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길과 껴안게 하여라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회’에서

by 고미

그대, 지금 들고 있는 것 너무 많으니
길이 길 위에 얹혀 자꾸 펄럭이니
내려놓고 그대여
텅 비어라
길이 길과 껴안게 하여라… #강은교 시인 #아침_중


#월요일에 생긴 일


달리 월요일이 아니다. 아침부터 정신이 없더니 오후는 예정보다 길어진 컨설팅에 간신히 토막 내 맞추던 시간에 어깃장이 나기 시작했다.

뭐가 됐던 내 몫이라…주섬주섬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조금 늦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로비에서 입장을 기다리며 ’얼마만이지…‘하는 걸 보면 요즘 정신이 없긴 없었나 보다. 어쩌다 아쉬운 비에 습하고 더운 8월, 정신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만큼 기쁜 일이 있으랴 싶어 나름 우아한 자세로 객석을 지켰다.

첼로와 피아노, 두 젊은 아티스트의 호흡이 무대를 꽉 채우고 생각보다 많은 관심들이 모여 흡족하게 저녁을 썼다.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이벤트 때문이었다. 연주가 중반을 넘어선 순간 첼리스트의 움직임이 묘하게 흐트러졌다. 피아니스트와 조용히 눈짓과 말을 주고 받은 뒤 꺼낸 “제가 지금 쥐가 나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그 어떤 기회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며 애를 썼던 것을 알았기에 그 말이 얼마나 힘들게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몇 번 현을 쥔 손목과 팔을 풀다가 객석에 양해를 구한 뒤 일단 무대를 내려갔다. 약속이나 한 듯이 안타까운 탄식과 응원의 박수가 섞인다.

다시 무대로 돌아와 펼친 연주의 느낌은 뭐랄까 ’괜찮아‘를 주고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마음이 갔다. 건반이 “어때 괜찮아” 물으면 현과 활이 “그래 괜찮아” 답하는 느낌이 이전 알고 있던 곡에 다른 맛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 번 연주가 멈추거나 흔들렸다.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연주자를 위해 객석은 더 숨을 죽였고 깊게 집중했다.


# 연주회를 '배웠던' 기억


언론사에 적을 두고 26년을 일하면서 절반 가까이 문화부에 있었다. 지역 언론 특성상 문화와 연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처음부터 문화예술 감수성이 높았나 하면 사실 상당 부분을 현장에서 배웠다. 특히 음악 영역은 각별했다. 교과서 외에는 대중음악과 친숙했던 덕분에 연주회 관련 보도자료를 받을 때마다 온․오프라인 자료를 뒤지며 공부란 걸 했었다.

신문사를 그만 두고 나서 더는 그런 일이 없겠다고 했던 방심에 반성을 하는 일이 생겼으니, 이 연주회 홍보였다.

해녀문화 + 창작곡이라는 서로의 처음 경험을 공유하면서 인연을 맺은 아티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이 여름, 베토벤을 읽는 법‘’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연주회 소개글을 썼다.

제주 출신의 남성 연주자 두 명이 써내려 가는 절제된 언어의 연서(戀書)가 마음을 다독이는 음악 특유의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조용한 마법을 걸 거라는 기대는 충분히 채워졌다.

연주회 리플릿을 펼쳐든 첫 순간 떠올렸던 ‘감정이 고요하게 흐르고, 이성이 무너지지 않는’ 첼로와 피아노의 균형이 무대를 풍성하게 했다. 베토벤이라는 위대한 이름 아래, 그가 남긴 다섯 곡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는 ‘완주형 기획’ 안에는, 단순히 악곡의 시대별 흐름만이 아닌 의도된 정서와 미학적 선택, 특히 ‘남성’이라는 주제를 품은 정서적 코드가 숨겨져 있었다.


# 진심을 다하는 노력에 박수를


그 의도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오래 노력하고 또 긴장했을까 싶은 것이, 여러 무대를 통해 경험을 쌓았던 연주자가 쥐가 난 팔로 필사적으로 현을 붙들고 소리를 내는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졌을 정도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이상 처음 듣는 곡도 있고, 단순한 전곡 연주를 넘어 베토벤이라는 인물의 내면과 그 시대의 남성상, 감정의 기승전결을 탐색하는 서사적 구조를 품은 무게감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도 있는 상황에 숨죽여 무대에 집중했던 30여분은 아마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단순한 역할 분담을 넘어서 감정과 구조, 힘과 섬세함이 교차하는 긴 호흡은 연주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미리 준비했을 앙코르 연주도 포기하고 미안하고 아쉬운 감정을 숨긴 채 무대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존재를 증명하려는 의지를 읽었다.

그러니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길이 길을 껴안게’ 힘껏 박수를 치고, 환호를 날릴 수밖에. 훅한 더운 습기에 종일 지쳤던 하루에 이런 자극이 싫지 않은 걸 보니 아직 언론사 물이 덜 빠진 건가. 아니 한 번 챙긴 습관이 오래 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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