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력 탐구생활 : DX-AX가 만나는 지점에서
“세상 달라지는 걸 왜 몰라…뭐가 자꾸 좋아진다는데, 여긴 그걸 할 사람도 쓸 사람도 없어.”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밀려오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하나는 AX(AI 전환)라는 차갑고 정확한 기술의 파도이며, 다른 하나는 지역소멸이라는 뜨겁고 절박한 인구 구조의 파도이다.
지난 10년이 종이 문서를 PDF로 옮기고 엑셀 기반 업무를 시스템화하던 DX(디지털 전환)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학습해 판단을 보조하고 자율적 실행까지 지원하는 AX(Autonomous Transformation)의 시대로 ‘대’이동 중이다.
정부 역시 2026년 예산안에서 ‘범국가적 AX’를 핵심 축으로 설정하며 AI 고속도로와 공공서비스 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공식화했다.
그러나 화려한 국가 전략의 문장과 인구가 빠져나간 지역의 골목들 사이에는 여전히 짙은 그늘이 존재한다.
기술은 매일 새로운 속도로 가속하는데, 정작 텅 빈 정류장의 일상은 그 속도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
“뭐가 자꾸 좋아진다는데, 여긴 그걸 할 사람도, 쓸 사람도 없어.”
하소연처럼 들려도, 사실은 지역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조용한 경고음이다.
이 말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인구 문제를 서로 떨어진 두 섬이 아니라, 하나의 지도 위에 겹쳐진 두 지층처럼 바라보는 감각이 필요하다.
DX가 사람이 정해둔 규칙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자동화’였다면, AX는 데이터 기반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실시간 대안을 제안하는 ‘확장된 자율성’의 단계이다.
이제 공장 일부가 아니라 공장 전체가, 도시의 한 블록이 아니라 생활권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움직인다. AX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노동, 도시, 교육, 인구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구조적 전환(GPT: General Purpose Technology)이다.
KDI는 인구 이동의 핵심 원인을 수도권–비수도권의 생산성 격차에서 찾는다.
이는 비수도권의 생산성과 함께 생활 여건의 개선이 동시에 필요함을 시사한다. 반면 국토연구원은 모든 지역을 과거처럼 유지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거점을 압축하고 연결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두 기관의 진단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AX는 이 격차를 메우는 사다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단층선을 만드는가?”
지역은 이미 ‘버티기 모드’에 들어섰다.
이 시점에서 AX가 단순한 노동 대체로만 작동한다면 사람은 더 빨리 떠나고 기계만 남는 적막한 산업 구조가 된다. 진정한 AX는 사람을 단순 노동자에서 데이터 운영자이자 시스템 관리자로 격상시켜야 한다. 호미 대신 태블릿을 든 농부, 설비를 운영하는 숙련공—이런 새로운 역할이 주어질 때 비로소 사람에게는 ‘머무를 이유’가 생긴다.
생활서비스: 인구가 줄어도 기능이 무너지지 않는 동네
지역은 인구수보다 생활서비스의 끊김 때문에 먼저 약해진다. 버스가 끊기고,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교육 기회가 줄어드는 순간 지역은 흔들린다. AX는 이 무너지는 골격을 지탱하는 디지털 지지대이다. AI 진단 보조와 원격 진료, 수요응답형 교통(DRT), AI 튜터를 통한 교육 격차 해소가 그 예이다. 다만, 기술에 익숙한 사람만 혜택을 보는 ‘서비스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설계 단계부터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관계와 생활권: ‘사는 사람’에서 ‘오는 사람’으로
이제 정책의 무게중심은 “얼마나 사느냐”에서 “얼마나 자주 오고 오래 머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AX는 통신과 결제 데이터를 통해 지역과 관계 맺는 사람들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지역의 필요와 외부 인력을 데이터로 매칭한다. 이러한 관계 기반 모델은 인구 감소의 충격을 흡수하는 든든한 완충장치(Buffer)가 된다.
지역형 AX를 설계한다는 것은, 기술을 들여오는 문제가 아니라 ‘삶이 유지되는 방식’을 다시 짜는 일이다.
그래서 전략은 자연스럽게 세 방향으로 흘러간다.
첫째, 필수생활서비스를 지키는 AX
의료·교통·교육 같은 기본선이 무너지면 지역은 버틸 수 없다.
중앙의 인프라와 지방의 서비스 설계를 하나로 묶어, 인구가 줄어도 흔들리지 않는 디지털 생존선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일자리와 인재가 순환하는 AX
지역 대학과 기업이 함께 로컬 산업에 AI를 입혀야 청년들이 “여기서도 미래를 만들 수 있겠다”고 느끼게 된다.
단순한 일거리 말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전략이다.
셋째, 사람의 흐름을 다시 설계하는 AX
이제 지역은 ‘사는 사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워케이션, 활동가, 반복 방문객 같은 다층적 관계 인구를 지역의 필요와 데이터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핵심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이 활력을 어떤 원칙으로 배분할지 결정하는 새로운 지역 거버넌스다.
제주는 섬이라는 고립성과 단일 생활권이라는 특성 덕분에 AX 기반 도시 전환을 실험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 단일 생활권: 교통, 의료, 교육 AX 실험의 최적지
* 최대 관광지: 방대한 체류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 혁신 가능
* 기후·해양 환경: 데이터 예측 기반의 미래 산업 전환에 유리
제주에 있어 AX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제주만이 이런 조건을 가진 지역은 아니라는 점이다.
AX 전환은 ‘하고 싶다’로 되는 일이 아니라, 정책·예산·구조적 득실을 정교하게 따져야 가능한 선택이다.
제주가 왜 AX 전환을 해야 하는지, 그 명분과 타당성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저 소문난 잔치의 구경꾼으로 남을 뿐이다
AX가 도입되는 순간 지역은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사람 없이 산업만 남는 대체 시나리오인가, 기술이 사람의 가능성을 키우는 확장 시나리오인가. 이 길을 결정짓는 것은 알고리즘의 성능이 아니라 공동체의 설계력이다.
그동안 지겹도록 반복된 ‘선정‘ ‘유치’ ‘활성화’의 수사를 넘어, 지역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말로 삶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AX 시대의 지역 정책은 떠나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는 방어 기제가 아니라, 사람이 이곳에 살아야 할 새로운 이유를 발명하는 전략이어야 한다.
결국 기술의 끝은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다. 그것이 두 파도가 휘몰아치는 시대에도 지역이 숨 쉬고 제대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다.
기술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역은 그 변화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