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어머니
다만 잘 모르겠다. 아니 알 것도 같다. 머릿속이 복잡한 것도 모자라 가슴은 좀처럼 진정이란 걸 모른다. 이럴 줄이야. 아, 이럴 줄이야.
미리 하는 말이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드라마를 시작하지 않는다. 요일과 시간을 맞추는 것도 그렇고, 처음과 끝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킬 자신이 없어 늘 그렇듯 극의 중반이 넘어선 다음 지난 줄거리를 대충 훑어 인과관계 비슷한 것을 정리한 뒤 최종회를 보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곤 했다. 나름 관리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그 것이 자만임을 자인하고 말았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어머니 때문이다.
‘추앙하다’는 말이 SNS를 불태우고 재가 된 즈음에 <나의 해방일지>를 봤다. 늘 그랬듯 공식 홈페이지에서 등장인물 관계도를 쓱, 지난 줄거리도 쓱하고 살폈다. 대충 흐름은 알겠다고 용감하게 채널을 선택한 그날, 그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느닷없이. 분명 누가 나오는지 어떤 관계인지 살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사람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등장인물 소개에 없었다. 버거운 살림살이에 염씨네 삼남매가 평범과는 거리를 두고 세상과 부대꼈던 까닭에 어머니의 표정은 굳어있지 않으면 구겨진 상태였다. 중간부터 봤는데도, 어쩌면 분장이 잘 될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흠칫 내 표정도 그럴까 안면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그 어머니가 홀연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비로소 어머니의 비중이 커진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다.
묵묵히 일만 하는 아버지 뒤로 어머니는 무수히 많은 역할을 했다. 잔소리에 짜증까지 악역을 자처하면서 빈자리를 채우느라 숨도 제대로 쉴 짬이 없었다. 공장 일을 돕고, 텃밭을 가꾸고, 매 끼니 따뜻한 밥상을 챙기고, 남편과 아이들의 중재 역할을 하고. 어머니니까 당연한 일은 세상에 없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가족들은 어머니 혼자 해내던 일을 직접 복기하며 느낀다. “엄마는 과로사야”.
그랬다. 어머니의 역할은 손바닥 뒤집듯 살피면서 정작 그 어머니의 해방은 생각하지 않았다. " 왜 이렇게 땀이 날까" 하던 어머니의 푸념은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었다. 흔한 갱년기 증상 중 하나다. 누군가의 관심이 간절했을 때 어머니는 삼시세끼를 챙기느라 편히 앉아있을 시간도 챙기지 못했다.
어머니가 죽음으로 해방을 찾은 순간 가족은 자신들을 지탱하던 고리 하나를 잃는다. 별 것 아니라 여겼던 '구멍'은 점점 커지고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지난 주말 뭉클한 위로와 함께 끝난 <우리들의 블루스>는 남동생이 보낸 동영상 하나로 보기 시작했다. 이름만 대도 누군지 아는 배우들의 어딘지 어눌한 제주말 연기를 ‘웃으라고’보냈다. 제주출신 배우에, 낯익은 제주 배우들까지 포진했지만 연기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셈 치고 몇 번 들여다 봤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아침 또는 저녁 뉴스를 보는 취미만 있다면, 아니 SNS를 부유하는 이야기들을 그냥 흘리지 않았다면 어디선가 듣거나 봤음직한 ‘인생’이 나온다. 섬 작은 마을에서 같이 자란 훌쩍 중년이 된 친구들은 닮은 구석 하나 없이 각자의 역할을 한다. 누군가는 짠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기러기 아빠, 누군가는 어쩌다 목소리가 큰 여장부로 시장을 주름잡는 생선장수가 됐다. 젊은 시절 오해로 원수처럼 지내다가 고등학생 아들·딸이 사고를 치면서 사돈이 되는 홀아비 친구, 알고 보니 매 맞는 남편과 화려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가족이 간절해 세 번이나 결혼했던 돌싱까지 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를 둔 이주민 해녀 정도가 그나마 ‘특이한’에 범주에 들어간다.
화려한 출연진과 생각이 많아지는 에피소드들 사이에서 집중하기 시작 것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다. 해녀 공동체에서는 대상군으로 불리는 어른이지만, 자식을 다 앞세운 것도 모자라 하나 남은 자식의 ‘마지막’ 앞에 어쩔 줄 몰라하는 춘희 삼촌과 몇 십 년을 친자식의 원망을 받으며 ‘작은 어멍’으로 자신을 낮춘 동석이 엄마.
이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10여년 해녀 취재를 하면서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들의 사연을 종종 만난다. 무슨 팔자인지 자식의 목숨을 두 번이나 집어삼킨 바다에 의지해 먹고 산다는 어느 노해녀의 말에 펑펑 운 적도 있다. 바깥물질 다녀왔더니 어느새 ‘작은 어멍’이 돼 있더라며 ‘그래도 급할 때, 필요할 때는 이 어멍을 찾는다’고 자식을 챙기는 할머니도 있었다.
힘든 것은 자신이 감내하면 된다고 며느리가 하기 힘든 결정을 대신 해주는 어머니의 심정은, 차마 소리 내지 못해 꺽꺽 삼키는 울음이 말해준다. 그 어머니를 위해 100개의 달을 띄운 동네 사람들의 인정은 드라마틱한 기적을 만든다.
그리고 동석이 어머니. 마지막 서로의 진심을 알고 제대로 살아보자 하는 순간 긴 이별을 마주한 모자의 이야기에서 다시 ‘부재’의 무게를 느꼈다. 행복하고 싶었던 것은 남은 아들보다 떠난 어머니가 더 간절했다. 마지막 메시지가 강했던 탓에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어머니의 대사가 그랬다. 아마도 아들과 처음 짜장면을 먹기 전 장면이었던 것 같다. 퉁명스럽기가 그지 없는 아들은 처음 본 강아지를 어루만지는 어머니를 보고 “자기 자식한테는 그러지 않으면서…”하고 툴툴댄다. 사실 어머니는 자신을 읽고 있었다. “너는 이름이 뭐라. 나는 강옥동인디. 넌 그냥 강아지라?”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어머니 이름부터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호명하고 글자로 써서 남기는 작업도 그러했다. 그저 ‘나’이고 싶은 마음,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선택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렇게 토해냈던 것은 아닐까.
어린 나이 먹을 입 하나 줄이기 위해 식당 도우미로 고향을 떠났고, 물이 죽도록 무서웠지만 먹고 살기 위해 물질을 했고, 남편이 죽고 당장 생계가 힘들어지자 본처 병수발까지 감수하며 재혼을 한다. 버티기 위해서는 미쳐야 했다. 딸을 바다에서 잃고 하나 남은 아들만큼은 제때 밥을 먹이고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어머니라는 이름까지 버렸다. 무뚝뚝하고 자신에 늘 날을 세웠던 아들과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기면서, 정작 자신이 죽으면 장례도 치르지 말고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끝까지 짐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런 그녀가 “내일 아침 밥 먹으러 오겠다”는 아들의 말에 원하는 된장찌개를 끓여 직접 밥상을 챙기고 나서 조용히 눈을 감은 것은, 무거운 병보다 그토록 원했던 ‘나, 어머니’를 찾았다는 안도 때문은 아니었을까.
읽을 때마다 눈물 콧물 시(詩) 알러지를 일으키는 심순덕 시인의 허심탄회한 고백이 이 밤 턱턱 하고 등을 두드려댄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꾸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