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주 살아요- 74주기 4‧3 제29회 4‧3 미술제 '봉인된 풍경
무서운 것은 지력도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제노사이드_다카노 가즈아키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바람의 집_이종형
#4.3미술이란 이름으로
스물 아홉. 아홉수라 그렇다. 더 뾰족하니 아프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4‧3을 예술이란 장르로 풀어낸 판 중에 가장 역사가 오랜 것은 생각보다 평탄하지 않다. 여전히 거친 것들에 맨살로 부대끼며 여기저기 피가 맺혀있다.
지난 2015년 4월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100주기 추모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한 “악을 숨기거나 부인하는 것은 상처를 지혈하지 않고 계속 피 흘리게 하는 것과 같다”는 메시지는 제주 섬에서도 유효하다.
전시장 곳곳에서 윙...하는 끝이 매운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그’를 부르는 것인가 했지만 바람, 그 소리가 맞다.
무겁게 발을 떼는 뒤로 저혼자 머물던 시선이 어기적 따라온다. 흐릿한 잔영이 하릴없이 뿌려진다. 나이 탓인가 했다. 아직 다 수습하지 못한 그 때의 편린들이 이 계절 뼛가루처럼 일어난 때문이었다. 봉인됐다 했던가.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것들의 변명은 아닐까 주춤주춤 뒷걸음을 친다.
제노사이드라는 말이 익숙해진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4.3’이란 단어를 만난 적이 없었다. 시절이 그리했다는 변명 비슷한 것을 해본다. 새로 만난 단어의 의미를 확인하고 조금씩 역사라는 이름의 사실을 만나며 제주 섬에 산다는 의미가 달라졌다.
제노사이드는 인종,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행위를 말한다. 인종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나타내는 'cide'를 합친 것으로 '집단학살'을 뜻한다. 홀로코스트와 비슷하게 쓰이지만 대상에 있어 차이가 있다. 다만 특정 집단을 절멸시킬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로, 보통 종교나 인종ㆍ이념 등의 대립으로 발생한다는 아픈 공통점이 있다.
제주가 할 수 있었던 기억 투쟁의 무기는 문화예술이었다.
슬픔이란 대체로 눈물로 한숨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4‧3의 슬픔은 눈물로도 필설로도 다 할 수 없다. 그 사태를 겪은 사람들은 덜 서러워야 눈물이 나온다고 말한다.- 현기영, <목마른 신들> 가운데 일부
살아 있는 역사를 무덤이나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다. 묻혀 있는 역사를 오늘에 끌어내어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 작업은 예술이 한다. 김석범, 현기영, 강요배, 이산하 등 작가가 부르는 이들이 각자 선택한 방식으로 굳게 닫힌 입술과 빗장 걸린 기억을 열었다.
4‧3이란 이름은 반세기 가까이 군부독재 아래 봉인됐다. 살아남은 자들조차 연좌제에 걸려 독배를 마셔야 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살려고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이 바람 소리처럼 흔했던, 4․3을 기억하고,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운동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탐라미술인협의회의 활동은 그래서 ‘산 역사의 생명운동’이라 불린다. 그들의 실행이 미술사 속에 하나의 영역을 만들었다는 점도 그렇다. 제주라는 삶의 현장에서 역사를 회복시키고자 한 일련의 움직임은 그들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고 또한 그들 자신이 그들 스스로를 해방하는 진정한 자기회복, 창조적 주체 회복 운동이다.(김종길, 「제주 4․3, ‘기억투쟁’의 미술은 살아있다!」, 『아트인컬쳐』2008년 5월호 인용)
4‧3미술은 우리 민족이 겪는 ‘기억투쟁’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제1회 4‧3 미술제(1994) : <닫힌 가슴을 열며>
제2회 4‧3 미술제(1995) : <넋이여 오라>
제3회 4‧3 미술제(1996) : <4‧3 그 되살림과 깨어남의 아름다움>
제4회 4‧3 미술제(1997) : <자연․사람․역사>
제5회 4‧3 미술제제(1998) : <상극의 빗장을 열고 상생의 아름다움으로>
제6회 4‧3 미술제(1999) : <보이지 않는 손, 보는 눈 - 4‧3과 미국>
- 4․3 50주년 기념 4․3미술 작품집 『역사에 던진 아픔의 꽃묶음』발간
제7회 4‧3 미술제(2000) : <역사가 서린 땅>
제8회 4‧3 미술제(2001) : 제주 광주 미술 교류전 <한라와 무등-역사의 맥>
제9회 4‧3 미술제(2002) :
제10회 4‧3 미술제(2003) : <4‧3미술 10년의 역사, 진실의 횃불 밝혀 평화의 바다로>
- 4‧3 미술제 10주년 4‧3미술 전작도록 『4‧3미술 10년의 역사, 진실의 횃불 밝혀 평화의 바다로』발간
제11회 4‧3 미술제(2004) : <4‧3이 나에게 무엇인가>
제12회 4‧3 미술제(2005) : <동행>
제13회 4‧3 미술제(2006) : <4․3의 혼을 지피다>
제14회 4‧3 미술제(2007) : <다시 그 곳에 서서>
제15회 4‧3 미술제(2008) : <개토開土>
제16회 4‧3 미술제(2009) : 맥박
제17회 4‧3 미술제(2010) : 4‧3 그리고 내력담
제18회 4‧3 미술제(2011) : 산천제-초심으로 돌아가기
제19회 4‧3 미술제(2012) : 식구(食口)
제20회 4‧3 미술제(2013) : 굉轟-여러개의 시선들
제21회 4‧3 미술제(2014) :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 사이-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
제22회 4‧3 미술제(2015) : 얼음의 투명한 눈물
제23회 4‧3 미술제(2016) : 새도림-세계의 공감
제24회 4‧3 미술제(2017) : 회향(回向) 공동체와 예술의 길/4‧3미술 기억투쟁 30년 아카이브
제25회 4‧3 미술제(2018) : 기억을 벼리다
제26회 4‧3 미술제(2019) : 경야(經夜) WAKE
제27회 4‧3 미술제(2020) : 래일(來日·RAIL)
제28회 4‧3 미술제(2021) : 어떤 풍경
한 때 활자로 된 모든 것들이 ‘검열’이란 잣대 아래 섰을 때도 붓만큼은 그런 시선에서 보다 자유로웠고 그래서 더 무거웠다. 해를 거듭하면서 고민은 커졌고, 어깨는 무거워졌다. 다양한 표현 방법, 드러낼 수 있는 장치들을 찾고 이용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영역들에 비해 파문의 폭이 좁아졌다.
사실 그 것은 문제라 하기 어렵다. 이미 먼저 걸어 길을 만들었던 까닭이다. 굳이 험한 턱을 만들고 멀리 돌아갈 이유를 찾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처럼 긴 호흡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일을 계속하면 된다. 누군가는 보고, 또 누군가는 찾는다.
기념은 권력의 몫이고, 기억은 우리의 몫..이라 했던가.
기억하는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재 마주하는 역사는 어떠한가. 우리네 삶은 아직 '도덕경'에서 노자가 이야기했던 '천지불인(天地不仁)'이다. 하늘과 땅은 스스로 그러할 뿐, 이런 저런 형편을 살피지는 않는다. 그러니 더 제대로 알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 20세기 동아시아에서 펼쳐졌던 국가폭력·제노사이드의 비극은 아직 눈과 귀와 가슴을 연 상태다.
심지어 현재 진행형인 우크라이나의 눈물과 미얀마의 외침이 시종 우리의 각성을 부른다.
무서운 것은 지력도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제노사이드_다카노 가즈아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지금도 일본과 한국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또한 국가내에서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남과 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분단 현실까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은 유대인이 겪은 인종문제 뿐만 아니라 이념 문제와 국가주의에 의한 제노사이드의 세 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제노사이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 문제이기에 허버트 허시의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는 한국의 현 정치 지형을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며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분석 또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먼 길을 갈 때 가끔은 쉬기 위해 걸음을 늦추기도 하고 충전을 위해 머물기도 한다.
'2021-2022 4·3미술제'는 '우리가 계승해야 할 4·3정신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계승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상이한 시간 속에서 동일한 저항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광주, 여순 작가들을 비롯한 도내·외 작가와 대만, 홍콩, 오키나와, 하와이 등 해외작가를 포함해 총 57명(팀)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미술제준비위원회는 "4·3은 제국의 모순에 저항했던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의 역사를 응축시켜 놓았으며, 가장 먼저 아팠고 마지막까지 아픈 기억을 견뎌낸 힘으로 '민중의 저항'을 견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미국과 그 힘에 기댄 자들에 의해 4·3은 좌절되었고, 4·3이 꾸었던 꿈은 무의식 속에 봉인되었다"면서 "'봉인된 풍경'은 무의식의 4·3을 세상 밖으로 꺼내 4·3의 꿈과 희망 그리고 4·3의 정신과 가치를 이야기한다"고 소개했다. 솔직히 말하면, 다시 어렵다. 최근의 흐름은 그들의 고민이, 역할이 전이되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무엇을 의도했는지 알 것 같다. 적어도 10번 이상 그 미술제 안에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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