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봄

다른 봄날을 기대하며

by 포포

#1

도무지 잊힐 리 없는 겨울이, 마침내 가고 있다.


매년 한번은 겪고 넘어가던 감기를 올해에는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아직은 겨울, 환절기가 남아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극도로 조심한 것, 마스크가 찬 공기를 막아준 것, 손을 자주 열심히 닦은 것 등등의 영향일 텐데… 은근히 불쾌한 것도 사실이다. 해마다 감기에 걸렸던 원인이 위생 불량에 있었다는 반증을 확인한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내과에 손님이 없어 병원들의 시름이 깊다는 풍문도 들린다.


손 씻기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후배 민이가 떠오른다.

민이는 화장실을 다녀올 때뿐이 아니라 일상 중에도 손을 자주 씻었다. 자판을 한참 두드리고 난 뒤, 커피를 마시기 전과 후, 누군가와 악수를 하고 난 뒤에도 슬그머니 화장실(세면실)을 다녀오곤 했다. 다녀온 뒤 핸드크림 바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것도 일종의 결벽증’이라고 농담 삼아 핀잔을 주었던 시절이 새삼스럽다.


돌이켜보니 민이 옳았다. 반성하고 사과한다.


#2

식사를 하기 전 손을 씻는 것은 당연한 상식인 것 같지만 인류사에서 보편화된 것은 고작 백 년도 안 된다. 선진국이라 추앙받아 온 유럽에서도 산업혁명 이후, 상류사회 일부에서나 이를 지켰다. 유럽인들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식사를 하기 시작한 것도 르네상스 이후였다. 그러니 대부분의 서민들은 일하던 손으로 빵을 먹고 어쩌다 생긴 고기를 손으로 뜯어먹으며 살았던 셈이다.

현재 세계에는 포크를 사용하는 인류가 30%, 젓가락을 사용하는 인류가 30%, 손을 사용하는 인류가 40%라고 한다(미국의 역사학자 린 화이트가 1980년대에 발표한 분포도인데 동서양과 남북권의 교류가 훨씬 많아진 현재는 세 부류가 비슷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포크와 나이프 문화권은 알다시피 유럽과 미주 지역(또는 그들의 영향권), 젓가락 문화권은 동아시아(한․중․일)와 몽골, 티벳, 베트남 등이 속한다. 동남아권과 중동의 일부, 아프리카 등에서는 손을 사용하는 식생활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자체가 비위생적이고 후진적인 것은 아니다. 원시적인 것이 후진적인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음식의 신성함을 강조하며 (그들도 위생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위라 여겼으리라) 식사 전 손을 더욱 깨끗이 닦는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의식의 선진성을 느낄 수도 있다.


#3

인간은 그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동․서양 국가에 공히 비슷한 속담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를 중시하는 것 같다.


어른의 첫술 이후에 수저를 들게 하고, 밥상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않도록 하며 젓가락질하는 법을 열심히 가르치는 등등 밥상머리 교육이 보편화되어 온 것을 보면 그렇다. 동서양의 음식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밥상머리 교육도 옛이야기가 되었는데 코로나19가 이를 부활시키고 있다.


한국인의 식생활(전통적으로 조용히 밥을 먹었다), 젓가락 문화(자르고 찌르는 용도가 아니라 옮기고 분리하며 음식을 중시하는 용도 등 젓가락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품격 있는 식사도구이다-롤랑 바르트) 등이 주목받고 있다.


별의별 일들이 많았던 우리의 100년사는 대체로 서구를 향해 납작 엎드려 따라다닌 꼴이었는데 올 겨울을 끝으로 일대 전환이 일어날 기미가 보인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봄날을 기대하며 기지개를 편다. 어서 오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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