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과 위선자

어떤 질문들

by 포포

‘당신은 사기꾼과 위선자 중에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누구나 화를 낼 것이다. 누가 살면서 사기꾼과 위선자를 꿈꾸겠는가. (하지만 살다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둘 중 하나가 되곤 한다).


질문을 슬쩍 바꿔 이렇게 물어 보자.

‘당신은 사기꾼과 위선자 중에 누가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까?’

여기에는 저마다 의견을 낼 수 있다. 실제 몇몇 지인들에게 실험을 해봤더니 제법 치열한 논쟁이 되곤 했다. 그 중 몇 가지 음미해볼 만한 견해들을 소개한다.


#1 사기꾼이 위선자보다는 낫다

사기꾼은 경제적 측면에 국한된다. 그에 비해 위선자는 삶 전체를 관통한다. 사기꾼은 일종의 게이머로 볼 수도 있다. 사기의 질과 수준의 차는 있지만 상대방이 당하지 않으면 사기가 성립되지도 않는다. 사기꾼 중 대부분이 생계형이라는 걸 고려하면 확실히 위선자보다는 낫다고 본다. 사기는 특정인들에게만 피해를 주지만 위선자는 폭넓은 해악을 끼친다.

#2 위선자가 사기꾼보다는 낫다

사기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입 다물라. 위선자야말로 법적 테두리 밖의 개인적 잣대 아닌가. 사기는 피해가 명확하고 도둑이나 강도보다 교활한 수법을 무기로 삼는다는 점에서 무서운 범죄다. 그에 비해 위선은 개별적 판단사항이다. 우리 모두 위선자일 수 있으니까. 요즘처럼 모든 것이 노골적인 시대에 선(善)을 표방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수도 있다.


이런 논란이 전개되다가 대개는 도낀개낀이라는 결론으로 후퇴한다. 일종의 타협을 보며 나름의 고백을 한다. 나도 사기꾼, 나도 위선자라고 양심 고백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그런 양심을 이용해 사기를 치고,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위선이 필수재로 활용되는 순환의 고리 속에 위태롭게 한 발씩 내딛는 것이 삶의 현장이다.

최근 한 정치인이 어떤 정당을 아사리판이라고 표현해 시끌시끌한 적이 있어 문득 찾아보았다. 놀라지 마시라. 아사리의 국어사전 표현이다.


아사리 (阿闍梨) :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하여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


이 고상한 용어가 왜 난장판의 의미로 바뀌었을까(사실은 바뀐 게 아니라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아사리가 한 명이면 되는데 너무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판사판과 같은 류의 어원이다. 스승이 너무 많고 가르침이 너무 많으면 ‘아사리판’이 된다는 것.


그러고 보니 그 아사리판 사람들은 왠지 사기를 정당화하는 집단 같고 반대편 사람들은 위선을 정당화하는 집단으로 느껴져 더욱 비감해진다. 코로나19의 위기를 활용해 사기를 치는 위선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먹는 것 갖고 사기치면 지옥 간다던 옛말도 점차 잊혀지고 있다. 식당에서 김치에 손이 안 가는 소심함을 내탓으로 돌리는 심경도 일종의 위선인 것 같으니 살아가는 의식은 참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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