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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Apr 18. 2022

“맺힌 건 풀고” 무속 너머 삶의 지혜 전승

한바당해녀 이어도 사나 신(新) 물질 로드 - 잠수굿 ①

"…진 한숨 모른 한숨 숨비애기소리 속 깊이 맺힌 거 풀어줍서. 요왕에 인정 걸엄수다. 물 아래서 숨차게 하지 맙서. 들물에 썰물에 여에 치게 맙서.이 바당 망사리 고득 고득하게 해줍서. 뭐랜 고라도 가슴 아프게 맙서" 심방의 사설에 해녀들이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아이고 옳다" "다 막아줍서" 굿청 한쪽에 자리를 잡은 노해녀들의 추임새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동김녕 잠수굿 모습.                         사진 고미

코로나19 탓에 지난해부터 내리 2년 기억에만 남은 모습이다. 올해는 몇 군데 허락해주는 곳이 있다고 들었지만 딱하고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간절하지 못했던 탓이다. 나름 걸명도 하고 잘 봐주십사 하고 제물도 올리고 했었는데, 그 것이 이리 서운하고 허전한 일이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제주해녀문화), 국가어업유산 1호(제주해녀어업), 국가지정 무형문화재(해녀)를 통틀어 제주해녀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장치로 '민속신앙'을 꼽을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2016년 11월)를 기점으로 해녀들의 문화 중 하나인 '제주해녀굿'(잠수굿) 보존을 위한 사업을 이어왔다.

해녀 공동체 결속 유지와 전승·보존 체계로 잠수굿을 지원하는 근거와 예산을 마련했고 그 덕에 새로 잠수굿을 하는 어촌계도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이전까지는 어촌계 자체 예산으로 진행하면서, 또 길을 내며 당이 없어졌네 하는 안타까운 이유로 야금야금 사라졌던 터였다.

코로나19로 지난해 굳게 닫혔던 잠수굿 몇 군데가 올해 슬쩍 자리를 내줬다. 사진. 문봉순

잠수굿은 음력 1월 초부터 3월 초까지 두 달간 행해지는데 방식에 따라 영등굿, 해녀굿, 해신제, 수신제 등 다양하게 불린다.

제주도가 지난 2018년 '해녀굿'(잠수굿) 보존을 위한 사업과 조사를 진행한 결과 도 전역에서 37개 해녀굿이 전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도시 동지역은 제주시 삼도동과 건입동 등 2곳, 서귀포시 동지역에선 보목동, 하효동, 대포동 등 4곳에서 해녀굿을 전승하고 있다. 읍면 지역에서는 성산읍 7개 어촌계(시흥리·오조리·성산리·고성리·신양리·온평리·신천리)에 잠수굿 전통이 남아있다.

구좌읍 6곳(동복리·김녕리·월정리·행원리·한동리·종달리), 남원읍 6곳(태흥1리·태흥2리·태흥3리·위미1리·위미2리·신례리), 조천읍 4곳(조천리·신흥리·함덕리·북촌리), 한림리 4곳(귀덕1리·귀덕2리·한수리·비양도) 등이 아직까지 잠수굿을 치르고 있다.

표선면(표선리), 우도면(하우목), 안덕면(사계리), 애월읍(신엄리)에는 각 1개 어촌계에서만 해녀들이 모여 한해 무사안녕을 빈다. 대정읍과 한경면 어촌계에서는 잠수굿을 하지 않는다. 도내 어촌계 102곳 중 잠수굿을 하는 어촌계는 35곳, 전체 34% 수준이다.

동김녕잠수굿 모습.                   사진 고미

이들 잠수굿은 제주해녀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상징한다.

제주대 산학협력단이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위해 문화재청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제주해녀는 제주의 전통문화를 대표하고, 민간신앙 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특징을 들었다. 동남해안권과 서남해안권은 신앙적 요소가 사라진 대신 직업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착심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잠수굿 중 가장 대표적으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있다.

제주시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여는 칠머리당 영등굿은 그 자체로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음력 2월에 시행하는 세시풍속으로 바람의 여신(영등 할망), 용왕, 산신 등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례는 영등환영제, 영등송별제로 나눠 열린다.


칠머리당이 현재 위치에 옮겨지기 전 치러졌던 영등굿 자료사진.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올해 잠수굿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어촌계 자체 행사로 조용하게 치러졌다. 지난해는 아예 얼씬도 못하게 했었다. 그들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동 작업을 하는 해녀 물질 특성 상 한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확산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력 초정월부터 잠수회별로 잠수굿을 치렀다. 청하는 심방이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 같이 “요왕수정국 사해용왕님 전에” 올 한해 무사안녕과 풍요를 빈다.

무속이니 뭐니 해도 하늘을 명정포 삼고 바다를 칠성판 삼아 하루에도 수 십 번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해녀들에게 있어 '의지'를 확인하는 오래된 의식이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된 것이 동김녕리 잠수굿이다. 매 음력 3월 8일 치러지는 의식을 위해 준비 단계부터 공을 들인다. 취재를 위해 문의전화를 했을 때도 "아무나 와서 사진 찍거나 하는 행사가 아니"라고 말을 잘랐다. '해녀목록' 작업 취지를 설명하고 제차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야 "최소 3일 전부터 돼지고기도 먹지 말고, 궂은일도 보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영등할망의 행적을 따라 진행되는 영등굿과 달리 이 지역 잠수굿은 성세기당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성세기당은 1·3·7·9월 8일과 18일을 중심으로 제를 드리는 여드렛당적 특성을 지닌다. 잠수굿이 '음력 3월8일'열리는 것은 '요왕황제국 말젯아들이 요왕개폐문을 열고 나오는 날', 정리하면 요왕문이 열리는 날이라 그렇다는 설명이다.

동쪽 공동탈의장이 있는 사계알에 서낭기가 올려지고 제상이 준비된다. 다른 굿들과 달리 여성, 특히 해녀 중심으로 치러지는 굿인 만큼 제관 역시 해녀들이 맡는다. 같은 날 서쪽 공동탈의실에서는 불교식 의례가 진행된다.

동김녕잠수굿 모습.                                                                              사진 고미

일반적으로는 삼석울림으로 시작해 초감제-요왕세경본풀이-요왕맞이-지드림-액막이-도진의 순을 따라가지만 사정에 따라 그 순서를 조금씩 바꿔가며 진행한다.

해녀들마다 표현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성만큼은 한결같다. 제관이 되면 상가(喪家)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길에서 좋지 않은 것을 볼까 외출도 삼가고, “남편 옆에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어머니나 다른 해녀 삼춘들에게 듣고 배운” 것들이다.

다른 해녀들이 잠수굿을 위해 '해신제 물에 들어' 작업한 해산물을 제상에 올리는 일은 제관들의 몫이다.

김녕리 해녀들에게 잠수굿을 하는 날은 국경일이나 마찬가지다. 1999년 발간된 「한국의 해녀」 등에 따르면 당시 해녀들이 잠수굿 하는 날을 ‘해녀의 날’이라고 강조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1996년 제주도가 만든 「제주의 해녀」에서도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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