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나지만 화낼 수가 없다
“베토벤이 왜 귀가 먹었는지 알아?”
“에 또, 그러니까, 거시기…”
“앞사람 술잔이 비었는데 따라주지 않아서 귀싸대기를 맞았대. 그래서 귀가 먹었다더군.”
“오, 그런 사연이… 한잔 받게.”
지난 주 술자리에서 나눈 농담이다. 그러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베토벤 일대기를 나름 열심히 읽은 기억이 있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불행한 사연들과 위대한 음악의 탄생 배경은 차고 넘쳤는데, 귀먹은 이유를 알려주는 이가 없다.
(그나저나 이 대가에게 귀먹다는 말을 쓴다고 욕먹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청각장애라고 해야지 왜 귀먹다는 말을 쓰냐며 꼬인 이들이 나올까 싶어 미리 밝힌다. 귀먹다는 순수 우리말이며 비하가 아닌 현상의 표현이다).
궁금증이란 게 묘해서 하나가 궁금하면 갖가지가 연상된다.
베토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에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과 같은 의미겠지).
클래식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뭐, 다른 괜찮은 음악으로 대체했겠지).
클래식 음악은 왜 동유럽,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은 곳에서 꽃피웠을까?
음악이 없으면 인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트로트 붐이 일어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이렇게 한없이 궁금증은 뻗어간다. 애가 따로 없다.
옛날 같으면 엄마나 아빠에게 물었을 것이다. 조금 더 성장해서는 친구들에게, 형과 누이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더 성장해서는 선생님에게 물었을 것이고, 나름대로 알 만한 사람이라 생각되는 어른, 전문가로 보이는 이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왜? 왜? 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구글, 네이버가 있으니까.
(이러니 아이들이 어른들을 존경할 이유가 없다).
어른이 존경받기 어려운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오래 살았고, 그래서 경험이 많고, 비례해 공부도 많이 한 것으로 대우를 받는 세상은 이제 오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존경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 있으니 살 뿐이긴 하다. 다만 의미있게, 기왕이면 덤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은 인생들에게 권한다.
"지식과 경험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럼 무엇이 남겠습니까. 인격과 철학과 정체성, 서구식 표현으로는 Personality, Identity 같은 것이 남겠지요. 그것이야말로 나이보다, 세월이 쌓은 관록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게 아닐지요."
여전히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초보인생이 대우받지 못하는 노인사회를 보면서 괜시리 한 생각 올렸다. 하지만 뭐, 사람만 그럴까. 물건도 상품도 예술도 문화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 화를 내봤자 나만 손해임을...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들이 모를 리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