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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서라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여성의날 읽기 <여자만의 책장>

by 고미
오늘날 여성이 빠진 함정에는 밀쳐낼 문이 없다.
여성으로 존재하기에 겪어야 하는 또 다른 중압감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하고자 한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도 로비스트도 현수막도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여자만의 책장 #데버라 팰더


#여성’ 담은 책을 읽다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여성들이 '빵과 장미'를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 117년이나 됐다. 생존을 위한 빵과 존엄을 위한 장미를 외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용기 낸’그들의 외침은 아직 진행형이다. 여성을 향한 차별은 아직 공공연히 남아있고, 사회적 약자로 온갖 범죄와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주저앉지도 않았다. 지구, 환경, 인류 같은, 공존과 공생, 회복을 위한 의미있는 움직임의 시작점에는 여성이 있다.


이 날에 맞춰서 고른 것은 아니지만 마침 의미있는 선택이 됐다. 분명 ‘당분간 벽돌책’은 없다고 외친 참이라 몇 번을 망설였지만, 결국 읽을 운명이었던 것으로 위안 삼았다.


앞 벽돌책과는 앞자리가 다르고(517쪽…), 챕터별 구분 외에는 전부 글이지만 문장이 깔끔하고 유려하고 작가의 배경이나 에피소드, 전문가 평가, 시대 상황, 비평 등을 적절하게 정리돼 읽기 좋았다.

무엇보다 소설가이자 편집자인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깊은 식견,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석에 다시 북마크가 늘었다.

# 헤이안 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책은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장편 소설이자 11세기에 지어진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궁중 문학 <겐지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현대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제시되는 책을 통해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어떻게 변하고 확장되어 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것도, 곳곳에 뼈 때리는 비판과 오늘까지 통용되는 이슈들도, 흥미롭다.


리스의 소설은 제인 에어의 최종적인 승리가 다른 여성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고 똑똑히 주장한다. 브론테의 행복한 결말에서 소망이 이뤄진 다고 해서 로맨스 속 보통의 남성 주인공이 여성의 자유를 빼앗고 중혼을 저지르게 몰고 가는 성별 고정관념을 못 본 체해 서도 안 된다.
-광막한 가르가소 바다



'모성의 두 가지 의미'라는 중요한 구분을 제시한다. “한 의미가 다른 의미에 겹쳐져 있다. 하나는 자신의 재생산 능력이나 아이와 형성하는 잠재적인 관계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잠재적인 관계와 모든 여성을 남성의 통제 아래에 고정하려는 제도를 의미한다.".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어머니이면서도 오랫동안 기억되는 글을 남긴 작가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이유는 "어머니로 사는 것은 어느 인간관계와도 비할 수 없는 압도적인 수준으로 계속해서 방해받고 상대에게 반응해주며 상대를 책임져야 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이는 끊임없는 방해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득한 노동!”이 필요한 글쓰기와 대척점에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급과 성별에 따른 제약으로 노동계급과 여성은 목소리를 낼수 없게 되었다. -침묵



# 그런데, 나는 왜 매일 화장을 하는가


"나는 서구 사회에 퍼진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이 .. 권력을 쟁취하려는 여성에게 맞서 자신을 옹호하려는 남성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쥐고 있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울프는 아름다움의 신화가 여성의 신체와 정신을 파괴하고 있다 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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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아름다움의 신화가 여성의 신체와 정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섭식 장애 문제가 대두되고, 불필요하고 위험한 성형수술이 증가하고, 여성 사이에서 시기와 에경쟁이 심해지고 노화를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태도가 나타나 자존감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직장 노동과 가사 노동에 이어 실질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성평등을 달성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도록 여성을 압박하는 '세 번째 일과'가 추가되는 등의 변화를 초래했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작가 샌드라 셰이는 이 신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이들, 같이 육아하는 세심한 남편, 직업적 성취감까지 들어가 거대하게 부풀었을 뿐이다. 이상에 자신을 맞춰보려고 애쓰는 여성은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에 미친 듯이 분노한다." 하나워와 함께 하는 여러 '못된 년'은 프리단을 비롯한 여러 인물이 일으킨 여성운동으로도 여성이 진정한 만족을 얻으려면 애인을 만나 결혼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요구가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페미니즘 때문에 여성의 직업 성취와 자아실현에 새로운 요구 사항이 더해지며 부담이 가중되었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프리단이 『제2 단계』 (1981)에서 지적하듯, 여성성의 신 화는 이제 연애, 일, 가정생활을 모두 능숙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을 기대하는 '페미니스트의 신화'로 이어졌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죄책감, 억울함, 분노가 생기고, 집 안의 못된 년이 날뛰게 된다. -그래, 난 못된 여자다





여성이 권력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외모를 의식하고 자신을 희생하라는 요구도 심해졌다. 그 이전은 남성 중심의 구조 안에서 정형화한 성정체성을 강요받았다.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환상‘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주먹왕 랄프2>(2019)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공주들이 왕관과 코르셋을 벗고 파자마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느끼는 행복감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였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욱죄는 것들


‘여전사‘하고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떠한가. 최근 그려내는 해녀는 또 어떤가.

“여성이 해방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을 이용”하는 아름다움의 신화에 대한 해석이, ‘그래 난 모자라다, 그래서’라는 못된 여성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하고, 소유하는 영웅들만이 아니라, 아픈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봐주며, 슬퍼하는 타인을 보듬어주는 또 다른 롤 모델들은 없는 것일까‘…란 질문을 던지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소유와 권력만이 아니라 연대와 공감의 길을 찾아나가는 모든 과정…어떤 고난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 꿈의 아름다움을 타인과 나눌 줄 아는 여성들, 마침내 자신의 꿈을 세상의 새로운 표준으로 만드는 여성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라 정리한 정여울 작가의 소개글에 깊이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세탁기를 돌리며 ‘오늘 청소는…’을 생각하면서 얼굴에다 사정없이 쿠션 퍼프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본다. 나름의 의식이라고 해명하지만 어설프다. 바꿔야할 것은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멀었다.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 #다른 게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_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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