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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Nov 01. 2022

애써 포장하지 않은 슬픔, 지독한 상실의 경험

삶, 공감하기 - 아니 에르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 "나는 단지 글 쓰는 여자" 

노벨문학상이 호명한 아니 에르노의 문학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그녀의 책은 아마 ‘단순한 열정’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작가는 파리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일하는 유부남 A와 2년여 불륜을 회고하는 프랑스 여성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작가는 레닌그라드에서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낸 후 파리로 돌아와서도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어간다. 우리나라에는 2001년 처음 소개됐다.

그녀의 글에 빠진 건 2013년 즈음..이었다. 아마 슬쩍 선정적인, 선을 넘지 않는 아슬아슬한 사실감에 혹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를 때(물론 지금과 비교해) 애틋한 것 같으면서도 자꾸만 손가락을 오므리게 하는 상황에 몸둘 바를 몰랐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아 나도…’했을지 모르지만.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토해내듯 털어놓는다.

연하의 유부남을 사랑하게 됐고,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며 헤어지지만 몇 년 후 잠깐 다시 만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뭔가 꽉 찬 느낌이 드는 것은 온 시간을 그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채우고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선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나는 그녀의 어머니는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첫 페이지에 멈춰 며칠을 허우적댔다.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문장 하나하나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쩌면 철저하게 객화화한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을 해부에 들춰내는 통찰의 영역에 공감했다고 감히 정리한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글로 쓴 문장을 그대로 작품의 제목으로 썼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느낀 죄책감과 공포, 좌절감 따위를 날 것 그대로 옮겼다.

“…이내 걸쇠가 올라가고 문 잠기는 것이 보인다. 마치 방안에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일종의 고통 같은 것이 엄습해온다…”(1984년 1월)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있었으면 좋겠다”(1984년 2월)

“어머니의 턱은 축 늘어져 있고 입은 항상 벌리고 있다. 나는 이렇게까지 크게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았다(1985년 4월 21일)”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어머니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면 나역시 죽음으로 치닫는다. 어머니가 나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는 것이다 (1985년 9월 5일)”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시간보다 어머니가 살아있는 생명의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버린다면 어찌할 것인가.…나는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삶을 위한 작업인지 죽음을 위한 작업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1986년 2월 20일)”

어머니는 1986년 4월 7일 돌아가셨다. 그녀는 “모든 것이 고스란히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 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까지 괴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라고 썼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정신이 아닌, 상실의 경험은 실연의 슬픔을 겪었을 때와 유산을 한 이후에 이어 세 번째였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도처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찾으면서도 보상받으려는 욕구 때문에 글을 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회적으로 표현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 까닭에 버텨내기 힘든 시간들, 그녀는 “나는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글로 적은 것이다. 무섭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결코 이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1986년 4월 16일)”

#사실·체험, 진솔한 감정 서술

언제가 올 이별을 처음은 조금 막연하게, 그리고 점점 현실도 받아 안는, 무게감이 글에서 느껴진다.     

"나는 글쓰기가 세상을 향한 전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문병하고 있는 현재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가혹한 피폐 상태를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면서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이 더욱 명백한 현실로 규정 지어진다"고 고통스러워했지만 결코 피하지 않았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 문단 사이의 여백, 담담하다 못해 딱딱한 문체,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하고자 애쓰며 기억의 확실성을 저울질하는 문장들은 몇 번이고 “너는?” “만약 너라면?”하고 묻기를 반복한다. 심지어 답을 들을 생각도 없다.

다만 스스로 금기시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공개’하는 것으로 극복하고 있음을 알린다.

어쩌면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예감했던 때였을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쯤인 1986년 3월 부활절 축제일 그녀는 이런 기억을 일기로 남겨둔다.

“나는 어머니가 타고 있는 휠체어의 제동 장치를 확인하려고 몸을 구부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몸을 숙이더니 내 머리를 껴안았다. 어머니의 이 몸짓 바로 이 사랑을 나는 한동안 망각한 채 지내왔다. 이 사랑의 몸짓을 잃고서도 어머니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후 얻은 기억상실증이 치매로 이어지며 모든 것을 잊고 또 잃었던 어머니, '인생을 살면서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줄 알아야 한다, 강하지 못할 경우에는 악하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던 어머니는 그녀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 엄마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들

조용히 친정엄마의 손을 잡았다.

옆에 산다고 몇 번이고 이유를 만들어 엄마와 추억을 만들었다. 고운 모습을 많이 남겨두겠노라, 같이 쌓아야 교양이라며 큰 소리를 쳤지만 하나같이 빚을 갚는 일이다. 갚아야 했다. 어린 시절 잦은 병치레에 애태우다 못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휴학 권유를 받을 만큼 크게 아팠었다. 오전 집 전화가 울리기만 해도 심장이 떨렸다는 말을, 내가 엄마가 되고 그 아이가 학교 부적응으로 힘겨워하는 동안 간신히 느꼈다. 나름 조용히 컸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털어내고 보니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꽤 많이 저질렀다. “만약 너라면?” 문장이 던진 질문에 답한다. 그저 옆에 있겠노라고. 아마 그녀처럼 글로 남기지는 못하겠지만 가슴에 새기겠노라고.      



#아니에르노 #나는나의밤을떠나지않는다 #프랑스소설 #열림원 #열림원출판사 #서평단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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