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KBS 신년 특별 4부작 '다음'이 온다
말은 이렇게 해도 행여 내 소리 하나가 전체 균형을 깨뜨리지는 않을까 긴장을 풀지 못한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덕분에 2시간 여 합창 연습을 마치고 나면 후련한 것 같으면서도 지치다. 다행이 연습실에서 집 근처라 부지런히 발을 구르면서 굳은 몸을 푼다. 따뜻한 차 몇 모금에 현실 복귀, 종일 애썼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생각없이 리모컨을 눌러대다 ‘다음이 온다’는 타이틀에 그만 가슴을 사로잡혀 버렸다.
목요일 저녁은 아낌없이 부지런해진다. 합창이란 도전을 시작하고 매주 목요일 해가 진 뒤에는 연습실에서 시간을 쓴다. 새롭다. 음악 교과서를 내려놓고 부터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노래를 부르는데 썼는데 매번 ‘신곡’의 묵직한 펀치에 정신을 못 차린다. 그나마 오선지 위 혼자 춤추는 것 같던 음표들이 소리로 다가오는 정도가 됐다. 그래도 매번 새롭다. 그만큼 순수해지는 느낌이다. 감정만큼은 세계 정상급(?)이라는 말이 칭찬으로 들린다. 그럼 됐다.
말은 이렇게 해도 행여 내 소리 하나가 전체 균형을 깨뜨리지는 않을까 긴장을 풀지 못한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덕분에 2시간 여 합창 연습을 마치고 나면 후련한 것 같으면서도 지치다. 다행이 연습실이 집 근처라 부지런히 발을 구르면서 굳은 몸을 푼다. 따뜻한 차 몇 모금에 현실 복귀, 종일 애썼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생각없이 리모컨을 눌러대다 ‘다음이 온다’는 타이틀에 그만 가슴을 사로잡혀 버렸다.
하루가 멀다고 쌓이는 자료와 늘 모자란 시간과 1인 3역의 현실 같은 것들로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은 영역이다.
팬데믹, 저성장, 기후위기, 신냉전, 불평등, 포퓰리즘, 버블, 실업, 세대갈등…, 그 다음이 온다…는 묵직한 단어를 나열한 KBS의 신년 특집 4부작이다. 국내외 최고 지성들의 프리미엄 강연…이라는 소개에 ‘나도 좀 안다’고 겁 없이 눈을 맞췄다가 밤10시가 넘어 가물가물 힘이 풀리는 눈꺼풀을 붙들고, 조용히 연필과 노트를 챙겼다. 형광펜에 포스트잇도 꺼냈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하루가 멀다고 이런저런 이슈로 들썩이는 것들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됐다. 혼자 흐뭇하다.
정리하자면… 직업 때문에 요점 정리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은 정신없이 단어들을 옮겨 적는데 만족해야 했다.
제 1부 추격 시대, 그 다음이 온다
이정동 교수 : 서울대학교 대학원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우리나라가 기술주권국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우수하다고 나름 생각해 왔지만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면서 모방과 답습으로 현재의 자리에 올랐고 지금부터는 우리가 답이 되는 기술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우수한, 잘 자리잡은 사례나 기술을 살핀다’며 긍정적으로 활용해왔던 벤치마킹을 추격으로 해석하고 그 다음을 우리가 만들어 가야 비로소 ‘White space’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눈밭에서 선행자가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갈 수 있지만 발자국을 확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눈앞의 현실은 차갑기 그지없다. 이제 막 선진국 앞에 도달했다고 숨을 돌리기도 전에 원재료와 노동력 등 가용 자원 부족 문제에 사정없이 휘둘린다. 어떻게 하면 경제성장과 문명, 인간적 매너를 한층 더 도약시킬 수 있을까. 가치에 대한 철학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White space를 건너는 법은 내가 그 길을 걸어 내가 걸어간 자국을 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어렵다. 메모한 자료에 ‘답이 없는 문제를 제시하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내는 기술 선도의 개념 설계’라고 적혀있다.
기술에 해당하는 개념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천재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세상을 바꾸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나, 그리 길지 않은 글 속에 내 안의 나와 주변을 연결할 고리를 만들고 엮어내는 힘을 키우는 것 같은 축적의 시간이 만드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
추격 시대를 국산화 자동차의 시작을 만들어낸 ‘현대자동차의 이대리 노트’로 설명한다면 이제는 말 그대로 다음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섰다.
기술 주권을 잡기 위해, 본질적인 질문을 고민해야 한다. 이른바 쫓을 것인가, 몰 것인가의 기로다.
기술주권이란 국가경제와 국민 복지를 위해 필요한 기술을 주권적 의지에 따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말한다. 기술 주권을 갖고 앞서나가서 우리만의 '고유한 퍼즐'을 맞춰나갈 것인지, 아니면 선진국이 선점한 기술에 우리를 맞춰서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평범한 퍼즐'이 될 것인지는 바로 이 기술 주권의 소유 여부에 달려있다.
제2부 30년 성장률 추락을 넘어
김세직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몇 번인가 멈칫했던 것은 그동안 익숙하게 써온 ‘코로나19때문’의 함정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경제 위기는 코로나19가 원인이 아니라는 따끔한 경고가 머리를 세게 쳤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미 예견됐다.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씩 규칙적으로 하락하는 '5년 1% 하락의 법칙'이 어김없이 작동했다.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경제는 보수나 진보 같은 진영 논리와 무관하게 장기성장률이 1%씩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법칙은 너무나 강력해서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사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5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 등 전 세계적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경제를 덮쳐다. 최근 우리나라가 낮은 연간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그 근본적 원인은 코로나19가 아니라 이 ‘1% 하락의 법칙’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제로 성장 시대가 현실이 된다면 취업인구 2700만 명 중 절반이 매년 소득이 감소하는 직장에서 근무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아예 일자리를 잃는 사람의 비율이 늘어나 소득 경제가 악화되고 청년, 중년, 노년 모든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부양책만으로는 투자 부실과 버블만 키울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할 수 없다.
제로 다음은 역성장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성장 실종의 시대를 넘어, 다시 성장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 것일까. 김 교수는 문제해결을 위해 창조형 인적자본이 성장을 이끄는 '창조형 자본주의 체제' 구축을 제안한다.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재산권 보장제도를 구축하고 창조형 인적자본에 투자할 조세-재정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학생과 근로자들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제3편 에너지 피크아웃, 돈의 흐름이 바뀐다
홍종호 교수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전 세계가 역행 없는 에너지 대전환으로 나아가고 있다.
성공적인 그린트랜스포메이션을 꿈꾸지만 선택지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헤게모니 국가들과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 이미 판은 짜여졌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그 판에 뛰어들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곤 단 한 차례도 탄소 배출량을 줄여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를 키워야 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가장 먼저 감당해야 할 것이 ‘좌초자산’이다. 기존에는 사업성이 있어 투자가 이뤄졌으나 시장 환경의 변화로 가치가 하락하고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자산을 뜻한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한국은 좌초자산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전환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도 있지만 동시에 상실되는 일자리도 엄청나다. 이 사회적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회색 일자리를 녹색 일자리로 바꾸어야 한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으로 영향을 받는 개인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전직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위한 재원을 확보해나가야만 한다.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은 냉정하게도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파국도 우려되는 상황. 창조적 파괴와 창조적 혁신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 기후위기가 곧 돈의 문제가 된다.
제4편 흩어지는 세계
정범구 前 독일대사 (現 청년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글로벌, 지구촌이란 단어에 균열을 만들었다. 서양 중심의 다자주의로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국제 사회였지만 감염병 위기와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강대국들의 빗장 걸기로 흔들리고 있다. 이런 혼란을 그냥 내버려 둬도 되는 것일까.
여기에 등장한 것이 ‘Mutti(엄마) 리더십’이다.
경청과 설득의 리더십이 필요한 국제 관계에 있어 모범사례로 꼽히는 지도자가 있다. 독일 전 총리, 메르켈이다. 메르켈 전 총리는 좌우의 명분과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국제 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낸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퇴임 때까지 75%의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낸 정치인이자, 내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난민을 적극 수용하며 인도주의와 서방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유발하라리를 잇는 역사학자이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인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메르켈의 리더십과 포용력은 이미 인류가 가진 생존의 본능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쟁과 전쟁에서 오직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았다고 믿어온 사상을 완전히 뒤바꾼 주장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계 중심의 채집 문화 속에서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DNA를 키웠다.
문명은 전 세계를 초연결 시키며 더욱 발전하고 성장하였지만, 그로 인해 겪어야 할 문제들은 단순하지가 않다.
이제 우리에게 닥칠 ‘다음’은 전 지구적 문제 앞에 어떤 위치(where)에서 어떤 리더십(What)을 발휘(How)할 수 있을까로 귀결된다. 우리가 가진 힘은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됐다.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도 산업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으며 범국가적 위기 앞에 단결된 힘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IMF 당시 금모으기,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수습 과정 등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위기 극복의 DNA가 있어 가능했다. 이를 이제는 우리 안이 아닌 밖에서도 작동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협력의 스위치를 켤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