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덕질이 부른 느닷없는 #고백 타임
한창 때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한 때 제주를 떠나고 싶다고 청춘을 불태웠던 적이 있었다. 하고 싶던 공부(참 신기하게도 늦게 불붙은) 대신 취업을 택해야 했던 사정에 큰딸 본능도 잠깐 기능을 잃고 해맸었다.
몇 번인가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던, 매웠던 기억들 속에 ‘학산문화사’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우리나라 주요 3대 만화 메이저 문화사 중 한 곳이 있었다. 좋아하는 (만화)책 중 절반은, 여기 출신이었다. 낯익은 이름에 지원서류의 빈칸을 채우면서 엄청 두근거렸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한참 만화 붐이 일었을 때였기는 했지만 처음 듣는 낯선 이름에 부모님은 싫은 기색을 감추지 않으셨다. 동시 통역이나 번역은 물론이고 일본식 자판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등등 꽤 까다로운 기준에 몇 번을 망설이다 끝내 지원서를 냈다.
은근한 고집 속에 슬그머니 숨어있던 덕후 기질의 발동했던 모양이다. 서류 전형을 간신히 넘어섰을 뿐인데도 마치 합격을 한 것처럼 기뻐 방방 뛰었다. 비슷한 시기 원서를 냈던 제주 지역 모 언론사의 최종면접일이 겹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때, 좀 더 가능성이 있는 곳이 아닌 한 번 해보고 싶었던에 손을 들었던 것을 보면. 실무 능력과 인터뷰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묻고 물어 찾아간 사무실이 예상과 달리 소박했고 기대했던 만화책 더미는 보지 못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때는 그랬었다.
고백하자면, “책을 많이 읽으시나봐요”란 질문이 무섭다. 나름 신경 써 읽는 편이기는 하다. 우울할 때 서점에 가는 습관도 있다. 온라인 검색이 얼마나 쉽고 편한지 알고 있지만 새 책 특유의 냄새와 반듯한 모서리의 찌릿함은 중독 수준이다. 그런데도 독서량에는 자신이 없다. 솔직히 많은 시간을 만화에 할애했고, 쓰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월간 만화잡지를 끼고 살았다. 주말 아침 애니메이션을 보는 루틴을 위해 새벽부터 수학 문제지 몇 장을 빛의 속도로 풀었다.
중학생 때는 가방에 까치 시리즈를 넣고 다니다 반성문도 써봤고, 단골 만화방 주인 언니의 총애(?) 속에 신간을 섭렵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박싱 수준의 두근거림과 새 책 냄새에 정신을 못차렸던 것 같다.
그 시작점은 사실 아빠 퇴근길의 찐보물 '어깨동무'와 ‘보물섬’이었다. 한달 한 번 그날을 잠도 안 자고 기다렸다가 삼남매가, 내 기억이 맞다면 성적순으로 읽었었다. '다음에 계속'이 세상 허무하고 애태우는 말인줄을 일찍 배웠다. '나라면'하는 무한 상상과 전세계도 모자라 우주와 바닷 속을 넘나드는 그저 가슴 두근거리는 배경, 다양한 감정선까지 혼이 쏙하고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래보다 작고 몸이 약해서 늘상 집 안에서 놀았던 아이에게 만화는 뭐든 할 수 있는 신세계만 같았다.
그 후 많은 것-홍차(홍차왕자) 와인(신의물방울) 인도주의(닥터 키튼) 미술지식(갤러리 페이크) 등-을 만화에서 배웠다. 생각해보니 10번 넘게 섭렵한 삼국지도 삽화로 정리된 작품을 읽고 외우다시피 했었다. 윙크 같은 순정만화 잡지는 용돈을 탈탈 털어 내 것으로 만들었다. 당시 내 주변에 있던 친구 중에는 나보다 내 옆지기인 윙크를 대놓고 더 사랑한 아이도 있었다.
무슨 얘기를 이리 장황하게 하나…하면
불쑥하고 다시 만화책을 샀다. 일단 저질렀다. 만약 그 때 운이 맞았다면 내가 기획하고 번역하고 기타 등등 여러가지 일을 했을지 모를 그런 작품이라고 혼자 여러 이유를 늘어놨다.
‘세월이 흘러 다리로 간다’
전통을 고수하느라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포목점을 이어받은 젊은 아들의 혁신과 지금까지 한번도 여성에게 허락되다 않았던 미츠보시 최초의 여성 직원의 활약. 신구 교체의 갈등, 동.서양 문화의 융.복합, 여성 차별적 사회 분위기 등등 익숙하면서도 살필 것 많은 포인트가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인물 캐릭터도 좋고 내용도 흥미진진하고 작화까지 좋아서 별일이 없는 한 완결까지 계속 볼 듯하다. 2017년 시작해 아직 연재중…이라니 긴 호흡으로 기다려 봐야겠다.
말이 자꾸 길어지지만 ‘덕후’인 것을 후회해 보지 않았다. 몇 번 보관의 문제와 원하던 원작의 몸값 상승에 흔들린 적은 있다.
덕질은 허락의 범위가 아니라 스스로 누리는 자유의지의 영역이다.
나를 나 자신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영향력과 나를 나 자신과 더욱 가깝게 이끌어 더 큰 자유를 주는 영향력의 차이를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요즘덕후의덕질로철학하기 중)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을 보면 교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내 안에 있는 호기심을 죽인다는 것은 교양을 쌓을 기회를 강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호기심은 이 세계에 과연 어떤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끊임없는 갈망이다.
….그래서 만화를 본다. 덕질도 한다. 내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