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다
둔두두두 둔두두두 둔두두두 둔두두두.
얼마 만일까. 큰 스크린을 마주하고 앉아 오직 비트만으로 심장이 두근댔던 일이. 007 제임스 본드 테마와 미션 임파서블 OST처럼 듣는 순간 ‘아하’하고 손에 땀을 쥐었던 기억을 끄집어냈던 일이.
며칠 고심하고, 또 며칠은 10대 아들의 동행을 부탁하고 그렇게 벼르고 별러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봤다. 아이가 어렸을 때 방학이면 일주일에 한 두 번 영화관을 들락날락 거렸었는데 코로나19를 지나며 ‘특별한’일이 됐다. 그런 아쉬움을 고이 접어두고, 영화관이다. 다만 상영시간을 헷갈린 탓에 설렐 순간도 없이 허겁지겁 자리를 찾아 앉고 숨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그리 높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비트에 심장을 내줬다.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있지만 나는 만화광(狂)이다. 가방에 ‘떠돌이 까치’에 ‘신의 아들’같은 장편 만화를 잔뜩 넣고 다니다 교무실에 끌려가 반성문을 쓴 적도 있고, 동네 만화방 VIP로 신작을 넣을 건지 말 건지를 고르기도 했었다. ‘드래곤볼’도, ‘원피스’도 다 종이책으로 봤다. 어지간한 시리즈는 섭렵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당연히 ‘슬램덩크’도 끝까지 봤다. 일본의 「주간 소년 점프」에서 6년 간 연재된 작품은 1992년 도서출발 대원이 수입해 국내에서도 「소년 챔프」를 통해 알려졌지만 그 이전부터 일본 원본에 해적판까지 공공연하게 나돌았던 기억이 있다. 단행본 31권을 전부 다 읽고 캐릭터들이 지닌 개성과 서사에 나름 감동했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그 얘기를 하지 못했다. 한창 만화를 읽을 때 주변에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가 없었고 그렇다고 농구공을 만지작거리기에는 키도 작고 손도 작았다. 몇 번인가 스포츠를 주제로 한 만화를 읽다가 다른 장르를 기웃거리며 아직까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 와중에 일본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수입해 국내에 보급하는 출판미디어 업체에 입사지원서를 넣고 2차인가 3차까지 시험을 봤었다.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지금와 생각해보니 농구와 관련한 내 지식의 70% 이상은 만화에서 배운 것 같다. 스포츠는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나마 공이 작을 수록 잘 하는 편이다.
1995년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개봉된 이후 26년 만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으니, 이제는 세상을 알 만큼 알았으니 세상 물정 모르고 만화가 전부였던 그 때 같은 느낌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결이 보태지고 그들의 땀방울이, 이야기가 더 단단해진다. 슬램덩크의 맛은 혼자가 아닌 ‘우리’에 있다.
코트에 선 이들은 세상을 향해 묻는다. “OOOが 惡いか(OOO이 나쁜가·OOO가 뭐 어때서?”) 그리도 우리는 답한다. “아니”.
안 감독이 주는 ‘기회’에는 강요가 없다. 할 수 있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저 하게 둔다. 그 안에 ‘무엇’을 조언하고 스스로 찾게 한다. 송태섭 중심의 이야기 전개는 이전 ‘알고 있던’의 경계를 허무는 것 외에도 성장과 극복의 코드를 읽게 한다. 아버지에 이어 형까지 잃은 소년은 그 마음을 다 추스르기 전에 유망주였던 형의 그늘에서 머뭇거린다.
졸지에 기댈 어깨 두 개를 잃은 어머니는 남은 아이의 어깨가 될 것을 선택한다. 이해를 구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크면서 배운다. 힘든 승부를 마치고 어머니와 대화하며 ‘어린 나에게 기댈 건 농구뿐이었다.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건 농구를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대략 이런 내용)’는 송태섭의 말이나, 큰오빠는 먼 바다 외딴섬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꼬마 여자아이(송태섭 막내 여동생)가 그 때 오빠보다 더 나이를 먹고 ‘이러다 얼굴을 잊겠다’며 큰오빠의 사진을 꺼내자며 툭하고 던지는 말은 가족들이 입었던 상처들이 곱게 아물었음을 알게 했다.
밋밋해보이지만, 섬세하게 그려진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가 송태섭의 성장과 맞물려 있음도 짠했다. 역시 스토리의 힘은, 강하다. 어쩌면 심한 사춘기 홍역을 치르고 아직 현실 적응 중인 꼭 그만한 나이의 아들이 있어 더 감정이입했는지도 모른다.
오프닝에 이어 무엇보다 강렬했던 건 ‘22초’가 남은 상황에서 강백호가 마지막 ‘왼손은 거들 뿐’을 실현하기까지의 무음(無音) 연출. 순간 음향사고인가 하고 멈칫했을 정도의 정막, 아마 다른 장치가 보태졌다면 이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깊은 몰입을 유도한 그 순간이 공간을 뒤집어놓았다.
마지막 쿠키 영상까지 챙기고 나서 제연군과 한참을 얘기했다. <슬램덩크를 읽지 않은 세대>이자 ‘농구는 잘 모르는’ 10대에게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매력있는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제연군의 픽은 묵직한 비트에 사각거리는 연필 스케치가 보태지며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이 한명씩 등장하는 오프닝 장면. 엄마의 선택은, 너무 많아 고르기 어렵지만 굳이 꼽자면 마지막 공격을 성공시킨 뒤 정막을 깨뜨리는 강백호와 서태웅의 하이파이브 장면이랄까. 슛을 몰랐던 초짜 강백호와 멀티플레이어에 자기애가 강한 서태웅이 주고받음으로 각자의 한계를 제대로 넘어섰다는 점에 명치 끝이 뜨거워졌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라는 말은,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주문이기도 했다.
원작 작가가 참여한 첫 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지만 생각보다 많이 덜어낸 화면 구성이 이번 작품을 제대로 살렸다고 본다. 만약 여기에 욕심을 잔뜩 부렸다면 아들과 극장에 갈 생각따위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더해 송태섭의 고향 마을, 그러니까 오키나와의 풍경이 제주와 많이 닮아서 왠지 그리운 것이 불쑥불쑥 보태졌다는 점도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연군의 질문이 허를 찌른다. “왜 안경쓴 선배 있잖아?” “아 (권)준호군?” “여기서 역할이 뭐야?”...아 여기서 느껴지는 읽은 사람과 아직 안 읽은 사람. 한참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영화에서 느낀 감정을 되살리느라 OST를 틀어놓고 ‘둔두두두~’흥얼거리다 제연군의 한마디에 현타가 왔다. “정말 그렇게 쓸 생각이야?” “응 엄마는 이 느낌이 좋은데 살리고 싶어” “그런 엄마 생각이지. 이럴 때 보면 엄마는 가끔 아이 같아. 생각해봐 떳다떳다 비행기를 따따따따 따따따 하고 쓰면 누가 알겠어?” “음 비행기 동요를 아는 사람?” “엄마도 참...”
다시 슬램덩크를 정주행하고 싶어서 제연군 옆구리를 찔렀는데(‘읽어보고 싶지 않아?’), 역시 강적이다. “흠..그러길 원해? 31권이라며...어떻게 설득하는지 보고 한 번 생각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