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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Mar 30. 2022

지역이라 힘든 것이 아니라, 지역이라 가능한..이라면

스밥6기, 에디터가 되다 2-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 : 창업 생태계의 진

       


지난 2012년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3인조 젊은 도둑이 경찰을 피해 비어 있는 잡화점에 숨어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불특정한 미래에 옳지 않은 선택을 하는 젊은 세대와 빈 집. 어떻게 읽었는지에 따라 느낀 점은 다르겠지만 저출산·고령화가 우리보다 먼저 사회문제가 된 일본의 민낯이 활자로 옮겨졌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2015년 일본 정부는 '빈집대책특별조처법'을 꺼낸다. 앞서 이미 일본내 많은 기초 자치단체들이 빈집 처리를 위한 자체 조례를 만들어 운영했을 만큼 고령·공동화 문제가 심각했다.

‘빈 집’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겪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부분 외의 것을 보려고 한다.


#오이타현 다케다시를 '보다'

몇 해 전 일본 오이타현 다케다시를 살핀 적이 있다. 지역 소멸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여러 사례를 찾아보던 중에 ‘편의점 하나 찾기 힘든 마을이 문화예술로 살고 있다’는 귀띔에 호기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심지어 정부보다 먼저 빈집 조례를 만들었던 지자체 중 하나였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까닭에 찾아가는 길은 멀고 또 멀었다.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면서 꼬박 하루의 시간을 들여 찾아간 마을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흔해 보이는 농업 기반의 작은 도시였다. 해가 진 뒤 마을은 중심에 위치한 도서관만 환하게 불을 밝혔을 만큼, 고즈넉했다.

한 때 지도에서 사라질 뻔 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여기에 마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사람’과 ‘커뮤니티’ 그것에 대한 ‘공감’과 ‘시스템’이었다.

취재 중 만난 다케다시 상공관광과 모리다 야스유키 부주임(아마도 지금은 보다 높은 직급, 다른 역할을 맡고 있을지 모른다)은 '다케다시의 유전자'를 말했다. 도시 유지를 위한 끊임없는 고민의 결과다.     

낡고 늙은 중산간 마을은 온 종일 조용했다. 젊은 사람들은 인근 도시로 일하러 가고, 동네 상점가의 오랜 노포는 단골들의 안부를 확인한다.

2005년에 나오이리군을 비롯한 4개의 군, 정을 합쳐 다케다시로 통합했다. 2005년 행정 통합 전 다케타시는 인구 2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였다. 오이타현에서 가장 인구가 작은 도시로, 큐슈에서 두 번째, 일본 전체에서도 인구 하위 10위권에 속했다.

규슈 첫 헬스 투어리즘 인증을 받은 자연 탄산천인 나가유 온천은 내국인 관광객들에게 더 인기가 곳이지만 지역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케타시는 2009년 '농촌 회귀'선언과 더불어 적극적인 지역 창생 정책에 들어갔다. 전략적 산지 진흥 지원사업의 하나로 ‘㈔토마토학교’를 통해 신규 취농자를 고용하는 프로그램을 꾸렸는가 하면 문화 예술을 기반으로 한 지역 재생 계획을 세웠다. 2015년 '문화예술창조도시'인정을 받고 현재도 같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문부성은 지난 2007년부터 문화예술이 지닌 창의력을 지역 진흥과 사회문제 해결에 연결하고 이 과정에서 행정과 주민, 행정과 기업 또는 대학협력 등으로 객관적 성과를 이룬 도시에 ‘문화예술창조도시’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있다.  

다케타시는 처음 지역 내 빈 집에 거주를 원하는 희망자를 모집해 개선 비용을 보조하는 등 주거인을 찾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어 다케다 종합 학원을 열었다. 다케다 종합 학원은 하천 범람 등의 이유로 이전한 옛 다케다 중학교를 리모델링해 2014년 4월 17일 문을 열었다. 회화·공예 등 예술가들이 교실이나 교무실, 음악실 등의 공간을 작업실로 쓴다. 처음에는 일정 기간 머물며 작업을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형태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죽공예'가 대표 장르로 특화됐는가 하면 다양한 문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정주 혜택도 다양하다. 입주 작가 중 60% 정도는 전문 작가지만 나머지는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온 예비 작가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작업 외에도 지역문화예술 인큐베이션 시설을 통해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창조·창작공간으로 만들었다. 건축유산으로 등재될 정도의 문화재급 시설도 이주 예술가에게 내준다.

정착 작가인 한 염색예술가는 한눈에도 역사가 느껴지는 건물에서 작업을 한다. 가족 전체가 이주한 것도 있지만 대신 주변 빈 건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재료로 사용하는 쪽을 재배하는 밭도 다케다시로부터 지원 받았다. 키우고 수확하는 일에는 지역 출신에 쪽을 좀 키워본 공무원이 배치돼 돕는다. 그렇게 만들어낸 특유의 쪽빛은 지역을 상징하는 빛깔이 되고 있다. 마을 축제 때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고이노보리' 작업에 지역에서 생산한 쌀 가루를 이용하는 등의 실험을 한다.

완성품은 다케다시가 대도시에 마련한 판매 시스템에서 주인을 찾는다. 그 수익은 다시 지역 산물을 사고 매장을 이용하는 것으로 순환한다.

인구가 파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 현 상황이 하나의 마을 브랜드가 되고 있다는 점까지 다케다시는 성장하는 대신 현재를 단단하게 만들어 유지하는 데서 힘을 찾았다.   

#미국 콜로라도 볼더 이야기  

미국 콜로라도 볼더의 이야기에 눈이 번쩍했던 건 아마도 이런 경험 때문은 아닐까.

성적표를 보면 볼더는 테크 분야 창업 도시로 미국 국내총생산 상위 18위, 1인당 국내총생산 7만 달러로 상위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의 조사에 따르면 콜로라도 볼더 지역은 2016년 이래로 미국 내에서 인구수 대비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분야 인재와 일자리 비율을 종합한 지수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볼더는 해발 고도 1600미터 로키산맥 산기슭에 있는 인구 10만 명의 작은 대학 타운이다.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지역균형발전 등의 측면에서 세계적인 대기업이 이전하거나 정부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 힘은 20여년에 걸친 노력을 통해 축적된 것이다. 저자인 브래드 펠드는 실제로 스타트업 불모지였던 콜로라도 볼더에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창업자부터 정부, 서비스 제공자, 커뮤니티 구축자, 기업 그리고 그 외 참여자들에 이르기까지 스타트업 커뮤니티와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정렬’하는 것으로 ‘시티(CITY)’를 만든다.

그는 말한다. “창업자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 꼭 실리콘밸리 혹은 런던, 상하이, 볼더, 두바이, 뉴욕 등으로 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기로 선택하든 기업가정신을 추구할 권리를 얻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충관계가 생길 수도 있지만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그리고 “나는 당신이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든 장기적이고 활기차고 지속가능한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고 덧붙인다.     

도대체 브래드 펠드는 어떻게 볼더를 스타트업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많은 창업가가 볼더에서 창업하거나 머무르려 할까.

주목할 것은 우선 볼더가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점, 그리고 동시에 먼저 베푼다는 ‘#먼저주기’로 상징되는 스타트업 커뮤니티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주기란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반대급부를 전혀 기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뜻한다. 경험이 많은 창업자들이 먼저 경험한 것에서 오는 통찰을 기반으로 다른 초기 창업자들이 여러 도전을 헤쳐나갈 수 있게 돕는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지역에 있다. 창업자들과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참여자들에게는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유용하지만 자기 지역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이유로 지역은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가 된다”

그리고 #먼저주기.

“#먼저주기는 거래 한도를 설정하지 않고 관계나 시스템에 기꺼이 에너지를 투입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타주의는 아니다. 무언가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있다. 하지만 언제, 누구로부터, 어떤 형태로, 무엇을 고려해서, 어떤 시간을 기준으로 얻을 수 있는지는 모른다. 창업자는 멘토의 기여가 가치 있으면 회사의 지분으로 보상해주어야 한다. 회사가 성공했을 때 멘토 관계는 진화해서 무보수 역할에서 보수를 받는 고문, 투자자, 이사진, 또는 직원으로도 바뀔 수 있다. 멘토와 고문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이 둘은 서로 혼용해서 사용되는데 사실은 매우 다르다. 멘토는 #먼저주기 접근법으로 참여하는데 거래 관계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서 공식적인 고문은 미리 정해진 합의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먼저 주기(Give First, 대가에 대한 기대 없이 다른 사람을 먼저 돕는 문화)’로 대표되는 볼더의 창업자 중심의 커뮤니티 철학이 확산되면서 기존에 스타트업들이 많지 않았던 지역에서 혁신 창업이 활발해지고 지역 사회가 함께 성장해 간 많은 사례들을 귀띔한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보육기업인 도시재생 스타트업 알티비피 얼라이언스가 최근 제주시 건입동 서부두길에 복합문화공간 ‘끄티 탑동’을 오픈했다.
혁신창업거점 W360은 옛 제주지방기상청을 리모델링해 완성했다

두툼한 만큼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해둔 부분이 많다. 그 역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인 만큼 여기까지만 정리한다.     

부연하자면 스타트업 커뮤니티란 한마디로 말해 창업자의 성공을 돕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란 바로  스타트업 커뮤니티와 창업 생태계를 발전시키고 성과를 향상시킬  있는 일련의 원칙과 실행 방법이다.

물론 ‘세상에 똑같은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없다’라는 말처럼 실행 방법을 일괄 적용하기는 어렵다.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각자 주어진 시간과 장소가 다르고 복잡적응계여서 완전하게 이해하기도 어렵고 과거에서 추론해올 수도 없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철학과 프로세스를 갖는다면 가능하다. 미래학자들이 얘기하듯 가능한 방향을 설정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느 곳, 어느 지역이든 활성화된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통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장기간에 걸쳐 노력하고 헌신하면 창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전혀 다른 얘기 같지만 다케다시와 볼더 사이에는 의미있는 교집합이 있다. 커뮤니티를 만들어 원하는 방향의 시스템을 만들고 역할을 분담한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성과를 먼저 살피거나 결과에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 없이 필요한 것을 찾고 지탱하려는 의지’다. 다케다시의 목표는 도시 이름을 지키는 것이다. 볼더의 성적표를 꼼꼼히 들여다 보면 ‘인구수 대비’라는 수식어가 있다. 지역 스타트업 커뮤니티와 창업 생태계가 진중하게 살펴야 할 부분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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