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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May 28. 2023

‘단순’에서 출발하는 아름다운 여정

그냥 제주 살아요 : 제주 로컬 브랜드 단상 

출발 : 한번 생각해 볼 일


한 번 생각해 보자. 로컬이라고 부르는 것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찾고, 또 얻고 있는가. 그럼 ‘로컬’이란 단어의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고, 로컬의 영역을 어디부터 봐야 하는가 하는 논쟁이 시작될지 모른다.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슬쩍 뭔가를 보태야 할 것 같고, 그 방향은 조금 빗겨 간 것 같다는 아쉬움을 얹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로컬은 ‘삶’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 창업 생태계 영역에서도 그 기준은 달라지지 않는다. 접근 방법이 다양해지고 또 진화할 뿐이다.

‘로컬 브랜드’라고 그리 특별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전의 로컬, 로컬 브랜드는 지역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特産)’의 의미가 강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현재와 가치가 보태지며 성장과 가능성을 여는 임팩트로 영향력이 커졌다.     

제주 대표 로컬브랜드 '한림공원'


#누가 하기 전에 ‘주변’에서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2021 로컬브랜딩스쿨’에 한림공원(대표 송상섭)이 등장했다. 제주 대표 관광시설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지난 과정은 로컬 크리에이터로 시작해 브랜드로 성장한 사례다. 창업자인 송봉규 선생은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만국박람회에서 2차대전 후 일본 재건 과정을 보고 ‘할 일’을 찾았다. 협재굴과 해수욕장, 비양도 일대를 대상으로 한 한림지구 종합관광개발계획 추진이라는 큰 그림을 보기는 했지만 1970년대, 그리고 주인을 찾지 못해 유찰을 거듭하던 읍 지역의 모래땅을 사들인다는 과감한 결정은 환영받지 못했다. 다들 ‘안 된다’고 했지만 2000 트럭 분량의 흙을 복토하고 개당 30원에 수입한 야자 종자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해 현재 9가지 테마공간과 마이스 인프라 등을 갖춘 한림공원을 만들었다. 제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중에 ‘한림’이 앞 대열에 서게 된 배경이 됐고, 한림은 물론 제주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 공헌 활동 등으로 조임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어딘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현재 우리가 ‘로컬 생태계’라고 말하는 것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모든 공동체를 로컬이라고 한다면 글로벌 관점에서는 우리나라가, 국가 기준으로는 지역, 지방, 동네가 그 범주에 들어간다. 어떻게 정의하던 ‘주변’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앞에 ‘나’가 자리를 잡았다. 주관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이거나 하는 차이를 인정한 주변에서 필요를 충족하는 최소의 생활권 단위인 로컬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일은 그래서 중요해졌다. 또 그 때문에 제주가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촘촘하고 긴밀한 연결 ‘여행’하다


섬이라는 지리환경적 배경으로 다른 곳에는 없는 풍부한 재료를 가지고 있는 데다 전통적으로 공동체가 발달한 제주의 인문사회적 특성은 ‘지역화’라는 단어에 한 몸처럼 스며들었다. 전세계적인 인구‧환경 이슈와 연결해 제주가 지닌 생명력이 주목받고 있음 역시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로컬 경제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 대표의 생각에 그래서 공감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호지 대표의 <로컬의 미래>를 다시 읽었다.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한꺼번에 뒤집어버린 상황 속에서 우정과 연대감, 자연과 향토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고 그 핵심에 지역, 공동체가 있다는 주장이다. 기존 경제학 관점에서 로컬 제주는 시장이 작고, 1‧3차산업 중심의 자본 누수가 심한 산업 구조로 한계가 있었지만 로컬 관점에서는 이것이 장점으로 바뀐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긴밀한 연결, 특히 세대를 아울러 촘촘하게 짜인 지역사회 안에서의 협력과 의지는 배후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안정적인 지역 중심의 생계수단을 제공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줄여서 오염과 폐기물을 최소로 만들 수 있는 로컬 실험 역시 제주여서 가능하다. 험난하기는 했지만 관광지 시장으로의 사전 경험은 로컬 브랜드를 키우는 히든카드로 쓰인다.

관광지라고 제주를 펼쳐놨을 때, 이곳을 찾는 사람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여행자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일상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한쪽은 당장 지금 어디에 갈 것인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등을 다른 한쪽은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이 효용가치가 있는지 같은 현재의 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 안에서 잠을 자는 것, 끼니를 해결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일들부터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의 분위기나 친절함, 특별하거나 생경한 경험 등이 소비의 일종으로 전환된다. 이것을 미래까지 고려하며 행동하는 현실과 접목하는 곳곳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만난다.


#흔한 성공 공식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고유 정체성과 지역 특성을 담은 콘셉트. 꾸준한 가치공유로 로컬 브랜드가 성장하고, 다시 그 매력을 좇아 유입 인구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흔한 성공 공식에 대입해 결과를 산출하자고 하면, 사실 답은 없다. 여기서 다시 제주 이야기를 하자면 자체 시장이 크지 않고 원재료 수급 등의 한계가 있다 보니 소량이라도 좋은 제품을 만들거나 가치 발굴 또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진한 연구를 한다. 그렇게 빚은 적절한 브랜드 스토리와 지역의 조화는 공감으로 연결되고 고객충성도와 지지도로 이어진다.


제주를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 사례는 여러 시사점을 준다.

‘Think Global, Act Local’, 큰 시장을 겨냥해 창업한 후 이를 지역 시장 특색에 맞추어 로컬라이징하던 것을 뒤집어 지역형 비즈니스 모형을 만들고 그것을 발판으로 점차 시장으로 확대해나가는 ‘Think Local, Act Global’의 걸음을 걷는 이들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 취향과 가치를 소비하는 흐름이 탄력을 받으면서 기업이 지방 소도시 홍보나 농산물 소비, 환경 문제 해결 등으로 콜라보 하는 일이 확연히 늘었다. 제주맥주는 끊임없이 확장 중인 수제맥주 시장에서 대표 자리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다.

제주맥주의 ‘제주 위트 에일’은 지역적 특색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제주산 유기농 감귤 껍질로 향을 살렸고 흑돼지구이, 고기국수 등 제주 향토 음식과 어울리는 맛을 어필했다.

그 과정에 제주라는 지역이 지닌 청정‧신선한 이미지를 브랜드에 입히면서 국내 수제 맥주는 물론 해외 맥주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생산한 지 2, 3개월이 지나 대형컨테이너에 실려 적도를 거쳐 오는 해외 맥주 브랜드와 비교해 ‘생산 후 한 달 이내 소비’가 가능하도록 한 차별 포인트가 첫 공략 포인트였다면 지금은 동네에서 제주 감성을 또는 제주에서 느꼈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시각과 후각, 미각을 자극하는 것으로 로컬브랜드가 주는 매력을 검증하고 있다.

배러댄서프는 제주다운 라이프스타일을 로컬 브랜드로 만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사업 모델로 삼았다. 파도를 타는 일은 낭만적이지만 그 것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 ‘자연이 곁을 내어줄 때까지’의 느슨하고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비즈니스까지 하는 꿈같은 일을 구현했다.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할 것’은 전설적인 등반가이자 서퍼 그리고 환경운동가인 이본 쉬나드가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1973년부터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원칙이다. 파타고니아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일은 제주와 버무려 지며 보다 유연해졌다. 서핑에서 시작했지만 서프보드, 웨트슈트, 왁스 등 전문용품부터 티셔츠, 모자, 비치타월, 캠핑용품, 홈웨어까지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제품군을 다양화했다. 문화콘텐츠와 공간 체험, 플랫폼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서핑으로 문화를 얘기하는데 그 연결고리가 제주와 생활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2022 로컬파스타

#단순한 시작으로 아름다운 진화를


로컬은 사실상 유기체다. 다윈의 진화론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흔히 알려진 생물계를 포함한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나 진화는 단절이나 불연속성을 보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냉혹한 생존경쟁 속에서 자연에 적응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된다는 이론들이 아니라 <종의 기원>에 적은 말이 그렇다.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 로컬 생태계를 설명하는데 이만큼 적합한 말을 찾기 어렵다. 

제주를 중심으로 한 로컬 브랜드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여러 이점으로 먼저 속도를 낸 부분도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거나 뒷걸음을 하고 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로컬이란 정의에 발 묶여 보지 못하거나 하지 못하는 것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로컬브랜드의 속성은 ‘성공’이 아니라 ‘감동’과 ‘공감’이다. ‘홍보만 잘 하면’, ‘입소문만 타면’의 효과는 일시적인 것이다. 감동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 필요한 사람들과 접촉면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소비 활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다시 생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바로 로컬 브랜드다.

그 길을 내기 위해 먼저 자신에게 투자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할 것을 추천한다. 여행을 하듯 계획을 세우고 부딪히는 것들을 피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자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알고 있던 것도 다른 관점에서 보며,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어떤 계획도 완벽할 수 없어서, 변하고 바꾸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아갈 필요가 있다. 잘해서가 아니라 잘하고 싶어서 계속하게 될 때까지.

이쯤 되면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올만 하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다음에나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요”.     

다 이해한다. 스타트업이란 단어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성장’이라는 단어가 지닌 중압감은 감히 아는 척 하기 힘들 만큼 무겁고 무서운 무엇이다. 

씨앗을 심던, 묘목부터 키우던 적절한 물과 햇볕, 양분이 투입되고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열매를 맺는다. 설익은 것과 대충 자란 것들의 결과가 어떤지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안다.

이 시점에서 전 세계 쉐프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소금을 살살 뿌려볼까 싶다.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말돈 소금이다. 영국의 동쪽 해안 지역에서 생산되는 말돈 소금은 1882년부터 숙련된 아티장들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전통 방식을 지켜오고 있다. 부산에서는 바닷물을 증발시키지 않고 끓여서 얻어낸 자염이 역사를 꺼내 스타트업 영역에서 활용하고 있다. 1900년도 초반까지 생산한 것으로 알려진 자염은 명지도의 갈대로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바닷물을 팔팔 끓여 얻었는데 낙동강 제방 공사와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값싸고 염도가 높은 천일염에 밀려 사라졌었다. 낯설지 않다. 제주의 소금빌레와 ‘사ᆞ갊은 소금’이 보다 흡사하다.

말돈 소금은 블랙워터 하구의 바닷물을 사용하여 만든다. 여과한 바닷물을 큰 철 팬에서 직화로 끓인 뒤 물 표면에 형성된 소금 결정체는 손으로 걷어내 쟁반에 놓고 햇볕에 천천히 말린다.

제주 '삶(아래 아)은 소금'도 시간과 정성으로 만든다. 우리나라 유일의 돌염전인 소금 빌레는 물 빠짐이 좋지 않아 농사짓기 힘들었던 제주 애월 구엄 지역에서는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용암이 바다와 만나 급속하게 식으면서 만들어진 널찍한 판 모양의 지형에 바닷물을 채우고 햇볕에 말리는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었다. 자연에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터라 어느 정도 결정이 생기면 ‘삶는’과정을 거쳐 정제했다. 큰딸에게만 상속했던 귀한 소금밭 전통은 1950년대까지 이어졌고, 지금은 그 형태를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뭔가 반짝이지 않는가. 아직 꺼내지 않은 것들이 활용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다. 설레는 일이다.




* 이 글의 일부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J커넥티드 2023년 봄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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