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냥 제주 살아요 :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by 고미

# 지카유치 우타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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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언가가 ‘없음’은 잘 알아채지만, 무언가가 ‘있음’은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거기 있는 것’을 언어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거기 있는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야 마땅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들이 만약 없어지면 정말로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逆説的にも現代を生きていく私たちは何かが「ない」ことにはよく気づきますが、何かが「ある」ことには気づきません。 いいえ、もっと正確に言えば、ただそこに「ある」という事実を忘れてしまうのです。 そのため、私たちは「ただそこにいるだけ」を言語で説明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ただそこにあるものが実は私たちに与えられたという事実、ただそこにあるということだけでも驚くべきだという事実、そしてそれらがもしなくなったら本当に困難になるという事実を私たちが悟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

내 삶에 과연 있을까…했던 ‘증여‘란 단어가 제법 달큰하게 다가온다.

책에서 증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증여라는 개념은 ’사람’이라 지칭하는 존재를 인지하면서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증여라 표현하지는 않지만 아이를 낳고 또는 무사히 태어날 수 있는 신체적 진화와 산모와 태아가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 등등이 증여의 영역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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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에 대한 새로운, 그러나 익숙한 접근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 되어 말 그대로 대지에 일어선 순간부터, 즉 인류의 여명기부터 '타인에게 받는 증여'와 '타인에게 주는 증여를 전제로 살아가는 것이 운명처럼 정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일반적으로 ‘증여’는 대가 없이 재산이나 물건을 타인에게 주는 행위를 말한다. 법적으로는 증여세가 부과되는 경우도 있고, 경제학에서는 호혜성 없는 일방적 이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인류학적 관점으로의 ‘증여’는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의견을 빌린다. 마르셀 모스는 ‘증여’가 단순히 선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고-되갚기”의 3단계 순환구조라고 설명(『증여론』)한다. ‘증여’를 통해 인간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유지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증여의 종류에는 일단 '선물' 이 있다. 누군가에게서 물건을 건네받는 순간, 그 물건은 더이상 물건이나 상품이 아니게 된다. 선물에는 물건으로서의 가치, 즉 상품 가치에서 벗어난 그리고 시장 가치에 담기지 않는 '잉여'가 포함된다, 그 잉여가 그저 상품이었던 선물에 유일무이한 성질,다르게 말하면 고유성을 부여한다.

증여의 특징은 바로 선물을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 즉 발송인이 되는 게 때로 더 기쁨을 준다는 점에 있다. 또 증여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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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 맺음과 부채의식


증여를 받아 주었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와 무언가 관계를 맺는 것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다만 증여의 핵심은 부채 의식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또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배푸는 것이 그 예이다. 증여의 핵심 두 번째는 신뢰다. 나를 수단으로 이해하는 사회에서는 맑은 마음의 증여가 있을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 사회에서만 증여가 생길 수 있다.

유명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놀이(Sprachspiel)’ 개념과 과학사학자 토머스 새뮤얼 쿤의 ‘변칙 현상anomaly(변칙성, 아노말리)’ 개념을 증여와 연결하고, SF 소설과 고전 문학을 통해서 본 증여까지… 그동안 다 설명하지 못했던 관계의 ‘빈틈‘이 오밀조밀 이어진다.

간혹 상처로 돌아오는 관계의 뾰족한 단면들이 무뎌지고 뭉툭해 지는 느낌이 전해진다면… 이 책에서 ‘증여‘받은 무언가라 생각할 수 있겠다 싶어진다.

마침 선물을 받은 날이었다. 언제던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선물은 조금 특별했다. ’살다보면‘의 영역에서 마음 쓰이는 일이 있던 참이었다. 애써 애정을 쏟았던 일과 관계에서 묘한 불편함을 느꼈고, 어떤 사정이었는지에 대한 공유없이 ’여기가지‘통보를 받았다. 불편한 것은 텍스트로 전해진 무미건조한 메시지의 메마름이었다.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앗다. 텍스트에서 전해지는 딱딱함과 복잡한 과정과 얽힌 내용을 텍스트로만 파악하겠다는 성의없음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했던 마음을 붙들었다. ’이해했다‘내가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그것 뿐이었다. 부채의식을 느끼라고 던진 것이니 나름의 증여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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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선물을 받다


일주일 정도 벌어진 일들을 어느 정도 수습하고 난 뒤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굳이 싶기는 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부채를 돌려주고 싶어 시간을 잡았다. 미룰 이유도 없었다. 한꺼번에 일이 몰리고 꼬이면서 도와줄 인력 하나 없이 혼자 컨트롤해야 했던 상황이나 일방적인 계약 수정 과정에서 생긴 상식밖 결과와 관련한 업체들을 조율하는 문제 등등을 남김없이 전달했다. ’이렇게 듣고 보니 정말 힘들었겠네요‘란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미안하다는 공감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것을 ’그 때 알았으면‘으로 덮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름의 선물을 줬다. ’상황이 돌릴 수도 없고, 이제 와 ’그 때‘를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행여 다른 상황들에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으니 남아있는 사람들을 잘 살펴달라’는 오지랖이다.

그렇게 털고 나니 마믐이 편해졌다. 일종의 기쁨이다. 대화가 끝나고 혼자 작업을 하는 동안 함께 일했던 멤버 하나가 ‘퇴사 선물’을 줬다. 원래 그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리됐다며 손뜨개 책갈피를 건넨다. “책을 좋아하시잖아요. 종종 보면서 생각해주세요” 사실 울컥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우리 자주 볼텐데요. 전 늘 여기에 있어요”

어느 순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데 대한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 내 캐릭터 중 하나가 ‘가까운’ 증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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