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주 살아요 - 다시 일상, 원도심 '소풍'
이 동네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면서도 늘 조용하다. 대부분 이곳을 잠시 지나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하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면 복잡하고 좁고 붐비지만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리고 그 안으로 사람 사는 동네가 펼쳐져 있다. 무수한 집과 무수한 이야기와 가늘고도 길게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이 삶을 덮고 굼실굼실 기어간다.
‘골목 인문학’(임형남·노은주 저)의 한 부분이 오버랩된다.
한참을 덜컹덜컹 창을 흔들며 애를 태우던 바람이 잦아들고, 조심스레 집 밖을 나선 참이었다.
코로나19 2년으로 찾을 기회가 없었던 원도심 플리마켓이 지난달에 이어 다시 열렸다는 소문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제주시 칠성로 아케이드 일원을 발로 더듬는 원도심 소풍이다. 평소에도 종종 거닐던 곳을 일부러 찾는 재미는 특별하다.
6월 연휴 중 하루였고, 나들이 하기에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어쩌면 아이들 무리 속에도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출발을 늦춘 보람(?)이 있었다. 이미 정신없는 1부 폭퐁이 지나가고, 현장은 낮은 숨소리가 먼지처럼 깔려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좋고, 여흥을 즐기는데 더 집중한다.
두 번째 자리인데 첫 행사보다 어딘지 여백이 보인다 싶었다. “여기 저기 플리마켓 행사가 많이 열려서…” 그럴 만 했다.
골목은 풀썩하고 묵은 때 한 겹을 벗었다. 사람 냄새가 재빠르게 그 자리를 채운다.
몇 해전 제주 읍성의 흔적을 따라다녔던 기억이 났다.
스마트폰 하나면 어디서든 원하는 지리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옛 길'은 그 방대한 정보 속에서도 찾을 방법이 없다. 마냥 망설여지던 '옛 지도' 대신 훨씬 말쑥하게 정리된 지도 하나를 챙겼다.
지도 한 장에 의지해 제주읍성(濟州邑城·제주도 기념물 3호)을 더듬기 시작한다. 과거 모든 행정·문화·군사적 기능의 중심이었던 곳이지만 요즘을 사는 세대에게는 아예 낯선 이름이다. 제주읍성은 탐라국 이래 제주 역사의 중심공간이었다. 오래전부터 성이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만 될 뿐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주읍성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태종실록」으로 '1408년(태종 8) 큰 홍수로 제주성의 관사와 민가가 침수됐으며 3년 후인 1411년(태종 11) 정월 이에 대한 정비 명령이 내려졌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당시의 읍성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첫 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로 '돌로 쌓았으며 성 둘레가 910보(步)'라 적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석축으로 둘레가 4394척, 높이 11척' '산지천은 주성(州城)의 동쪽에 있고, 병문천은 주성의 서쪽에 있다'고 기록됐다. 이후 을묘왜변과 임진왜란 등의 전란을 겪으며 확장·확충의 과정을 거치고, 자연재해(산지천 범람)를 막기 위해 간성이 축조되는 등 그 규모가 계속 커진다. 하지만 1910년 전국에 내려진 읍성 철거령으로 차례차례 헐리기 시작했고, 1925~28년 산지항 개발 과정에서 성벽이 헐리고 그 돌을 바다를 매립 하는데 사용하면서 사라졌다.
제주성 자리에는 현재 도로와 주택가가 들어서 있다. 일부 잔해가 남아있지만 그 역시도 드러나 있다기 보다 파묻혀 있는 것에 가깝다. 읍성 가운데 보존 정비가 이뤄진 곳은 오현단 남측 경계석 170m 구간이 전부다.
나머지는 옛 문헌 등을 근거로 추정해 볼 뿐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제주성 답사 프로그램'인 제주북초등학교-제주은행 서문지점-제주YMCA-제주대학교 서쪽 건영카센터-오현단-동문치안센터(구 동문파출소)-제주기상청 구간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숨겨진 제주읍성 표지석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안에 담긴 얘기도 도란도란 재미있다. 제주목관아 시설과 두뭇골·칠성골·객사골 등 성안(城內) 골목길, 성내 한복판을 흐르던 산지천의 본류 가락천, 일명 '가라쿳물'의 흔적 등이 왜 이제 찾아왔냐며 눈을 흘긴다.
그 중 칠성골이 한달 한 번 과감히 숨구멍을 연다.
원도심’소풍’이란 이름으로 지역에 사람이 산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멀리서 부터 발그레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는 얼굴을 보면 그냥 반갑고, 처음 봐도 그저 바라보는 걸로 반갑다. 장(마켓)이라는 공간은 원래 그런 곳이었다. 오고가며 사람 구경하고 정을 옮기고 쓸모를 나누는 통로 아니던가. 처음부터 여기는 시장 하고 깃발을 꽂았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들면서, 필요가 모이면서 그렇게 장이 됐다. 그걸 잊고 자꾸만 뭐가 있고, 뭐는 없고 하는 훈수를 두는 시절이 아쉬워진다.
시간이라는 게, 세월이라는 게 화살처럼 한 방향으로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삶을 만든다. 도심 한복판에서 그 증거를 찾아내는 일이 거저 될 리 만무하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기도 하지만, ‘지금부터’라는 기준으로 이전에는 없던 다른 추억을 만든다.
엄마 아빠도 다 기억 못할 골목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각자가 ‘주워들은’정보를 모아 규칙을 확인하고 어느 순간 형 누나 언니 동생으로 목청을 높인다.
분명 조금 전까지 유모차에서 세상 서럽게 울던 꼬마아이가 흥겨운 음악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풍선춤을 추고 있다.
왜 자꾸 여기로 발이 움직이나 했다. 마음이 끌리는 것이었다. 그리웠던 것이었다. 도시는 기억에 산다고 했고, 골목에 그 것이 있다고 했다. 다가갈 기회를 잃는다면, 머무를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도시를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