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주눅들게 하던 말
√ 10년, 20년을 내다보는 마스터플랜
√ 중장기 전략에 입각한 실행 계획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이 참 많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란 말이 대표적이다. 초딩들도 아는 말이자, 누구 하나 잘못됐다 생각하지 않는 말이다. 이를 일컬어 격언이라 하며, 어느 시대 어떤 인생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인생의 원리라고 굳세게 믿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주눅 들게 한다. 말이 어려워서 주눅 들고, 남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허술한 것 같아 주눅이 든다.
‘선진국 사례’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나라들. 선진국 얘기만 나오면 괜히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리며 머리를 주억거리며 살았다. 우리는, 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이나 선진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에게는 어쩐지 주눅이 들어야 ‘정상인’이었다.
사람뿐이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 삼성과 현대 같은 대기업 이름만 들어도 곧장 주눅이 든다. 왠지 더 똑똑해 보이고 무슨 일을 맡겨도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은 기업들이 그들을 스카웃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 여럿을 봤다. 물론 그들에 대한 맹신이나 지나친 기대감 때문에 오판을 자초한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한 유통기업 임원에게 처음 이 말을 들었던 게 10년 전이다. 그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매년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기도 바쁜데 무슨 중장기 계획입니까? 중장기 계획들, 1~2년 지나면 다 무용지물 됩니다.”
한편으로 시원했다. 그놈의 중장기 전략이니 계획이니에 눌려 지낸 감옥에서 탈출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불안이 엄습했다. 늘 앞서나가고, 계획을 세우면 뭐든지 성공시킬 것 같은 대기업들도 적응에 급급해 하는 시대, 이 작은 개인은 어쩌란 말인가. 차라리 중장기 계획이 있던 시대가 나아 보였다.
급기야 그보다 더한 말을 어제 들었다.
“알리바바는 1년 계획도 세우지 않고 지난 1년 보고서도 만들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믿음도 가는 말. 하긴 그렇다. 작년의 보고서와 작년에 만든 올해 계획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굳이 코로나19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렇다. 중장기 플랜이니 전략이니 하는 것은 20세기의 언어다. 그것도 힘이 있는 계층이나 자본력이 있는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계획대로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강자의 변덕에 언제든 휘말릴 수 있는 위치에서는, 계획이 독이다.
계획도 세우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라고? 계획 없이 희망을 만들라고? 물을 수 있다.
굳이 답한다면, 계획이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을 갖게 하는 철학이고, 철학을 낳게 하는 의문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