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 개인전
‘사람들로 전시 공간을 이 만큼만 채울 수 있다면…’
‘월요일 관람 가능’ 하나만 믿고 찾은 국립현대미술관-서울에서의 감상 한줄평을 적으라면 이렇게 쓰겠다…싶었다.
의미있는 기획전들이 있었던 때문도 있지만 북적이는 사람들 뒤에는 특별한 전시가 있었다. 호주 출신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의 개인전. 서울관 개관 이래 최단시간 최대 관람객 기록을 가볍게 세우고 새로운 타이틀을 계속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고백하자면 모르고 갔다. 이왕 시간을 만들었으니 넘치게 써야지…손전화 배터리가 바닥이 나서 급하게 아주 소소한 충전 서비스를 이용할 때까지 몇 시간을 미술관에 쏟아부었다
현실적인 묘사와 비현실적인 규모로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라는 간단한 키워드를 챙기고 조심스럽게 앞사람 등을 따라 움직였다.
론 뮤익은 마네킹 만드는 사람이었다. 영화와 TV 쇼에서 필요한 소품을 만드는 일을 하던 어느날 포르투갈의 시각예술가 파울라 레고의 의뢰로 조각 ‘피노키오’를 만들면서 작가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론 뮤익의 등장은 당시 미술계에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지금봐도 놀라운, 감탄을 넘어 경악스러울 정도의 사실적 묘사와 비현실적인 감각을 선사하는 거대한 규모는 마주한 이들을 ‘압도‘한다.
관객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저마다의 내면에 있던 불안, 외로움, 무기력함을 마주해야 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48점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보면 알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살갗 아래 비친 핏줄과 아주 세밀한 주름 하나, 홍채의 은근한 차이까지 고스란히 묘사하는 노력은 조각상이 단순히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넘어선다. 3D프린터로는 잡아낼 수 없는 섬세함이 몇 번이고 발목을 잡는다.
론 뮤익의 여러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도 특별하다. 노력에 비례한 크기 때문이다. 론 뮤익의 대형 마스크 조각 시리즈 중 하나인 ‘마스크 II’(2002)는 실제 크기의 약 4배로 완성됐다. 대표작 중 하나인 ‘침대에서’(2005)는 세로 162cm, 가로 650cm, 너비 395cm 규모다.
커다란 조각상들은 운반이 매우 까다로워, 한날한시 같은 공간에 모으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번 전시에는 론 뮤익의 대표작들은 물론,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작품들이 포함됐다. 규모 역시 아시아에서는 역대 최대다. 놓치면 아깝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 크기만 하다면 관람료에 목과 어깨. 허리 등등이 불편한 후유증이 포함됐겠지만 사실 실물보다 작은 크기의 작품들이 주변을 서성이게 한다. 의도적으로 크기를 작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일종의 거울효과를 준다.
관람객들이 조각상 옆에 섰을 때 자연스레 눈높이가 맞춰진다. 아무리 오래 쳐다보아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저 저마다의 상상으로 다음에 펼쳐질 상황을 가늠해볼 뿐이다.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어떤 답도 없다. 어설픈 이해, 완벽한 오해 사이에서 보이는 것만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나, 또는 너를 본다.
‘MASS’(2016~2017)에 이르러 서는 심경이 복잡해진다.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다.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이번 전시의 절정이라는 ‘매스’의 공간에서는 알고 있는 모든 흐름이 일순 멈췄다가 다시 흐르는 듯 느껴진다.
작가는 총 100개의 ‘해골‘을 쌓아 올려 작품을 ‘이룬다’.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크기의 해골들은 전시 때마다 철저히 계산을 거쳐 공간에 맞추어 위치외 자리를 잡는다.
원제목인 ‘MASS’는 영어로 더미, 무더기, 군중을 뜻하지만, ‘종교의식’이라는 의미도 있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우리는 거대한 해골 더미 앞에서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노사이드의 충격으로 깊은 상처를 품은 곳들에서 잊지않음과 잊을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구성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 공간들에선 숨막히는 중압감, 아마도 타의와 고의에 의해 비틀어진 누군가들의 고통과 비극적 현실이 감정의 중력선에 과부하된다면 ‘MASS’에 이르러서는 눈 앞의 것을 직시하고 작은 탄식을 내뱉게 한다.
전시실에서 이어진 기다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널찍한 암실로 나오는데 이곳의 몰입감도 특별했다. 고티에 드블롱드가 론 뮤익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사진 열두 점과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를 소개한다. 드블롱드는 2005년부터 영상과 사진으로 그의 작업물을 기록해왔다. 덕분에 작업 중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낮고 작게 욕설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거르지 않고 보여준다. 그리고 한땀 또 한땀의 섬세하고 예민한 공정과 그 가운데 쌓이는 동질감 비슷한 무엇까지, 차분하게 관찰했다.
익숙함 속에 전달되는 낯선 느낌. 3D 프린터가 사람의 손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오브제를 만들고, AI가 눈깜짝 할 사이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고스란히 베끼는 시대..다 보니 작업실에서 시간을 연료 삼아 눈과 손을 소진하는 것은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이 달라진다. 얼마나 더 실제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그래서 얼마의 시간을 썼던가..재주나 능력이 아닌 수고와 단련을 하는 과정이 그의 힘이로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