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앞에서

순서도 없고 대표도 없는

by 포포

한국의 대표 음식은 무엇인가? 또는 한국의 대표 식품은 무엇인가?

한국의 전통 음식은 무엇인가? 또는 한국의 전통 식품은 무엇인가?

몇 가지, 같은 듯 다른 질문들을 던졌을 때 나오는 대답들은 질문의 유형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응답의 사례들을 대충 열거해 보자.


- 김치, 불고기, 김치찌개(또는 된장찌개), 백반, 한정식, 떡국…

비교적 상위권에 오르는 한국 음식의 상징들이지만 그 중 어느 하나를 ‘대표’라 하기에는 어색하다. 전통이란 말을 붙이면 대개 ‘한과, 된장·고추장, 전(煎), 막걸리, 전통주’ 등등 특정 품목들이 연상된다. 이것들 역시 ‘대표’라 하기에는 찜찜하다.


- 치킨, 라면, 만두, 비빔밥, 삼겹살, 숯불구이…

외국에서도 익히 알고 있는 한국형 음식들을 꼽아 봐도 대표성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려면 무엇을 사줘야 하느냐고 고민하는 이들이 많은 배경이다.


미국의 대표 음식은 무엇인가? 프랑스는? 이탈리아는? 영국은?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터키, 호주, 러시아, 캐나다, 멕시코, 수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세계 각국의 대표 음식들을 떠올려 보자. 나름대로 몇 가지 유형이 나온다.


주로 유럽을 토대로 한 육류 스테이크나 파스타 중심이고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국가들도 나름대로 대표적 음식들이 등장한다(중국은 탕, 일본은 회, 베트남은 국수 식이다). 요리 강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와 중국, 터키, 이탈리아 같은 곳들도 특정한 요리를 기본으로 베리에이션하는 것을 자랑할 뿐이다(이것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우리 음식을 많이 알고, 외국 음식은 단순하게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독특한 음식문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건드리면 얘기가 빗나갈 수 있으니 생략하고, 지금은 대표성에만 집중하자.


음식의 존재 이유는 생명 유지(또는 건강 유지)에 있지만, ‘맛과 즐거움’이 덧붙으면서 문화로 자리 잡는다. 고로, 단순한 끼니 또는 간이형 음식보다 (제대로 차린) 정찬형 음식(고급음식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서민형 정찬도 있으니까)에 대표성을 부여하는 게 옳다.


그렇다면 한국은 백반을 기본으로 한 한정식, 유럽에서 펴져나간 서구권 음식은 스테이크 코스 요리를 대표로 삼는 게 상식적이다. 비교하자면, 한정식은 네이버(또는 다음)의 뉴스차림과 같고, 코스 요리는 구글 시스템과 같다.


우리는 (네이버처럼) 한 상에 모든 음식을 펼쳐놓고 각자가 알아서 먹는다. 구글은 빈 공간에서 출발해 하나씩 하나씩 순서를 찾아간다. 우리의 밥상은 순서가 없고 따라서 대표도 없다. 굳이 대표를 꼽자면 밥이다. 그 곁의 국, 탕, 반찬류는 밥을 먹기 위해, 더 맛있게 (또는 조화롭게) 먹기 위한 보조적 기능(보조가 하위 기능은 아니다)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밥을 먹는다’는 말도 밥만 가리키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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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정도 달라진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비교해 어떤 것이 더 많은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든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먹고 살았다. 좍 펼쳐놓고 알아서 골라 먹기. 그러니 어느 한 가지를 대표라 규정하지 말 것! 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흰밥을 중심으로 둥글둥글 자리한 반찬들 모두 저마다 대표인 상, 밥상. 그렇게 먹고 자라 저마다 주인공이 되는 세상, 바로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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