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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Jan 17. 2020

비움과 채움의 사이...'나이테'를 그리다

- 그냥,  제주에 삽니다

감정의 재활…추억 공유 기회로
나보다 모두 위한 '계획표 짜기'
공동 계획으로 '가족공감' 시도


추억이 사라지는 자리, '겨울방학'을 돋을새김 한다.


여름은 애써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지만 겨울만큼은 '방학'이란 휴지기가 미치도록 탐이 난다. 살아가면서 반복되는 감정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중 가장 저항이 없었으면서도 뒤끝이 오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회 초입까지 특권처럼 누렸던 '동면'의 기회는 먹고 사는 일에 몰리며 스멀스멀 사라졌다. 마치 구도심이 번성하며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에 밀려 원주민이 내몰리는 느낌과 비슷하다.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표준일과를 사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겨울방학'만큼 아쉽고 부러운 것은 없다.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보습부터 선행까지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시간을 챙길 수 있다.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거리는 가족을 멀게 할 수도, 아니면 가깝게 할 수 있다. 겨울방학을 시작하는 즈음, 연말에서 연시에 이르기까지 기간은 특히 그렇다. 그저 '깊은 심심함'을 사이에 두고 멀뚱멀뚱 세대차이만 확인하기에는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쉽다.            


집단기억이 소멸되는 사이로 '복고'라는 공통분모가 살아난다. 기성세대는 향수를, 젊은 세대는 호기심으로 모이는 '교집합'에 슬쩍 겨울방학을 끼워 넣어보자. 어쩌면 '빨리빨리'를 외쳤던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문을 쓰는 심정으로 '방학'에 다른 정의를 내려 본다.


물론 시(時)테크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왕 만드는 계획표를 '나'가 아닌 '우리'로 대상을 확대해 짜 보자. 규칙은 조금 까다롭다. 다 버릴 수도 없고, 다 가져갈 수도 없다. 필요로 한다고 늘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도 동의해야 한다. 서로의 약한 부분을 아낌없이 드러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른으로서 일들에 바빴을 뿐이고 나이의 무게감을 강한 척으로 버텼을 뿐"이란 것을 인정하고, '힘든 일은 일단 기대 넘기고, 투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에 조금 나이를 먹었음을 확인해야 한다. 


'나이테'를 만드는 시간이다. 나무는 4개의 계절을 거치며 의미 없이 테를 두르지 않는다. 한 아름 테를 그리기 위해 그만큼의 자리를 비운다. 내 안에 내가 꽉 차 있으면 어떤 새로운 것도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밥상머리'를 지키려 애를 쓰지 않더라도 특정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으로도 유대감이 만들어진다. 가족테다. 이번 겨울방학의 한 자락, '가족'을 핑계 삼아 무언가를 새겨 넣을 자리를 만들어보자. 새해 계획으로 이만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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