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이지유 개인전 ‘The Vessel’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의 마지막 인터뷰. 각각 하나의 ‘선자‘인 할머니들은 기억했다. 다시 떠올리기 힘든 고달프고 아픈 삶이었다. 선택도 쉽지 않았지만 배 가장 밑바닥에서 해가 뜨고 또 지은 것도 모른 채 허기짐을, 막연한 현실에 대한 불안을 시간을 집어 삼키며 견뎠다. 그렇게 닿은 땅은 편견과 차별이란 칼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채 느끼기도 전에 무뎌진 아픔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의 뒤에는 가족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에 어려움은 없었어요. 내가 선택해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아요” “모두가 꿈같아요. 이것도 저것도”.
오사카 산업대학 후지나가 다케시 교수(재일제주인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의 <재일 제주인과 ‘밀항’: ‘재일 제주도 출신자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의 조사에서>가 확인한 1975년 법무성 입국관리국 자료를 살펴보면 1970년부터 4년동안 조사된 한국 불법 이민자 740명 중에 608명이 제주도 출신이었다.
재일제주인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의 빈 자리가 아직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없어도 있는 동네.
그대로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 동네.
전차만 애써 먼발치서 달리고
화장터만 잽싸게
눌러앉은 동네.
누구나 다 알지만
지도엔 없고
지도에 없으니까
일본이 아니고
일본이 아니니까
사라져도 상관없고
아무래도 좋으니
마음 편하다네’(김시종 시인의 ‘보이지 않는 동네’ 중) 하고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휘둘리면서도 앙세게 버텨낸 수많은 잔뿌리들이 얽히고설키면서 힘든 순간을 견디며 연장해 온 것들 없이는 그때도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살펴야 할 것은, 당장 반짝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이용하거나 어설픔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 만족이 아니라 재일제주인이 겪은 역사적인 행로와 다양한 경험들의 인정이다. 그 것을 모른다면 정말 면목없다.
디아스포라. 전시장에 꺼내놓은 것들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낮은 자세로 그들을 찾아 듣고 품으며 붓으로 기록해 왔던 과정은 시신경을 통해 들어와 폐부를 강하게 찌르는 말로는 다 설명 못할 그 것과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혼란기, 국가폭력의 피바람에 떠밀려 바다를 건넜던, 사람들이 있었다.
일하는 데도
조선은 항상 걸림돌이었다
그것을 알면서 아빠는 나를 조선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하루살이다.
나를 달래며 엄마는 늙었지
이제 싹이 튼다. 바람이 분다. 본명을 견디며 아이들도 자라고 있다
눈에 띄겠지만 그게 징표야.
숨기고 닮아가고 대충 넘어가면
찾아올 날이 면목이 없지
머지않아 올거야, 보람 있는 날이. 매몰된 나날에 내버려진
맨몸의 신음을 들려줄 거야.
-김시종 ‘그래도 그날이 모든 날’ 중
#The Vessel #이지유개인전 #델문도 뮤지엄 #2023년 2월 1일까지 #운명을_의지했던 #어둡고_축축한 #있지만 없던_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