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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Jan 17. 2020

기품있고 유창한 꽃 고매한 봄을 닮았구나

그냥, 제주 살아요


세한도와 함께 '추사삼절' 중 하나
가혹한 유배생활 속 감수성 일깨워

환경 맞춰 '작은 쓰임' 만족하는 삶
추사의 지조·신념·양심 깊이 엿봐

'산과 들에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하다'은근하고 향긋한 것이 서슬 퍼런 한기 틈을 파고든다. 수선화다. 그렇게 추사가 사랑했던 계절이 왔다. 겨울도 아닌 것이, 봄도 아닌 것이 '정월 그믐께부터 2월초에 피어 3월에 이르는'시기를 감히 추사철이라 명명해 본다.


#향에 취해 더듬더듬


조금 이른 느낌이지만 길을 걷다 발끝에 수선화가 차인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날씨탓이다.

제주 수선화를 가만히 살펴보면 크게 두 종류다. '금잔옥대(金盞玉臺)'라 부르는 추사가 사랑했다던 술잔 모양이 노란 꽃잎이 두드러진 수선화가 있고, 부스러기 수선화로 불리는 제주 토종 수선화가 있다. 그 향에 취해 더듬더듬 추사를 찾아간다.

'유배'라는 굴레를 쓰고도 제주살이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24살 때 중국에서 처음 수선화를 보고 그 귀함에 반했던 추사는 정작 제주에서 잡초 취급을 받는 그 것에 종종 자신의 처지를 빗댔다. '하나의 사물이 제 자리를 얻지 못하면 이런 곤궁한 처지에 놓인다'고 한숨처럼 토해내면서 가혹한 유배 생활 속에서도 예술적 감수성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감히 추사삼절(三節) 중 하나로 꼽는다.

하나는 잘 알고 있는'세한도'(겨울에 홀로 푸른 소나무)다. '겨울이 되어서야 솔의 푸른 빛을 알게 된다'는 논어의 문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세상 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다 비워야 한다는 뜻이 느껴진다.

다른 하나는 동백이다. 귀향지에서 쓴 편지에서 동백은 종종 아내에 빗대 표현된다. "당신이 봄밤 내내 바느질 했을 시원한 여름옷은 겨울에야 도착을 했고 나는 당신의 마음을 걸치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 머리맡에 둘러놓았소.….동백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 내 마음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소". 그리고 수선화다.


#'해탈'의 지혜 읽어


"한 점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에 냉철하고 영특함이 둘러있네/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푸른 바다 파란 하늘 한 송이 환한 얼굴/신선의 인연 그득하여 끝내 아낌이 없네/호미 끝에 베어 던져진 예사로운 너를/밝은 창 맑은 책상 사이에 두고 공양하노라" (추사 김정희 '수선화')

그리스 신화 학습 효과 탓에 미처 살피지 못한 것 뿐이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물에 빠져 죽은 아름다운 청년의 '자기애('나르시스.narcissus)'를 떠올리며 누군들 그 안에 있다는 선비의 모습을 엿볼까 싶지만 추사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미처 몰랐던, 깊고 고매한 기운이 느껴진다.

시에 나오는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다. 알려진 대로 선비의 지조와 절개, 신념을 상징한다. 추운 겨울을 뚫고 꽃을 피우는 힘처럼 지조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학문적 깊이와 양심을 채워야 한다는 의미를 품는다. 그럼 추사 자신이 매화여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수선화에 자신을 투영한 것은 현실적 한계에서 시작된다. 제주로 유배를 오며 '위리안치'(생활하는 집 울타리에 가시를 두르고 그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하는 형벌)했던 그에게 학문적 가치와 양심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9년의 시간동안 단단해졌다. 추사가 마음을 내준 것은'설중화(雪中花)'라는 이름처럼 꽃에게는 혹독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매화처럼 단단히 지탱할 줄기도 없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허리를 접으며 꿋꿋이 생명을 이어가는 '해탈'이었는지도 모른다.

# 제주를 닮은 꽃

흔해서 시선을 끌지 못하지만 수선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제주의 봄이란 것이 온다. 봄은 꽃샘추위를 타고 대정에서 성산으로 이동한다. 수선화가 봉오리를 열며 길을 낸다. 좀더 시간을 둬야 하겠지만 추사관에서 대정향교로 이어지는 길에 가로수를 대신한 수선화에 넋을 놓다 뭔가 아쉽다 느껴질 때 쯤 두모악갤러리를 찾으면 어김없이 수선화가 피어있다. 계절을 겨울이지만 꽃만 보면 봄이다.

수선화는 어쩌면 제주를 닮았다.

국보 180호 세한도에도 설한풍을 이기고 꽃을 피워낸 수선화의 기품이 묻어 있다. 추사는 수선화의 자존심을 끝까지 존수하기 위해 목판화로까지 남긴다. 그렇게 가장 기품 있고 유장한 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제주에 사는 우리는 잘 모른다.

꽃은 피지만 씨앗을 맺지 못해 알뿌리로 번식하는 수선화는 잎이 지고 난 다음 비늘줄기를 캐어 보관했다가 이듬해에 다시 심으면 알아서 뿌리를 내린다. 토종 수선화를 제주에서는 '몰마농꽃'이라고 불렀다. '말이 먹는 마농(마늘)'이라 잡초처럼 취급했지만 한번도 남을 탓하거나 꽃 피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제주는 원래 그랬다.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지도 못했고, 뭐든 충분하지 못해 사는 것은 늘 퍽퍽했다. 그랬다고 누굴 탓하기보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삶을 일구며 살았다. 바람에 맞서기보다 타는 지혜를 쌓았고, 작은 쓰임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너나없이 풍족하고 화려하고 나서기 좋아했다면 지금 제주는 없었다.

추사가 편애했다고 하지만 그 때도 지금도 제주에서 수선화는 이맘 때 피는 그저 꽃이다.  누군가 귀하다 여겨주는 순간 그 대접이, 가치가 달라진다. 가뜩이나 정신없이 '제주'가 바뀌고 있다. '추사-수선화'에 필적할 무언가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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