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잠들지 못하는 밤

지역력 탐구생활 : <에이트 베어스> 공생에 대하여

by 고미

- 곰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인간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가 1년 내내 넘쳐나는 지금,
곰들은 한밤중이면 냉장고를 뒤지는 불면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2003년 타호호수 근처에 사는 도시 곰 38마리를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인근 카슨 산맥 산간지대의 곰들은 평소대로 12월 초 굴에 들어가 겨울잠을 잤지만 타호의 도시 곰들은 이듬해 1월까지 도시에 머물렀다.
38마리 중 5마리는 아예 굴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런 행동 변화는 기후 변화로 더 심해지고 있다.
—글로리아 디키 더, 『에이트 베어스』



곰 세 마리와 테디베어. 태어나 처음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는 시절, 곰은 이상하리만큼 자주 옆에 있다. ‘한 집에 사는 곰 세 마리’로 세대 공감을 하고, 곰 인형 하나로 사랑을 얻는 일은 흔하다.


곰돌이 푸의 순수한 능청스러움, 말하는 곰 패딩턴, ‘용의 전사’ 포의 느긋한 평화주의, 국민 판다 푸바오, 침대 한 켠을 지키는 레나베어까지. 한때 곰 인형을 몇 십 마리 직접 만들었던 걸 감안하면, 나도 나름 ‘곰 덕후 그룹’에 손가락 정도는 걸칠 자격이 있다.


여기까지는 끌림의 영역이다. 누가 “왜 곰을 좋아해?”라고 물으면 대부분 “귀엽잖아”라고 답한다.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 큰 눈과 작은 코, 통통한 볼, 복슬복슬한 이미지. 진화심리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보호 본능을 누를 스위치가 너무 많다.


곰은 문화권을 가로질러 긍정의 상징이기도 했다. 단군신화 속 곰은 인내와 생명력의 표상이고, 북유럽 신화에서는 힘과 용기의 이미지로,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서는 지혜로운 스승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익숙한 ‘말하는 곰’들은 대체로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 때때로 교훈을 주고, 때때로 감동을 남긴다. 자연 다큐에서 곰은 또 어떤가. 생태계 안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 그 곰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그 ‘곰’이 사람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올해 처음 끝까지 다 읽은 『에이트 베어스』는 그 사실을 ‘아는 수준’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으로 끌어올린 책이었다.


이 책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8종의 곰 이야기를 담은 탐사 보고서다. 로이터통신의 기후·환경 분야 특파원인 저자가 곰들의 서식지를 찾아가, 그들이 처한 조건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기록했다. 기대했던 야생곰의 포효나 데굴데굴한 귀여움 대신, 읽고 난 자리에 남은 건 단 하나였다.

“그래서, 넌 뭘 할 거야?”

현존하는 곰 8종은 대왕판다, 미국흑곰, 북극곰, 불곰, 느림보곰, 반달가슴곰, 안경곰, 태양곰이다. 수가 적다는 사실이 곧 멸종 위기와 동의어는 아니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적다’는 감각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구에 이렇게 오래 살았고, 우리가 이렇게 많이 사랑해온 동물이 고작 여덟 종류라니.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의 문제가 먼저 도착한다.


- 살아남은 곰들의 아이러니


야생의 곰들은 대체로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 중이었다.

전 세계 서식 범위에 걸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곰은 미국흑곰뿐이다. 개체 수가 90만 마리에 달해 다른 7종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 중 일부는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집 밑 공간을 굴 삼아 사는 방식으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지에서 인명 사고가 이어지고, 어떤 지역에서는 ‘문제 곰’이 안락사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은 종”이 겪는 갈등은 가장 인간과 가깝다는 데서 시작된다.


느림보곰은 야생에 2만 마리 정도가 살지만, 공격받는 사람은 매년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성질이 급한 종 특성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는 인구 증가와 산림 파괴로 서식지가 쪼그라든 탓이다. 곰은 원래 성질이 급했을지 몰라도, 곰을 급하게 만든 건 인간의 속도다.

북극곰의 이야기는 더 낯설지 않다. 추위를 견디고 생존하기 위해 인간 권장 섭취 열량의 몇 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먹이로 채워야 하는데, 사냥터였던 빙하가 사라진다. 먹이를 찾지 못해 헤매다 아사하고, 민가로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진다. 곰의 행동이 이상해지는 순간은 언제나 환경이 먼저 이상해졌다는 신호다.


안경곰의 사정도 순탄하지 않다. 환경 파괴로 내몰리고, 기후 변화 앞에서 목숨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세계 곳곳에서 곰들은 “살아서 존재해야 할 자리”를 잃는 중이다.


- 야생을 넘어 비극으로


여기서 이야기는 야생을 넘어 ‘산업’으로 들어간다. 인간은 곰을 숲에서 몰아내는 것도 모자라, 철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재갈을 물리려고 주둥이를 뚫고, 이빨을 뽑고, 덫에 걸린 곰의 발을 잘라냈다. 배에 주사기를 수십 번 찔러 웅담즙을 채취했다.

서식지를 잃은 곰들의 비극은 야생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런 장면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우리 역시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기간 이어져 온 곰 사육과 웅담 채취의 역사가 있었고, 최근에서야 전면 금지로 방향을 정리했다. (늦게라도 멈춘 건 다행이지만, “멈추는 데 40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남는다.)



- 곰을 지킨다는 건


나는 동물애호가로서 사명감이나 정의감에 불타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섭리’나 ‘순리’ 같은 단어를 꺼내 올려놓고 훈계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이 책을 덮고 나면, 곰 이야기는 결국 인간 이야기로 돌아온다.


곰 8종은 생김새와 습성이 다양하지만, 모두 각자의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안경곰과 미국흑곰은 배설물로 씨앗을 퍼뜨리는 숲의 정원사다. 어떤 실험에서는 곰의 똥 한 더미에서 수많은 묘목이 자랐다고 한다. 고기를 많이 먹는 곰은 사슴 같은 초식동물의 개체 수를 조절해 숲의 균형을 돕는다. 즉, 곰의 서식지를 보전한다는 건 ‘곰만’ 살리는 일이 아니라 먹이사슬 아래의 수많은 종을 함께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 공생은 인간 생존과 연결돼 있다. 곰이 살 수 없는 생태환경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다. 곰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 적당한 초록이 있어야 공기가 순환하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있어야 세계가 돌아간다. 우리가 편리함을 얻는 속도로 세계를 바꿀 때, 그 변화는 반드시 누군가의 몸에 먼저 나타난다. 요즘 곰들이 ‘한밤중 냉장고를 뒤지는 불면증 환자’가 된 것처럼.


- 작은 점 위에서의 책임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우리가 우주 속 작은 점이라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그 작음을 절망이 아니라 책임으로 바꿔 놓는다. 광막한 어둠 속에서 우리가 가진 건 결국 하나뿐이라고, 이 작은 세계를 돌보고 이해하려는 태도라고.


곰 이야기를 읽고 나면, 그 문장이 아주 구체적으로 들린다. 우리는 곰을 좋아한다. 인형을 끌어안고, 캐릭터에 웃고, 이야기에 위로받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좋아함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정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구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잠시 맡아 사는 집이다. 그리고 이 집에서 곰이 갈 곳을 잃는다면, 그 다음은 대체 누구의 차례일까. 세이건이 말하던 ‘창백한 푸른 점‘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점을 집답게 지키는 쪽으로.


#에이트 베어스

#곰 #남일같지않은 #불면_곰 #식량 난민 #창백한 푸른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