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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May 25. 2024

조금 느려도 언제나 봄이 있는 그 곳

그냥 제주 살아요 : 빛남을 돕는 초록, 일배움터 

 


초록은 힘이 세다


초록은 힘이 세다. 겨우내 언 가지에 웅크려 움틀 준비를 하고 있든, 둥치에 잔뜩 초록 물을 품고 있든, 꽃 피고 열매 맺고 하는 것들에 밀려 자리를 잃든 세상을 정화하는 역할 만큼은 내놓지 않는다. 도시 경관에 그럴싸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고 한들 회색 콘크리트 경관 속에서 초록을 보는 것은 더없이 반갑고 고맙다.

운동화 끝을 단단히 묶고 숲을 누비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일부러 시간을 내는 수고 대신 가까이 초록에 더해 쉼표 하나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사회복지법인 제주황새왓카리타스가 운영하는 일배움터 유리온실정원이 그렇다.     


누구보다 ‘핫’한 5월에


일배움터 유리온실정원은 어느 곳보다 치열한 ‘5월’의 시간을 보냈다. 가정의 달이라는 수식어가 여기서는 ‘앗 뜨거’가 된다. 어버이날을 시작으로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 등등 ‘꽃이 필요한’ 곳에 맞춘 작업을 했다. 화려함 보다는 정직함과 순수함으로 세상을 설득한다. 그 마음을 아는 이들은 일찍 주문을 넣어 순서를 기다렸다. 그럴 만큼 인기가 있다. 아마도 여유가 있었으면 서툴고 재주 없는 손이라도 보탰을 일이다. 그 것 역시 운이 필요하다. 운이 좋아야 일배움터 직원들의 일손을 돕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 없더라도 함께할 마음을 챙겨 할 일을 찾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얼굴과 마음을 꽃처럼 환하게 할 수 있다.     

“왔어요!” “왔어요?” 던지는 인사도, 돌아오는 질문도 ‘초록’하다, 언제나 그랬다. 


유리온실에서는 청년 장애인을 중심으로 원예 연관 사업이 다양하게 꾸려지고 있다. 온실과 꽃농장에선 사계절 꽃이 핀다. 꽃 보다 웃음꽃이 더 활짝 핀다.

일배움터의 직원 64명 중 46명이 장애인이다. 이들의 퇴사율 0%, 10년 이상 재직률도 50%가 넘는다. 월급이 다른 곳 보다 많은 것도, 쉽게 배워 돈을 버는 구조도 아니지만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곳은 ‘제주형’ 사회적 농장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를 만들고 있다. 그 기운이 초록을 짙게 한다.

제주형 사회적 농장은 지난 2020년 시작됐다. 일배움터(사회복지법인) 외에도 사라숲(농업법인), 공심채(농업법인), 폴개(예비사회적기업) 등이 건강한 초록을 만들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20년 제주형 사회적 농장 지정을 위해, 지난 2월 3일부터 2월 20일까지 농업경영체, 법인, 협동조합, 사회복지법인 등을 대상으로 사업 신청 접수를 받았다.

제주형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사회적 농장 지정)은 농업 활동을 통해 장애인, 노인 등 시회적 취약계층에게 돌봄, 치유, 사회적응,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비(강사비, 작업 보조비, 재료비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제주형 사회적 농업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2018년 8월부터 2019년 7월까지 T/F팀을 구성 운영하면서 2019년 5월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 농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같은 해 9월 조례 시행규칙을 만들었다.


남들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일배움터 입구에는 ‘남들처럼 그렇게 평범하게’란 메시지가 있다.

이곳에서는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각자의 몫’으로 소통한다. 일배움터에서도 온질‧농장을 배경으로 원예교육과 더불어 도자기‧커피 등 꾸준히 관련 일자리를 만들어 장애 청년들의 자립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오영순 원장은 “적성에 맞는 일을 차근차근 찾아가며 맡은 일에 애정을 갖게 되는 과정이 이 공간에서 진행된다.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과 협동하는 훈련도 한다. 온실이지만 사회 교육 놀이터와 비슷한 느낌”이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매체에서 추천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핫(hot) 플레이스’”하고 소개했다.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다. 한참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늘 쫓기는 기분이던 일상이 사라졌다. 은은한 꽃 향기, 풀 냄새에 섞이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제주에서의 ‘초록’은 일상생활 속 힐링 공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능까지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몇 번 곱씹었다. 그렇다. 초록은 반짝이는 색이 아니라 빛남을 돕는 색이다. 이곳이 그렇다.




* 제주도 <제주> 봄호 가이드글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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