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윤동주문학관'에서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내일은 없나니
-윤동주 ‘내일은 없다’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연희전문학교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생활을 했으며 인왕산에 자주 올라 시정(詩情)을 다듬었다. 이런 인연을 살려 종로구는 2012년,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있던 청운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하여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 가압장이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수도 시설이다. 윤동주의 시는 상처받고 지친 영혼이 다시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영혼의 가압장과도 같다.
일단 윤동주 문학관을 설명하는 글을 정리해 옮겨본다. 올해로 문을 연지 10년째라는 이 곳을, 이제야, 우여곡절 끝에 찾았다.
5월의 볕이 제법 맵다. 오후 시간을 내서 서촌을 둘러보자고 나선 길이었다. 마스크로 다 가리지 못한 얼굴 구석구석을 야무지게 건드리는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는 것도 슬슬 힘에 부쳐갈 무렵 '그래도 거기에 가봐야지'하는 말이 생각났다. '걸어서 30분 거리'라는 말에 잠시 망설였다. 좋아하는 시인의 공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운좋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윤동주문학관으로 가는 사이 새정부 이전에도 개방한 상태였다는 청와대 옆 길을 따라 '창의문로 119'번지로 향했다.
쓰임을 잃고 빠른 속도로 낡은 수도시설을 리모델링했다는 짤막한 정보와 윤동주라는 이름만 따라간 길이다.
청운 가압장은 인근 아파트 급수를 위해 1974년에 설치됐다. 이후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덩달아 쓸모가 없어진 가압장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성곽 주변 아파트 터에 윤동주 언덕을 조성하기로 하면서 '운명처럼' 문학관이 될 기회를 얻는다. 사실 근처에 당도해 ‘윤동주 문학관’이란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 백색 페인트로 단순하게 마감된 소박한 외관은 마치 펼치지 않은 교양서적 표지처럼 단정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전국 곳곳의 문학관들 중에 예상보다 담백하기로는 한 손가락안에 들 정도다.
들어서자 마자 마주하는 공간은 제1전시실 ‘시인채’다. 시인의 순결한 시심(詩心)을 상징하는 공간에는 시인의 각종 유품, 자필 서신, 사진, 친필원고 영인본이 길지 않았던 시인의 삶을 함축한다. 실내촬영은 허락되지 않았다. 앞 관람객을 따라 종종걸음을 걷는 사이 9개 테마가 말그대로 정신없이 지나간다.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으니 두고 찾아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밖으로 연결된 문을 나섰다.
이어진 두 번째 전시실 ‘열린 우물’은 하늘이 천장을 대신하는 작은 공간이다. 그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처럼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있고 파란 바람이 불며 계절이 불쑥 다가온다.
문학관을 만들던 당시에는 물때와 곰팡이가 많이 피었던, 몹쓸(?) 공간이었지만 천장을 뜯어내는 것으로 시원(始原)을 팠다. 물이 차올랐던 곳에 시(詩)가 솟는다. 윤동주여서 가능했던 일은 아니었을까.
둔중한 철문 너머 캄캄하고 축축한 방이 나온다. 제3전시실 ‘닫힌 우물’.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만들었다. 윤동주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이 관람객의 마음을 붙든다.
영화 동주에서 시인 정지용이 청년 윤동주에게 했던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라는 대사가 귓전을 울린다.
재봉틀까지 잘 해서 함께 축구를 하던 친구들의 운동복에 번호표를 달아주기도 했다는, 한없이 섬세했던 청년 윤동주는 어쩌다 그 시절을 만나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운명의 시계 바늘에 휘둘려야 했다. 글을 쓰는 것으로는 다 풀어낼 수 없었던 암울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를 끄적거렸던 흔적은 그 끝이 뭉툭해 더 아프다.
만 스물일곱하고 쉰 날도 못 채운 생을 마감했던 그해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다. 이국 땅의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서, 그것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가까운 형무소였다는 그 곳에서 이름도, 성분도 알지 못하는 주사약에 마지막 숨까지 빼앗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약 살아서 해방된 조국 땅을 밟았다면 그가 쏟아냈을 시는 무슨 색을 띠었을까.
닫힌 우물로 들어오는 햇빛을 따라 나오면 건물 밖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만나게 된다. 젊은 시절의 윤동주가 시와 삶, 그리고 시대의 엄혹한 칼날과 조국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며 걷던 길이다. 곳곳에서 의도치 않게 시인을 만난다. 다음에는 채비를 단단히 해서, 좀 더 시간을 들여 둘러보리라는 다짐만 남기고 돌아섰다. 분명 앞을 향했는데 자꾸만 뒷걸음 치는 것만 같다. ‘거꾸로 걷는다’ ‘미련만 남아’하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이런 느낌일까. 공간 안에서 챙겼던 것을 몇 번이고 되새김하는 사이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무리를 따라 서둘러 움직였다.
넘어가는 해가 남긴 긴 그림자 대신 시인이 글로 쓴 흰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황혼(黃昏)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사슴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 윤동주 ‘흰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