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나 GNP보다 중요한 것
요즘 고속버스를 타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차내 쾌적함부터 편의 서비스, 잠시 쉬었다 가는 휴게소 풍경까지 곁들이면 격세지감을 절로 느낀다. 그 중 압권은 화장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잘 관리되는 공중화장실을 보유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 그러니까 10여 년 전에 외국을 밥 먹듯이 다니던 선배가 말했다.
“유럽 화장실들 하나같이 엉망진창인데, 게다가 유료야. 휴지도 사야 하고… 유럽이 그렇게 망가질 줄이야.”
그때만 해도, 화장실 하나는 우리가 앞선다고 뿌듯해 했다. 그리고 우리의 도로공사를 마구 칭찬했었다. 무료 화장실을 안방처럼 만든 도로공사 만세, 만만세!
며칠 전 고속버스를 타고 귀경한 날, 국회 전문위원 출신 노신사를 만났다. 고속버스 칭찬과 휴게소 칭찬과 화장실 칭찬을 연이어 했더니, 그분 빙긋 웃으며 “뭐 다 좋은데, 그런 화장실을 갖게 된 게 도로공사 덕은 아니지”란다. 어찌어찌 배경 설명을 들으며 연신 무릎을 쳤다. (그럼 그렇지, 우리나라 공사들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공적을 남겼을 리야…)
옛날옛날에 어떤 회원들이 해외여행을 갔다. 캐나다에서 공중화장실을 갔는데, 안방인지 마루인지 모를 정도로 깨끗하고 관리가 잘되어 있는 것을 경험한다. 옛말에도 남의 집에 가면 화장실을 보고 그 집 수준을 파악한다고 했는데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중 한 명은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이었고, 그는 귀국 후 공중화장실에 관한 법률 제정을 건의한다.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 법제화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큰일을 했던 이들을 또 막 칭찬했더니… 노신사, 당시를 회상하며 한숨을 쉬었다. 곧장 어떤 예감이 왔다.
“그러니까, 그 일이 쉽지는 않았나 보군요.”
“쉬울 리가 있겠나. 여기서 반대, 저기서 반대, 일단 법안심사를 하는 국회의원들이 다 시큰둥해했으니.”
“왜요?”
“지금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으니 그 법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는 거지, 그때로 돌아가 국회의원들이 그 법률안을 처음 봤을 때 어땠겠어. 화장실 법? 이게 뭐야? 국회에서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화장실 갖고 토론하고... 이거야 원, 이러지 않았겠냐고?”
아, 금세 모든 게 이해됐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것이 화장실과 관련된 것이면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참고로 공식적인 명칭은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이다).
우리는 먹는 것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을 갖지만 싸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먹으면 싸야 하고, 싸야 먹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잘 싸야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 아닌가.
늘 앞선 듯하던 유럽이 코로나19로 인해 후진성을 드러냈다는 얘기를 최근 자주 한다. 사실은 진즉 잉태되었던 것, 화장실에서 알아봤어야 했다. 중세 때까지도(근세에 이르러서도) 제대로 된 화장실 문화가 없었던 곳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얘기가 빗나가고 있다. 후다닥 결론을 짓자면, 씻고 먹고 싸고는 존엄의 절대요건이다. 그것의 삼위일체가 될 때에야 지성인(국격은 GDP나 GNP가 아니라 사람의 품격과 문화의 질로 결정된다고 믿는다)으로 살 수 있다. 내 집 화장실이 아니라 공중화장실을 잘 가꾸기 시작한 때부터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고 돌이켜 믿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