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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은 '내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휴대전화 에피소드

by 고미
자신을 그만 들여다봐야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은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과 같거든. 그렇게 되면 자네와 똑같은 모습을 한 모습만 보이게 된다네. 창가로 가게. 그리고 창밖을 내다봐. 어쩌면 지금이 변화가 필요한 때인지도 몰라

#칼 필레머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_중 #코넬대학교_인류 유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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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 전화라 부르는 것들


휴대전화의 역사는 1973년 시작됐다.

이름 그대로 ‘들고 다니는’ 전화기는 길이가 한 뼘이 넘고 무게도 1㎏이 넘는 벽돌이었다. 본격적인 휴대전화 시대가 열린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83년, 국산은 다시 4년을 더한 1989년 생산되기 시작했다.

‘응답하라’언저리 세대였던 덕분에 삐삐라 불렀던 무선 호출기와 공중전화와 휴대전화 사이의 시티폰을 거쳐 휴대전화까지, 그때그때 신문물(?)을 조금 일찍 썼다.

피처폰으로 모*로라와 애니*을 사용하다가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과폰만 쓰고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타고난 기계치에 유행에 둔감한 덕에 추천에 약했다. 간혹 A/S 문제 등이 엮인 적도 있었지만,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성향이 바뀐 적은 없었다.

이전 직업 때문도 있지만 습관처럼 휴대전화가 손에 없으면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빠른 정보 확인과 취합, 전달이 중요했던 일로 강박에 가까울 만큼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었는데, 어이없게도 가장 많이 흘리고 다니는 물건이 ‘휴대전화’다. 어쩌면 얽매여 있던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심이 그런 실수를 빙자한 행동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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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흘려봤나 '손전화'


사실 ‘그럴 리가’ 싶을 정도로 긴장을 하거나 당황해 조금 서두른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휴대전화를 흘렸다. 그리고 조용히 다시 찾았다. 지인이 챙겨주거나 전날 들렀던 가게에서 찾거나, 지난 동선을 더듬어 직접 찾거나 했다.

언젠가 후배 동행 해외 출장에서 기차표를 끊는데 정신이 팔려서 발권기 옆에 두고 이동하는 바람에 휴대전화 혼자 다음 기차를 타고 오기도 했었다. 그나마 말이 통해서, 좀 특이한 휴대전화 케이스를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첫 해외 출장이라 들떠있던 후배까지 사서 고생을 할 뻔했었던 일 정도는, 훗 약과…다.

그리고 구구절절 휴대전화 에피소드가, 늘었다.

작업을 하다 다른 장비는 다 챙겼는데 집에 와서 보니 휴대전화만 안보였다. 제연군에게 전화 한번 해달라고 몇 번 사정을 하고 가방과 차를 다 뒤졌는데 없다. ‘침착하게‘를 중얼거리며 앞선 일정을 확인했다. ’아 거기!!’ 서두르면 마감시간 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칼바람, 늦은 밤에 망설임이 커졌다.

“아드리~ 부탁이 있는데…” “뭔데” “엄마가 휴대전화를….” “아 또야?”

또…라는 단어가 서운했지만, 투덜대면서도 같이 움직여준다. “엄마는 정신을…” 잔소리가 폭발한 아들에게는 아이스크림이 특효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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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게도 OO이 필요해


그래서일까. K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몇 편을 보고 “아!!!”를 외쳤다. 오래전 보고 행복해졌던 영화<인턴>까지 소환했다.

두 작품 다 일에는 프로지만 일상생활은 살짝, 아니 많이 허당인 여성 주인공이 나온다. 그녀들의 곁에는 덜렁거리거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약점을 커버하고 필요한 부분을 적절히 채워주는 파트너가 나온다. ‘필요한’이라고 하지만 거창한 무엇..보다는 세심하게 살펴주는 관심과 지지, 믿음 같은 것들이다.

처음부터 파트너였다기 보다는 서서히 존재감이 커지고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턴>에서는 정년퇴직까지 오랜 가정 + 사회 경력 등등을 작동해 조금 힘을 빼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조언하는 경력 인턴의 #손수건_에 흔들렸다.

<나완비>의 매운 떡볶이와 휘핑 잔뜩 더블 초콜렛 아이스 블렌디드, 그리고 밀착케어…#부럽_가 오래 묵은 소원(?)을 건드렸다.

경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돌봄까지 영역을 확장한 ‘인턴’과 관심과 진심으로 부담을 덜어주는 ‘네 편‘, 이 둘을 합한 '아내'라는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부쩍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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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l하지 않게, 나답게


현실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대신 이제 다시 흘리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은 단 하루를 못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드리 엄마한테 전화 좀 해 주면 안될까”를 연발하고 있었다. 빨래를 개키고 나서 사라진 휴대전화를 수건 사이에서 찾고 또 혼자 흰소리를 쏟아낸다.

“얘(휴대전화)는 또 왜 이래?”

“…”

“분명 잘 뒀었거든…”

“…”

”…네가 엄마를 좀 챙겨주면 좋잖아~“

”엄마, 엄마는 어른이지..그럼 알아서 잘 해야지. Chill하게. 잘 좀해”


#그런거_겠지 #그래도 가끔 내편이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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