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장에서 여기, 사장의 공간으로

지역력 탐구생활 : 커피바 양장, 그리고 <여사장의 탄생>

by 고미


#양장점, 수선집…그녀들의 영역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양장점이 가진 매력은 시대와 시절을 풍미하며 마치 큐빅(지르코니아)처럼 반짝인다. 분명 눈이 부시게 반짝이지만 강도와 경도가 낮아 일상적인 긁힘이나 손상에 취약할 수 있는 특징이 닮았다.


도시와 도심 모두를 대표하면서도 지출과 밀접한, 규방이라는 은근한 문화와도 연결된 공간이기도 하다. 기성복이 쏟아져 나오면서 서서히 저문 것 중 하나이면서도 새롭게 ‘다시’를 외쳤던 영역이기도 하다.


개화기 이른바 신여성이 이용하는 공간으로 등장한 양장점은 이후 6․25전쟁 후 복구와 경제 성장 흐름에 따라 ‘여성’ 사장들이 유리하게 진입하는 일종의 장르가 됐다.

나혜석 등 1920~30년대 ‘모던걸’들도 세련된 양장을 입었지만 한국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양장을 입기 시작한 것은 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다. 그 마저도 연예인이라 불렸던 미군부대 가수들이나 영화배우들이 주로 이용했다.


일반인들이 양장점을 찾았고 사랑방처럼 모여 대화도 나누는 사교의 장소가 된 것은 1960년 대의 일이다.

일본에서 양재기술을 공부한 최경자·서수연, 최초의 미국유학파 디자이너 노라노씨 등이 폐허가 된 명동에 양장점을 차려 1960년대 중반 이후까지 양장점 시대를 꽃피웠다고 한다.


#규방이라 불렀던 커뮤니티의 확징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순한 경제 이론이 접목됐을 수 있지만 그 시작점은 단순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대로의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사회적으로 활동이 제한되었던 여성들이 모여 바느질과 자수를 통해 생활용품을 만들고 여가 활동을 했던 여성 커뮤니티와 문화를 상징하는 용어(규방)의 일종의 현재형 버전으로, 그리고 보상과 유행 순응 심리까지 작동하며 자금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성복 도입 이후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그때 그때의 쓸모와 장치를 통해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간혹 다른 느낌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싫지 않은 것이 아마도 그런 배경이 있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울 광흥창역 근처 ‘커피바 양장’에서의 기분 좋은 경험을 남기느라 사설이 길어졌다.

그래도 할 만한 얘기라 좀 더 덧붙이자면 양장점에는 늘 주변의 내노라 하는 멋쟁이들이 모였었다. 수제 양장을 입을 수 있을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은 물론이고 당시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감각도 있어야 했다.

한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이전에는 손재주와 재봉틀을 가지고 바쁘거나 서툰 손을 대신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형태의 양장점이 있었다. 간판 하나 번듯하게 걸지 못했지만 공을 들인 만큼 가족들이 허기를 덜 수 있었으니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여사장의 탄생. 그 험난했던 현실


김미선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저서 <여사장의 탄생>에서는 이런 흐름과 선택을 시대가 애써 외면했던 여성경제사로 읽어낸다.

여사장(여성 자영업자)은 한국 전쟁으로 아버지, 남편, 아들을 잃은 아내이자 딸이자 엄마였던 여성들은 전후 ‘생계와의 전쟁’을 치른 명실상부한 주체였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국가 주도 경제성장 프레임 속에서 주로 내수시장에 뛰어든 여성 자영업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여성의 노동은 “임금 노동과 가사노동 위주로만” 살펴왔기 때문이다. 자영업의 영역에서도 ‘프티 부르주아’라고 분류하며 우선 순위에서 밀어냈다. 겹겹의 외면이었다고나 할까. #그때도 지금도


구술과 신문·영화·소설 등 기록물을 참고해 이들의 존재를 들춘다. 전후 여사장들은 양재, 미용, 요리 등 통상 여성의 것으로 여겨진 영역에 ‘좌판’으로 진출해 ‘점포’를 가진 어엿한 사업체로 키워냈다.


취업할 일자리도 없었지만, 살림과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압박 탓에 시간 사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영업을 택했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억척스럽게 생계, 육아, 살림을 해냈지만 이들은 자긍심만큼 자책감도 느낀다. 돈 버느라 ‘여성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중문화는 ‘여성의 이윤 추구를 성적 욕망과 결부’하는 방식으로 여성을 그릇되게 그려냈고, 이는 수많던 여사장들이 여성 기업인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를 만들었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사실 그런 얘기들을 구구절절 하려던 것은 아니다. 한때 유행을 선도하며 블라우스며 원피스 등을 만들어냈던 부티크들은 기성복에 밀리며 설자리를 잃었다.


그랬다고 업종을 바꾸기 쉽지 않았던 탓에 교복 제작과 수선으로 역할을 만들었다. 이후 도시 개발과 맞물려서는 홈패션이라는 영역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다가 최근에는 재활용이나 디자인 변형, 또 수의를 짓는 곳도 있다. 테일러드라는 수제 양복 시장과는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어찌됐든 다시 커피바 양장으로 돌아오면, 혹자는 수선집으로 또 몇몇은 양장이라고 부른다. 한 때 지역 사람들이 오고 가는 통로였다던 작은 동네 상권은 코로나펜데믹을 거치며 우연처럼 만든 문 하나로 단절된다.


오가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빈 점포들이 늘었다. ‘양장’간판을 내건 수선집도 그 바람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랬던 곳에 손을 댄 것은 종종 배우로도 활동하는 전신환씨다. 필모그래피만 봐서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공간에서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을 보면 영화인이 맞는 듯 싶다.


#수선…낡은 것을 손보아 고침


줄을 서 찾는 커피바는 아니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예술적이다. 오가는 대화도 그랬다. 누군가는 책 이야기를 하고, 주인장과 재즈 페스티벌은 잘 다녀왔냐는 질문을 주고받는다. 커피 원두에 진심인 덕분에 무엇을 선택하던 후회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양장점이었던 느낌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간판 하나와 유리창의 낡은 시트지만으로도 ‘예전에는 그랬었다’는 지난 시간을 보여준다.

그렇게 여성의 영역이 아니라, 오래 버텨낸 삶의 기술이 남아 있는 장소로 서사를 이어가는 듯 싶었다.


고급 아파트 단지 인근의 어색한 느낌이 오히려 정점이 되는 공간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싶은 것이 다음에 또 한 번 더 찾고 싶다는 마음을 불렀다.


하는 일이 그래서…

좀 더 지역의 이야기를, 공간의 이야기를 담는다면 그러기에는 협소하고 아담해 무리해 우겨넣으면 오히려 더 안좋아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커피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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