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당 해녀 이어도 사나-신(新)물질로드 - ‘맥’을 잇다
문화유산 영역에서 제주해녀는 '물질'이라는 생업 기술 보다 민속지식을 통해 이어져온 ‘살아있는’공동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바다에서 해산물 등을 채취하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는 말이다. 생업에 기반을 둔 문화유산은 뜻밖의 복병을 만난다.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개인적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굳이 누군가에게 내줄 ‘통 큰’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종종 신규 해녀의 어촌계 가입 제한 같은 불편한 사정으로 노출돼 논란을 부른다.
그래서 해녀와 해녀문화에 대한 접근 방법을 다양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해녀가 있어야 해녀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도 맞고, ‘해녀문화를 통해 해녀를 지킬 수 있다’는 말도 맞다.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이 의지하는 환경, 바다를 지키는 것까지 확장된다.
△새로운 가치를 더해
2020년 개정된 ‘문화유산헌장’(문화재청)만 봐도 그 의미를 가늠할 수 있다. 1997년 문화유산의 해에 제정된 문화유산헌장은 국가 차원의 문화유산 보호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요한 것은 처음 헌장이 제정될 때만 하더라도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개념이 미미했다는 점이다. 무형문화재 개념은 있었지만 유형의 것들과 비교해 가치 인정 작업이 늦었다. 2001년 종묘 및 종묘제례악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명작’대열에 올랐지만 어떤 방식으로 보호하고 전승할지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활발하지 못했다.
2009년부터 대표목록을 선정하면서 제주는 칠머리당영등굿(2009년)과 제주해녀문화(2016년)이라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지닌 지역이 됐다. 관련 조례가 만들어지고 해녀문화유산과를 통해 관리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전승과 관련한 뚜렷한 해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번 개정 헌장에서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는 인류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우리 세대에서 잘 지키고 가꾸며 새로운 가치를 더해 미래 세대에게 오롯이 물려주어야 한다고 정리했다.
△삶과 문화에 무게중심
‘생업에서 파생된’이라는 설명은 해녀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지만 접근법이 생업에 치우치면서 함정도 만들어졌다. 특히 ‘지원’이란 단어만 나오면 해녀 내부는 물론이고 지역, 심지어 해녀라는 연관성을 가진 타 지자체까지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주해녀 지원을 위해 무려 5개 지방 조례가 만들어진 사정은, 설명하지 않으면 모른다.
해녀가 국가지정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노출되면서 ‘제주라고 명시하지 않더라도 ‘해녀’하면 제주해녀로 통칭된다’는 친절한 설명을 등재 자료에 담았다.
정리하면 해녀가 한국의 전통적 해양문화와 어로문화를 대표하며, 시대적 변천을 넘어 오늘까지 그 명맥을 이어온 산증인이다. 해녀를 특정한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관련된 기술과 지식, 의례 등의 문화를 통합한 의미로 해석했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반도에 전승되고, 최소한의 도구만 가지고 바닷속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 기술의 독특성 외에도 '물질 경험에서 축적한 생태 환경 관련 민속지식'과 '배려와 협업의 공동체 문화 양식'이란 특성도 찾아냈다.
‘해녀와 관련된 문화는 무형문화재로서 역사성, 예술성, 고유성 등의 가치가 탁월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신에게 물질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해녀굿과 배에서 노를 저으며 부르는 해녀노래, 어음대(테왁을 고정하는 둥근 테 모양의 도구와 생명줄이라 부르는 테왁 줄이나 망사리 매듭을 묶는 등의 기술은 역사성과 예술성, 고유성 영역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좀 더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면 우리가 종종 잊곤 하는 단어들이 나온다. 해녀는 사회적 지위나 재산, 나이와 관계없이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상.중.하군을 구분한다. 상군 중에서도 채취 기술이 뛰어나고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해녀인 대상군을 중심으로 안전한 조업과 어장 관리, 마을 일을 돕는다.
물질에서 몸기술을 제외한 부분, 해산물을 채취하지 않는 기간과 채취 방법을 정해 바다 생태계와 지속 가능한 공존을 추구하는 문화는 유네스코를 통해 이미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먹고 살기 위해’라는 사정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렇게 강인한 의지로 바다를 지켜 온 제주해녀는 19세기 말부터 일본, 중국, 러시아 등으로 진출해 제주의 경제를 확대하고 지탱하는 힘이 됐다.
해녀를 따라 걷는 길을 단순히 ‘거기에 제주 출신 해녀가 산다’로 그치지 않는다.
해녀 수는 계속해 줄어들고 있지만 그 안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용예 가파도 어촌계장은 이제 40대 초반인 이주민이자 가파도 막내 해녀다. 생계보다는 섬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 물질을 배웠다. 그가 상군만큼 실력이 좋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물질할 사람이 없지 않냐’며 흥을 잃었던 지역 노해녀들이 손을 바쁘게 했다. 테왁 줄 매는 작업을 문화 콘텐츠 프로그램으로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다음’을 생각하게 유도했다. 전승이란 단어를 바다가 아닌 관계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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