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
차 한잔을 들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 ‘다행이다’의 한 구절을 몇 번이고 흥얼거렸다.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들이라는 놀라운 사람…”. ... 잘 살았다. 뭐든 고맙다.
차 한잔을 들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 ‘다행이다’의 한 구절을 몇 번이고 흥얼거렸다.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들이라는 놀라운 사람…”.
사회에서 만난 또래 친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는 옛 기억부터 차곡차곡이지만, 사회 친구는 각자의 자리에서 부대끼며 상처를 다독다독하며 남다른 우정을 쌓는다. 어떻게 살았는지…를 묻고 말하는 결도 다르다.
‘그 때 그랬지’하고 사실을 더듬는 재미도 있지만, ‘그때 그랬어?’하고 몰랐던 구석에 느낌표를 얹는 맛도 새롭다.
이렇게 뭉칠 줄은 미쳐 몰랐던, 말 그대로 일로 만난 사이에서 뭐가 됐든 이유를 만들어서 얼굴을 마주해야 좋을 사이가 될 줄이야.
# 살면서 만드는 인연
살면서 만들어온 인연은 참 다양했다.
학교를 빼고도 ‘입사 동기’에 ‘동호회 기수’나 ‘조리원 모임’, SNS 지인, 이른바 ‘막걸리 동지’도 있다.
나름 빡센(?) 사회 생활을 선택한 탓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여성이라 뭔가 봐 줄 것은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를 미치도록 들었다. 외국어를 포함한 필기 시험과 심층 면접까지 거쳐 동기가 된 사람은 나를 포함해 3명이 전부였다. 여성을 뽑은 것은 5년 만이라고 했다. 선배들은 '너를 원하지 않았다'는 말을 얼굴에 대고 거침없이 해댔다. 그런 시절이었다. 구구절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열하자면 책을 몇 권 써도 모자라다. 몇가지 추린다면 고등학교 선배(남녀공학을 나왔다)가 동기가 된 탓에 편하게 '오빠'라고 불렀다가 화장실로 불려가 선배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던 일이며 한창 '한라산에 새생명을'캠페인을 시작하던 참에 막내 기자로 거의 매주 한라산에 오르면서 잔머리만 늘었던 일, 관광경영을 전공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반강제 문화부에 꽂혔다며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울분을 토했던 일 같은 걸 동기들과 나눴다.
지금은 각자 다른 자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편하게 '오빠'호칭을 쓰며 아주 가끔 만나 터무니없는 '이 세상'을 함께 씹는다.
혼자 노는 데 익숙해 동호회라고 해본 건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고등학교 방송부나 대학교 칵테일 동아리를 빼면 지금 하는 합창과 날렵하던 시절 했던 살사(Salsa)가 고작이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이력은 지금 내가 가족이라 부르는 아이를 남겼다. 반짝이에 길고 깊은 트임, 샤와 망사가 넘치는 일명 '땡큐복'에 발목이 꺾일 듯 높은 댄스용 하이힐에 집중했던 그 때는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였다. 연습실을 나서면 다들 보통의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그랬지만, 그 안에서 만큼은 '그레이스'였다. 당시 인연 중 몇은 지금도 연락을 한다. 베이직을 밟고 스타일링 요령을 나누는 이런 저런 살사 얘기 대신 사는 얘기, 아이 얘기를 한다.
#그리고 찾아온 인연
이 중에 몇은 관심이 멀어지고 아이가 크면서 조용히 정리됐다. 그리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들에는 나름 애틋(?)한 것이 많다.
‘딸기 좋아’도 그 중 하나다.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르고. 심지어 주변에서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볼 정도의 구성이지만, 뭉쳤다. 조심스럽게 '시간'을 묻고 "한 번 만나면 좋겠다"고 말을 주고 받다 어찌어찌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대로 인연이 됐다. 어찌됐든 만날 사이였던 모양이다.
단 3명이지만 모임 이름도 만들었다. 지나가면서 했던 “난 딸기가 좋아”로 통했다.
여자들만의 우정이란 것은 남자들이 말하는 의리와는 조금 다르다.
나서서 일을 해결해주거나 힘 좀 써주는 그런 것은 없지만 필요할 때 적어도 목소리만이라도 함께 하는 것으로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 그 배경에는 ‘내가 겪어온’이 깔려 있다. 각자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종의 공통점이 있다. 아이 얘기를 해도 다 다르고, 일 얘기를 해도 교집합을 찾기 어렵지만 각자의 경험치가 서로의 모자라거나 아쉬운 빈틈을 채운다. 그래서 뭔가 일이 생기면 일단 우리 중 누군가를 찾는다. 답은 아니지만 답을 찾는 길까지는 간다.
#내가 다 들어줄게의 힘
‘한 번 봐야지’했던 것이 계절을 바꾸고 해를 넘겨서야 성사됐다. 중간 중간 나눠 만나기는 했다. 아 두 번 다 ‘합창’이 매개가 됐다.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어서, 그나마 무슨 이유였던 오고 또 가는 사이 잠깐이나마 눈을 맞추고, 그보다 부지런히 목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꼭…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간신히 맞춘 시간… 그냥 눈이 마주치는 것으로도 웃음이 터졌다. 아하 ‘좋다’는 말의 느낌이 이런 거였다.
저녁에 이어진 티타임. 할 얘기는 코로나19가 만든 사회적거리두기 신데렐라 신세다. 산더미인데 제한된 시간은 정신없이 달린다.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요즘 어때”로 시작한 대화는 “괜찮아”로 끝난다. 엄마들인지라 아이들 얘기에 웃고 또 웃고. 적어도 ‘나’를 인정하는 방법들에 공감한다. “내가 다 들어줄게”. 소원 수리가 아니라 그냥 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요새 법석인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애써 얘기하지 않아도 좋고, 일상 속 소소한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어 더 좋다.
삶은 사는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니…쓰읍 하고 심호흡을 하고 주어진 길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때론 열정적으로 그렇게 그렇게 가는 것이라 마음을 포개준다. 감성에 휘둘리지 않거든 뒤를 지켜주는 그림자를 확인한다. 한해를 시작하는 데 이만한 에너지가 또 어디 있으랴.
#생일주간의 시작
그리고 ‘미리 Birthday 파티’. 유별난 날 태어난 덕에 온갖 ‘복’을 실컷 받는 운명을 올해는 조금 바꿔봤다. 밥값을 내기 위해 짜낸 수가 통했다. 박봉에 혼자 아이를 키운다고, 도움을 받는 게 더 크다고 밥 한 번 살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얄미워(?) 머리를 굴리고 굴렸다. 유후~~!!
고맙게도 설연휴 언저리 생일을 연휴 전으로 당겨 축하를 받았다.
생일이라고 제대로 챙겨본 것이 언제였더라…
케이크도 딸기로 골랐다. 조각 케이크 하나, 가족용 케이크 하나. 다 못 먹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 새콤함이, 달달한 맛이 어떤 효과를 낼지 알고 하는 고집이다. 조용히 받아 들고 흥을 즐긴다.
그렇게 오늘은 나를 위한 작은 초 하나가 조용히 춤을 춘다. 힘들었던 때를 조금씩 나눠 질 수 있다는 것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 진한 감정이 몇 번이고 노래를 부른다. 이쁜 척 고개도 좌우로 흔들어 본다. 음정도 박자도 죄다 무시…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냥 웃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