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느낌 '처음'이야, 이런 경험 '감동'이야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경험의 멸종>, 제주해녀의 문화정체성

by 고미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즉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대면 상호작용의 필요성_중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 인내, 지루함, 백일몽, 발견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다. 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_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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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 맞나요?


“우리는 많은 시간을 우리의 직접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을 소비하는 데 쓴다”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올해 내게 맡겨진 일 중 하나가 그랬다. 적어도 시간과 발견에 대한 기대를 포함해 제대로 경험하게 하는 것을 해보자.

문학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크리스틴 로젠의 책 <경험의 멸종>은 다양해진 것 같지만 사실상 줄어든 ‘경험’에 대한 21세기적 현상을 탐구하고 그 소멸이 갖는 의미를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실제 경험과 거기에 대응하는 디지털 경험은 시력과 시각의 차이와 같다고 말한다. 시력을 눈이 우리가 보는 것을 얼마나 잘 포착하는지를 의미한다. 시각은 인식을 유도함으로써 시력을 지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시력을 훨씬 넘어서는 개념인 것이다.

저자는 또 기술은 일부 기능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시작되었으나 시각 비즈니스, 즉 단순히 경험에 대한 접근성만 높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경험을 해석하는 비즈니스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짜'인가에 있다. 학습과 경험에 바탕을 둔 정보가 아니라 누군가가 해봤던 느낌과 해석을 경험으로 인지하면서 정작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 나는 해봤어. 너는 알고 있니


대면 경험, 즉 실제 세계에서의 경험은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세계와의 일상적인 만남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강화한다. 거기에 마음을 열어야 ‘뜻밖의 상호작용’, 감동과 이해, 인식이란 것을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만큼 사람들의 인내심은 작아지고 있다. 나만 모르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낯선 뭔가가 등장하는 순간 손가락은 검색창을 연다. 그렇게 찾은 것은 단순한 정보, 누군가의 경험을 엿본 것일 뿐 진짜가 아니라는 얘기다.

‘디지털 이미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와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공유를 거의 의무화한 곳’ ‘경쟁과 지속적인 표현이 일반적’이고 대면 상호작용의 가능성은 낮으며 익명의 괴롭힘이 쉬운 곳에 익숙해진 세대들은 보다 자동적이고 수월하며 매끄러운 것을 원한다. 그 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그럼 여기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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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구수한 '첫' 경험이라니


그런 의미에서 제주 금능리의 해녀홈스테이 프로그램은 즐겁고 또 꼭 필요한 실험이다. 각자 ‘첫’경험을 나누고 예상 못했던 ‘짝’을 찾고 서로를 알아간다. 그게 가능하냐고 인공지능서비스에 물어보면 그럴 듯 하지만 말도 되지 않는 답을 던질 따름이다.

오늘 내 짝궁 해녀는 ‘잰년’이란 별칭으로 궁금증을 유발했다. 느낌적 느낌으로 손과 눈이 빠르고 물질 요령이 좋은 상군 해녀일 거란 것은 알았지만 과연 이런 이름을 쓸까…싶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단단함을 지닌 올해 62살, 42년 물질 경력의 짝궁 해녀는 몸이 안 좋아 물질을 그만둔 어머니가 공을 들여 섭외한 이웃 언니에게 물질을 배워서 지금도 바깥물질까지 하며 가정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보다는 63명 해녀들 사정을 두루 꿰고 있는 ‘정보통’이라 워크숍 내내 신이 났다. (저 언니는~ 부터 시작해 하나둘 동네 서사가 풍성)

노래도 잘 하고 춤도 빠지지 않는 유쾌함이 40여년 물질 인생을 지탱한 힘이 아니었을까.

그 밖에도 먹보말, 찐빵, 물외, 황진이, 인어공주 같은 여러 캐릭터들로 웃고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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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고, 그립고, 감사하고


직접 만든 전복죽과 소라떡꼬치, 톳밥, 성게냉국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해녀삼춘이 직접 만든 장아찌였다. 정성과 진심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직접 부대껴 이해한 ‘경험’은 그것과 직접 마주하고 그 안에서 함께 하는 것으로 잘 익는다.

이전 참가자 중에 이미 해녀삼춘댁에 수박을 사들고 다시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는 귀띔이 반갑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만날 때마다 표정이 밝아지고 자신감 넘치는 해녀 삼춘들의 모습이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의 한 이유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한다. 그 다음, 또 다음을 위한 작업을 고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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