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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an 25. 2022

설렘 없는 설

인생 전환은 무엇일까

설이 설레던 때가 언제였던지 기억이 희미하다. 설 풍경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가족 문화가 변한 것도 설렘을 지우는 데 큰 몫을 한 것 같다. 물론 나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다.  

 

설날에는 왜 설렜을까. 이것저것 떠올려보니 이유가 엄청 많다.

세뱃돈, 음식, 새옷, 놀이(윷이든 화투든), 가족들의 표정, 친척, 친구, 설경 또는 겨울풍경도 왠지 새로웠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 중의 제일은 만남 또는 재회였지 싶다.


하지만 모든 재회가 기쁨인 것은 아니다. 어떤 만남은 슬프고 어떤 재회는 외롭게도 만든다.


가끔 그런 사람을 본다. 자신이 해오던 모든 것을 휙 내던지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사람, 또는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몽땅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 또는 아무것도 없던 빈털터리가 벼락부자로 둔갑하거나 아무 지식이나 능력도 없던 사람이 거대한 권력을 쥐고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 의류와 식품제조업체를 경영하며 승승장구하던 기업인이 노숙인으로 발견됐다는 외신을 봤다. 요즘 언론기사들 태반이 극적효과를 내기 위한 포장이나 고도의 위장과 왜곡으로 점철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변화는 극적으로 읽혔다.

요약하면, 차세대 기업인으로 발돋움하던 기업인이 어느 순간 은행 부채를 못 갚아 부도가 났고 알거지가 됐으며,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자식들은 그에게 손톱만큼의 연민도 없다는 게 요지였다.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역할도 없었고 가족들 모두 버려진 듯 살았다는 얘기다.          


폴 고갱은 부유하고 권위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나이 들어서도 부유한 편에 속했다. 증권 중개인을 하며 여유 있게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가족도 포함된다)을 팽개치고 그림을 그리러 떠났다고 한다.

한국에도 그런 이들이 많다. 소설가 복거일도 무역회사와 은행을 다니며 안정적으로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미래가 담보되지 않은 글쓰기 모험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근대사 최고의 선승으로 알려진 효봉 스님의 전직은 판사였다. 과감한 도전과 변신, 부러운 인생들이다.

 

하지만 인생 전환은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을 거다. 개인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대대손손 한 업종에 몰입하는 것을 가문의 자랑으로 삼는 일본식 문화를 우리가 동경했던 이유도 얼마쯤 거기에 있을것이다.

       

며칠 전, 50대의 여자후배가 간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깜짝 놀란 첫 번째 이유는 간호대 입학에 나이제한이 없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그녀의 집안 형편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50대까지 전문직에서 활동하던 당찬 후배였기 때문이다.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답은 간단했다.

“입학에도 나이제한이 없지만, 간호사에게는 정년이 없거든요.”     

왠지 모르게 각박함도 느껴지지만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 사람도 인생도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사례들을 생각하며 유튜브를 보는데 ‘국경없는 의사회’의 홍보영상이 나왔다. 40~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자기고백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광고인지 홍보인지 헷갈리는) 영상을 끝까지 보면서 의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뭘 하고 있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의사 생활을 포기할까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국경없는 의사회를 알게 됐고, 아프리카 각국의 난민들을 보살피게 됐습니다. 곧 죽을 게 분명해 보이는 아이가 살아날 때, 그 아이의 눈과 마주치며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질 때, 비로소 의사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죠.”


그야말로 진짜 전환이랄까. 누구에게나 전환의 계기는 오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일의 전환, 방식의 전환은 쉽다. 어느 순간 내 삶의 가치를 확 쥐게 되는 이들을 위하여.., 새로 맞는 설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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