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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Feb 05. 2023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함을 버리고 보면

삶,공감하기 -‘요괴대행진: 일본에서 온 신비한 요괴들‘전

남 탓이 허용되는 시공간

‘이 세계’가 공존하는 일본 특유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어디에서 왔을까..생각해보니 ‘요괴’가 있었다.

일본에 오컬트 관련 괴담이 많았던 배경에는 ‘섬’이란 특수성이 있다. 제주도 그렇지만 바다로 단절된 공간과 사람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의 공포, 초자연적 현상들 앞에서 버티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남 탓’이 있었다.

누구를 음해하고 괴롭히는 얘기가 아니라 바람이 거칠어 오도가도 못하는 사정이나 변화무쌍한 파도의 향연이나 긴 비, 원인을 찾기 어려운 병 같은 ‘살기 힘들다’는 말을 만드는 원인을 귀신이나 요괴 탓으로 돌리고 ‘못됐다’고 화를 내거나 달래거나 하는 행위로 해소하는 대상이다.

움직이거나 펼칠 여력이 모자랄 수록 탓을 할 대상이 늘어난다. 상상이니 뭐든 가능하다. 동양에는 ‘보편적인’ 온갖 귀신들이 밤에 돌아다닌다는 백귀야행의 스토리가 야릇한 모습에 흉악한 짓을 하는 무리가 소란하게 돌아다니는 행위를 넘어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미리 말해 두지만, 뭐가 잘났고, 뭐가 좋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 그 자체의 개인 생각이다.


우연히 만난 전시 공간에서

주제주일본국총영사관이 일본국제교류기금과 함께 2월 11일까지 제주시 하나은행 제주금융센터지점 지하 1층 돌담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요괴대행진: 일본에서 온 신비한 요괴들‘전시를 봤다.

전시에는 일본 두루마리 그림 에마키와 다양한 색으로 찍어낸 우키요에 판화의 일종 니시키에, 지금까지도 각종 굿즈나 영화 같은 미디어 등을 통해 대중화한 일본의 요괴 문화가 나온다.

관객 구성이 더 흥미롭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만 3~4살 아이와 10대, 30~40대 엄마 팀.. 유모차를 동반한 외국인 가족, 혼자서 알차게 전시물을 살피는 20대가 오밀조밀 공간을 나눠썼다. 단순한 ‘옛날옛날에’가 아니라 ‘어쩌면 지금도’를 전제한 것들이 만든 묘한 분위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찾은 ‘돗도리현’관광 안내물!! 역시..다.

돗도리현 요괴마을 시게루 로드는 내 ‘가보고 싶은’리스트의 하나다. 꽤 많았던 일본 탐방 기회에도 불구하고 매번 빗겼던, 요괴 민감+만화+문화콘텐츠의 뭉터기 같은 곳이다.


돗토리현 요괴마을
돗토리현 요괴마을
돗토리현 요괴말

미즈키 시게루가 던진 ‘흥미로운 파문’

이 곳을 알려면 미즈키 시게루 작가를 알아야한다. 요괴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로 유명한 일본 만화 거장 미즈키 시게루 작가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돗토리현에서 자랐다. 19세 때 태평양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폭격으로 왼팔을 잃었지망 무사시노 미술학교에 진학한다. 현실은 장애보다 더 씁쓸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화가의 꿈을 접은 그는 그림연극 작가를 거쳐 1958년 ‘로켓맨’을 통해 대여점 전용 만화가로 데뷔했다.

대표작인  『게게게의 기타로』의 주인공 애꾸눈 소년 기타로는 유령족의 마지막 후예로 1959년 종이 연극(‘무덤 기타로’)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물론 작품이 나온 전후로 작가는 일본 전역에 산재한 요괴 민담을 취재했다.

그림 인형 주인공이던 키타로는 대본소 만화와 소년잡지 연재만화, TV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재창작됐다. 작가는 요괴 관련 자료를 꾸준히 수집해 만화와 요괴도감을 그려냈으며 1995년 ‘세계요괴협회’를 설립해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일본 대중문화의 요괴 묘사는 대부분 미즈키의 작품에서 온 것이다.

 

돗토리현 요괴마을
돗토리현 요괴마을

처음부터 ‘뜬다‘는 없다

원래 유명한 아이템을 골랐으니 다음 결과 역시 당연한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은, 오산이다.

1993년 사카이미나토시청의 문화담당 구로메 도모노리(黑目友則)가 요괴 동상을 설치하자는 제안을 낸다. 하지만 요괴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저항과 부딪혔다. 그래서 포기했다면 ‘길’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구로메는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에 나섰고 결국 한 할머니가 자신의 집 앞에 요괴 동상 설치를 허락하면서 그해 총 23개의 요괴 동상이 세워졌다.

이후 동상이 파손되거나 없어지는 일이 종종 일어났고 이 작은 소동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소도시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게 됐고 요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혹하면 가서 즐기면 되지”…이런 결말을 위해 구구절절 늘어놨을 리 없다. 흔히 잘 된 사례만 보거나 뻔하다고 과정을 가볍게 보거나 그 쯤이야 하고 과신하고 급하게 성과를 챙기며 얇게 포장하지 말라는 경고이자 자기암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음양사 중
나츠메 우인장 중

각각의 역할 ‘조율 한 번 해 주세요’

미즈키 작가는 요괴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장애를 넘었고,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 의식을 담은 작품으로도 활약했다. 마을 역시 처음의 부정적 반응을 넘어선 이후부터 변화를 자신들에 맞춰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지자체도 움직인다.

이 곳에서는 열차·상점·은행·빵까지 온통 요괴다. 미즈키 작가는 기타로와 관련한 저작권을 무상으로 양도했다. 돗토리현도 '만화 왕국' 내걸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름만 들어도 ‘아하’하는  포켓몬스터·디지몬 캐릭터도 여기서 나왔다. 그뿐이랴. 음양사 같은 요괴 잡는 이야기, ‘나츠메 우인장’류의 요괴가 된 사연과 인간과 관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상상력을 한껏 다극하는 야니메이션의 감초까지 엄청난 영감을 준다. 여기에는 ‘대중들이 좋아하게 매력적인 콘텐트로 만드는 다각적이고 각각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조율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제주에도 이 즈음 도채비와 관련한 풍습이 있었다. 정월대보름에 했던 풍습은 이제 기억과 기록에만 있다. ‘백귀야행’보다 신들이  자리를 비우는 사이를 틈 탄 ‘신구간’이 더 흥미진진한 소재가 된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세상에 별 것 아닌 것은 없다. 무엇이든 별이 될 수 있다. 원하는 것들을 모아 별로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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