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당해녀 신(新) 물질 로드 - 잠수굿 ②
"제주해녀는 무속신앙, 잠수기술, 노래 등 다양한 문화와 노동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다양한 기술을 전수한다. 제주해녀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미래세대를 위해 마땅히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인 이유다"
- 응우옌 티히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평가위원(베트남 국립문화예술연구소 부소장)
#해녀들이 만드는 '판'
잠수굿이 언제부터 열렸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학자들은 영등굿의 본래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녀들이 많은 지역에서 많이 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천읍.구좌읍은 물론이고 안덕면 사계리와 성산읍 신양리 등지에서 잠수굿 또는 용왕제라는 이름의 의식이 치러진다. 방식도 조금씩 바뀐다. 기본적으로 해녀회장을 중심으로 굿 준비를 한다.
해녀들은 굿 하루 전날 방울떡, 방애떡, 사발시루떡, 돌래떡 등을 직접 빚는다. '해신제물'에 들어 작업한 해산물을 신선한 상태 그대로 상에 올린다. 해녀들이 준비하고 치르는 행사지만 마을은 물론이고 바다와 관련된 기관·단체들도 다 찾는다. 물질을 하는 시어머니를 뵈러 며느리가 찾아와 인사를 하고, 친정어머니를 챙기느라 떡을 몇 되나 해서 올리는 딸도 있다. 오랜만에 아들 얼굴을 봤다고 좋아하는 모습도 보인다. 며느리 인사는 기본이다. 손자·손녀 이름까지 열명해 한해 무탈과 건강을 빈다. 온전히 해녀들이 판을 만들고 또 운영한다.
물 때에 맞춰 바다에 들고, 그렇지 않으면 밭일을 해야 했던 제주 해녀들에게 온종일 일을 쉬어도 무방했던 날은 굿판을 지키는 이 날이 유일했을 터다. 여성들이 대놓고 끼를 풀어내기 어려웠던 시절 노래와 춤을 즐기고 공동작업한 해산물 등을 나눠 먹으며 결속을 다졌다.
심방들이 은근히 흥을 부추기고, 제비를 좁고 산을 받는 과정들을 통해 험한 바다 작업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준다. 좁씨를 맹텡이(멱사리) 바다에 뿌리며 풍년을 기원하고 운수가 좋지 않은 해녀나 잠수회를 위한 액도 막아준다. 불운을 피했다는 위안과 공식적인 휴식, 여기에 흥이 어우러지는 것. 이것이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어깨 너머' 채운 문화
언제 어떻게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다. 다 '어깨 너머' 배운 것들이다. 잠수굿의 하이라이트에 심방이 제관 역할을 맡은 해녀회장들을 중심으로 듬돌을 지고 직접 용왕길을 닦게 한다. 요왕질침이다. 지도 싼다. 용왕밥이라고도 부르는 지는 해녀들이 각자 차린 제물을 조금씩 나눠 올린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 할 수 있지만 해녀들의 온갖 정성을 꽁꽁 동여맨 '지'는 '민속지식'이란 이름으로 이어진다. 요왕신께 1년 무사 안녕과 더불어 올 한해 망사리가 늘 묵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돌을 지어 나르며 요왕신이 들고 날 길을 지치고(닦고) 난 뒤에는, 생쌀 또는 좁쌀을 바다에 뿌리는 '씨뿌림'을 한다. 어떤 것을 싸고, 누가 뿌리고 하는 기준들은 어촌계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들의 행동이 바다를 오염시키거나 자원을 고갈시킨다는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도리 해녀들은 밥(메)과 과일, 삶은 계란, 과자 등을 싼다. 상에는 온갖 해산물을 다 올리지만 각자 준비하는 것에는 구운 생선 외에는 바다와 관련한 것을 피한다.
식구 수에 맞춰 10원짜리 동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엽전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동전 크기가 바뀌면서 100원짜리로 바꾸거나 아예 넣지 않는 것으로 바뀌기도 했다.
마을마다, 잠수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공동체 연대를 단단히 하는데 있어 잠수굿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해녀문화의 특성을 '여성 중심'으로 읽을 수 있는 것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여성들이 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을 넘어 모든 일을 여성(해녀)이 주도한다. 가족들의 액을 막고 올 한해 벌이에 대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자존감을 높인다. 잠수회 전체가 공동 작업한 해산물 등을 나눠먹으며 결속을 다지는 공식적인 자리기도 하다.
심방이 액막이를 한다지만 전체 진행 과정에 있어 노해녀들의 '참견'은 필수다. 제관들의 역할이며 상에 올릴 수 있는 제물을 살피는 것들 모두 먼저 해봤거나 본 적이 있는 삼촌들의 허락을 받는다. 별 일 아닌 것 같아도 상가에도 가지 않고 외출도 삼간다. 행여 좋지 않은 것을 볼까 노해녀의 충고를 듣는다.
심방의 사설 역시 허투루 듣기 어렵다. 적어도 둘 이상 짝을 지어 작업을 하고, 물숨 들이키지 않게 욕심을 내지 마라 충고한다. 직접 물질을 하지 않더라도 해녀들에게 귀동냥해 들은 이야기를 매년 하나 둘 엮어 그들을 대신해 풀어낸다. 특정한 사회와 문화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민속지식, 이른바 '토착지식'이라 부르는 영역이다.
모든 글은 직접 취재와 자료 조사를 통해 쓰고 있습니다 [무단 복제 및 도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