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 Oct 28. 2022

그 때 '삶'을 쌓아 올린 에움길에 서서

제주 길에서 묻다 : 첫 길. 지도에서 더듬은 제주의 옛길 2


“무엇이 이토록 지친 나를 걷게 하는가. 사랑만이 나를 다시 걷게 한다. 나는 사랑 안에서 나를 잃어버린다.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그러면 사랑이 어디론가 나를 데려다주리라.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오고 있는 너에게로, 아직 내가 모르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로. 나만의 빛나는 길은 잘못 내디딘 발자국들로 인하여 비로소 찾아지고 길이 되는 것이니.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박노해 '길'



스마트폰 하나면 어디서든 원하는 지리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옛 길'은 그 방대한 정보 속에서도 찾을 방법이 없다. 마냥 망설여지던 '옛 지도' 대신 훨씬 말쑥하게 정리된 지도 하나를 챙겼다. 그래도 눈앞이 '캄캄'이다. 이럴 때는 아날로그식이 최선이다. 짐은 가능한 가볍게, 편안 신발과 얼굴을 조금 두껍게 만들고 길을 나선다. 발바닥에 스믈스믈 동통이 올라올 즈음, 멀게 느껴졌던 길이 가깝게 다가온다.     

# 제주성을 즈려밟고…     


지도 한 장에 의지해 제주읍성(濟州邑城·제주도 기념물 3호)을 더듬기 시작한다. 과거 모든 행정·문화·군사적 기능의 중심이었던 곳이지만 요즘을 사는 세대에게는 아예 낯선 이름이다. 제주읍성은 탐라국 이래 제주 역사의 중심공간이었다. 오래전부터 성이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만 될 뿐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주읍성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태종실록」으로 '1408년(태종 8) 큰 홍수로 제주성의 관사와 민가가 침수됐으며 3년 후인 1411년(태종 11) 정월 이에 대한 정비 명령이 내려졌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당시의 읍성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첫 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로 '돌로 쌓았으며 성 둘레가 910보(步)'라 적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석축으로 둘레가 4394척, 높이 11척' '산지천은 주성(州城)의 동쪽에 있고, 병문천은 주성의 서쪽에 있다'고 기록됐다. 이후 을묘왜변과 임진왜란 등의 전란을 겪으며 확장·확충의 과정을 거치고, 자연재해(산지천 범람)를 막기 위해 간성이 축조되는 등 그 규모가 계속 커진다. 하지만 1910년 전국에 내려진 읍성 철거령으로 차례차례 헐리기 시작했고, 1925~28년 산지항 개발 과정에서 성벽이 헐리고 그 돌을 바다를 매립하는데 사용하면서 사라졌다.

제주성 자리에는 현재 도로와 주택가가 들어서 있다. 일부 잔해가 남아있지만 그 역시도 드러나 있다기 보다 파묻혀 있는 것에 가깝다. 읍성 가운데 보존 정비가 이뤄진 곳은 오현단 남측 경계석 170m  구간이 전부다.

     

나머지는 옛 문헌 등을 근거로 추정해 볼 뿐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제주성 답사 프로그램'인 제주북초등학교-제주은행 서문지점-제주YMCA-예술공간 이아 서쪽 건영카센터-오현단-동문치안센터(구 동문파출소)-제주기상청(W360) 구간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숨겨진 제주읍성 표지석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안에 담겨진 얘기도 도란도란 재미있다. 제주목관아 시설과 두뭇골·칠성골·객사골 등 성안(城內) 골목길, 성내 한복판을 흐르던 산지천의 본류 가락천, 일명 '가라쿳물'의 흔적 등이 왜 이제 찾아왔냐며 눈을 흘긴다.

그 후에도 원도심을 누빌 여러 길이 만들어졌다.

10월 1일 개장한 ‘성안올레’도 있다.

제주시와 ㈔주올레는 산지천을 출발해 사라봉과 제주시 동문시장을 거쳐 돌아오는 6㎞의 '성안올레'를 기획했다.

원도심 올레길의 의미를 담은 성안올레는 옛 제주성안의 동자복과 모충사, 조선시대 군사지휘소였던 운주당 지구 등 원도심의 역사문화자원을 걸어서 만날 수 있게 했다.

제주항과 제주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사라봉과 1960~70년대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두맹이 골목,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가득한 동문시장 등을 누비는 길이다.


앞서 2019년부터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운영한 ‘원도심 심쿵 투어’코스도 있었다. 제주시 원도심 내 문화·관광자원, 볼거리, 먹거리 등을 활용한 3개 코스에 재미 요소를 더한 도보 관광 상품이다.

2009년 제주문화예술재단은 화북포에서 제주성안까지는 10리길, 제주시 화북 곤을동을 지나 오현고,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동문, 동문시장, 제주목으로 들어오는 '화북포구~제주성안 옛길 걷기'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 사이 지역 문화단체나 기관이 주도한 탐방이나 답사 프로그램이 꽤 많이 운영됐었다.     




#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사람이 다니라고 만든 길은 몸만 옮겨놓지 않는다. 몸이 가는대로 마음이 간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가면 그 길은 길이 아니라 도(道)이다". 감히 책에 밑줄을 긋게 했던 글이 길과 오버랩 된다.

최신 장비(?)가 갖춰졌으니 문제없다며 큰소리를 치며 나섰지만 이내 궁색해졌다. 일단 가능한 차로 이동이 가능한 경로를 살폈던 실수가 가장 컸다. 바로 포기하고 발품을 판다. 처음부터 '걷자' 작정했다면 이리 힘들지도 않았을 터. 지도에 색깔 펜으로 온갖 정보를 적고, 인터넷 검색 포털을 돌렸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게, 세월이라는 게 화살처럼 한 방향으로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삶을 만든다. 도심 한복판에서 그 증거를 찾아내는 일이 거저 될 리 만무하다. 옛 성곽 위에 집을 지어 오늘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남수각 동쪽 찾아 간 길. 같은 정보를 놓고 손가락이 자꾸만 여러곳을 가리킨다.

제주성곽 위 지어진 집
옛 성터 흔적이 마당에 남아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하는 가사를 흥얼거리며 비슷비슷한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던 중 동네 어르신을 만났다. 무작정 붙들고 길을 물었다. 그렇게 어르신의 뒤를 쫓아 심지어 남의 집 마당까지 가로지르고 나서야 비로소 '시간'과 만났다. 낯선 이들의 부산한 걸음을 집주인은 그저 담담히 바라본다. 단순히 이런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는 느낌을 훨씬 넘어선다.

어르신의 손끝을 따라 성곽을 더듬는 동안 시간에 쫓겨 허둥대던 모습들은 슬그머니 허리를 접고 주머니 깊숙한 곳으로 사라진다. 오래전부터 제주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공간, 그 역사문화의 중심에 섰다는 경외감에 한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

그 곳에서 본 원도심은 그동안 봤던 것들과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길이 만든 마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존의 힘, 보이는 너머에 '진짜'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