에 머물며 남긴 사진은 20만 장이 넘는다.

정원이 품은 철학은 더 짙다. 누가 낸 길을 따라 가기 보다는 자연이 남긴 흔적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을 떼던 습관 그대로 혼자만 걸을 수 있는 좁은 길로 한참 서성여도 좋을 길을 만들었다. 이제 10여년의 시간 하늘을 향해 섰던 녹나무의 녹음은 눈맞춤을 좋아한다. 우연처럼 만나지는 야생화 군락도 이름은 다 모르지만 자연의 시간에 맞춰 꽃망울을 틔우는 것들이 반갑다. 그가 꿈꿨던 ’이어도‘의 모습이다.     


"제주를 지켜온 이 땅의 토박이들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상적 삶에 절약, 성실, 절제, 인내, 양보가 보태져야 함을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더라도 나(제주)다움을 지키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제주인들처럼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 김영갑
     

이런 노력들로 2006년 자연환경 및 문화유산 보존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는 김영갑갤러리를 '잘 가꾸어진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국립수목원이 선정한 ’가보고 싶은 정원 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다시 올'이 전제가 되니 뭔가 놓친 것 같다는 기분마저 즐겁다. 용눈이오름을 내려오며, 구름 언덕에서 숨을 고르며 셔터 위 손가락에 집중했던 작가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위치: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
면적:  8,595㎡(2,600평)
개관: 가을(9~11월)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겨울(12~2월) 오전 9시 30분~오후 5시(매주 수요일 휴관)
문의:  064-784-9907
* 입장료(성인 4,5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경로 1,500원)에는 미술관과 정원 관람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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