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40년만의 송골매, 「나무처럼 살아간다」
‘센티(sentimental)’한 그때를 공유할 수 있는 게 우리의 특권이지.
설 전날 늦은 시간 톡하고 날아온 메시지에 역시 톡하고 마음을 전했다. ‘돌아갈 수 없는 그때’가 그립고 아쉽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거기에 멈추기는 싫은 어떤 감정이 즉각 작동했다.
한 공영방송의 설 대기획인 밴드 '송골매'의 콘서트 '40년만의 비행’이 그 때를 소환한다. 사실 친구와 공유한 그때는 송골매의 전성기가 어느 정도 지난 시절이었다. 남녀공학 고등학교, 그리고 방송부를 했던 덕에 음악 장르를 가리지는 않았지만 내 그 때는 ‘다섯 손가락’의 자리가 더 크다. 첫 콘서트의 기억은 故 김현식과 한영애가 함께 했던 자리였다. 알고 갔는지 끌려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공연을 보고난 후 한참을 노래 가사를 필사하는데 썼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노래 가사는 시보다 더 진했다.
아무튼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하며 남자아이들이 기타 줄을 튕기거나 드럼 스틱을 돌릴 때 손으로, 색으로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글자 꾸미기를 했었다. ‘해지고 어두운 거리를 홀로 걸어 수요일 빨간 장미를 건네주는’ 순정 만화 같은 그림이 어쩌다 마주친 그대에게 내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 보다 더 심장을 뛰게 했다. 아니 했었다. 그게 지금은 무슨 밸런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둘 중 어느 쪽을 물으면 한참을 고민하게 됐다. 분명 나이 탓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데,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친구의 톡은 아마도 송골매 자체가 화자(話者) 역할을 맡아 살짝 잊었던 청춘의 옆구리를 쿡 찔러준 결과였다. 한 때 뮤지션을 꿈꿨던 친구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거침없이 드러머로 변신을 하지만 평상시는 어려운 결정이나 불편한 상황에 부대끼며 전쟁처럼 오늘을 산다. 그런 친구에게 송골매의 비행은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흔들고, 정해진 길을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우리에게 청춘 그리고 록(Rock), 음악이 있었다는 걸 대신 이야기해 준 때문이리라. ‘역시! 음악하러 가자’고 부채질 하는 메시지를 몇 줄 입력하다 쓱 지우고 부지런히 정리한 마음이 ‘센티한 그때의 특권’이다.
그 때도 지금도 음악을 들으며 가슴 뛰는 것을 선택하는 이유다.
송골매는 1970년대 대학교 그룹사운드 문화에서 출발한 밴드다. 1979년 항공대학교 그룹사운드 '활주로' 멤버였던 배철수를 중심으로 송골매가 결성됐고, 이후 '블랙 테트라'의 보컬 구창모와 김정선이 합류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송골매의 모습이 완성됐다. 완성형 송골매와 이후 구창모가 솔로로 팀에서 나오고, 1990년 결국 해체 됐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 뉴웨이브와 디스코, 이키델릭,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내놓은 곡들 중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빗물', '모여라' 같은 히트곡 리스트의 절반 이상을 아는 걸 보면 그 때를 상징하는 존재는 분명하다. 콘서트를 지켜보며 ‘이 빠진 동그라미’가 배철수의 솔로곡이란 걸 알았으니 그 시절 기억에 구멍이 꽤 된다는 것도 인정하게 됐다.
그 보다 더 가슴을 뛰게 했던 것은 두 전설의 존재였다.
배철수(1953년생)와 구창모(1954년생)는 한국 기준으로 올해 모두 칠순을 넘겼다. 하지만 공연을 보는 내내 그 나이는 읽을 수 없었다. 얼마나 무대를 갈망했으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관리했으면 하는 생각이 소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귓가에 쩡쩡 울렸다.
그리고 늘 무대에서 열 발자국 정도 뒤에서 송골매의 비상을 응원하고 지켜줬던 연주자들에 대한 진심까지 순간을 역사로 만들었다. 야심한 밤 친구의 무심한 톡에 놀란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멋진 일이다. 그렇게 새해 첫 인사까지. 그런 청춘은 세월을 먹지 않는다. 아무렴.
하늘에 구름 떠가네 보라색 그 향기도
이 몸이 하늘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곁에 사랑도 가네 빨간 입맞춤도
시간이 멈춰지면 얼마나 좋을까
비 맞은 태양도 목마른 저 달도
내일의 문 앞에 서있네
아무런 미련 없이
그대 행복 위해 돌아설까나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하리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하리
흥얼흥얼 ‘그 시절 그 노래’를 오늘 비트로 옮겨 부르며 이번 설 연휴 첫 마침표를 찍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가장 가벼울 것 같아 고른 「나무처럼 살아간다」(리즈 마빈 씀/애니 데이비드슨 그림/김현수 옮김). ‘흔들리며 버티며 살아가는’이란 부제에서 이미 겸손해진 마음은 몇 번인가 책갈피를 옮겨 끼우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고민하다 슬그머니 가라 앉았다.
그리고 흥얼거림을 타고 일어나 ‘지금 가장’의 마음으로 등을 세웠다. 비상한 송골매에게 얼마나 오래 날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날고 있는 것으로 충분히 빛났다.
그렇게 내 앞에 뿌리를 내린 것은 서어나무.
숲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저희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치른 후 음수(陰樹)의 특성을 가진 한 무리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 차지한다. 우리나라 남해안과 높은 산꼭대기를 제외한 현재 남한의 대부분을 온대림(溫帶林)이라고 하는데, 이런 곳의 최후 승리자는 바로 서어나무와 참나무 무리다. 온대림의 대표주자로서 흔히 서어나무를 내세운다. 그만큼 넓은 면적에 걸쳐 수천수만 년을 이어온 우리 숲의 가장 흔한 나무 중 하나가 서어나무다.
「우리 나무의 세계」를 쓴 박상진 박사는 서어나무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서목(西木)’을 우리말로 ‘서나무’라고 했다가 발음이 자연스러운 ‘서어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고 했다. 입에는 붙지 않는 이름이지만 온대림이라는 이름으로 수천수만 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숲의 가장 흔한 나무 중 하나가 서어나무다. 서어나무는 몸체를 키우는 메커니즘이 다른 나무들과는 좀 달라서 나이테의 어느 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더 많이 양분을 준다. 양분을 많이 받은 부위의 나이테는 넓어지고 적게 받은 부위는 좁아진다. 나무를 잘라 놓고 보면 나이테는 보통 다른 나무들이 간격이 일정한 동심원인데 비해 서어나무는 나이테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 파도처럼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줄기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지는 특징을 갖는다.
저자는 그런 서어나무의 특징을 ‘나답게’로 정리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내 모습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유혹을 받곤 하니까. 진정한 자아를 지키려면 나를 감싸고 있는 외피를 인정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엽록소를 낭비하는 법이 없다.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성장에 집중한다. 겸손한 서어나무도 그렇다. 서어나무는 특별히 높이 자라지도 않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않으며, 달콤한 과일을 맺지도 않는다. 요란한 박수갈채 따위, 기대한 적 없다. 늘 건강하고 견고하게 수천년 동안 자기 자리를 지켜왔을 뿐’.
오가며 몇번은 봤을 나무에 이런 지혜가 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느리게 또 오래 지켜온 것들이 만든 메시지는 강하다.
나답게, 건강하고 견고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 다행이다. 올해 할 일의 빈 칸을 하나 더 채울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