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포 Jun 30. 2023

병원밥을 위한 변명

1식 4찬 정갈한 밥상

병원 침대에 앉아 밥을 먹은 지 2주일이 됐다. 병원밥을 어떻게 먹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맛있게 잘 먹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이주일 잘 먹고 있는 내 모습이 기특할 정도다. 그 동안 병원밥은 맛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간혹 환자들의 병상 식사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게 여긴 것도 되돌아봤다.

 

물론 ‘병원밥이 맛있다’거나 ‘특히 이 병원밥은 맛있다’는 말이 아니다. 막상 먹어보니 괜찮다, 제법 먹을 만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1식 4찬에 매끼 다른 메뉴가 나오고 간간이 (돈까스나 전, 국수, 볶음밥 같은) 특별 메뉴도 나온다. 여기에 환자마다 보유한 비밀병기(조미김, 젓갈, 멸치 같은 마른반찬들)를 더하면 한끼 식사를 맛나게 할 수 있다. 지구 최고의 적응 생명체들답게 끼니 해결의 선수들은 그러고도 뭔가 부족한지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더러는 (특히 주말에는) 로켓 배송도 시킨다. 정말 배달의 후예들임이 실감난다.

 

병원밥이 제법 괜찮은 또 다른 근거는 믿을 만하다는 점이다. 환자용 식사이니 얼마나 위생에 철저하고 안전하며 정갈하게 제공할까. 특정 질환 맞춤형 특별식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영양이나 메뉴 균형을 알아서 맞춰줄 것이니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맛에 집착만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은 밥상인가.

      

병원밥이 맛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입안이 껄끄럽고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모양으로 놓인 밥, 국, 반찬 뚜껑을 열 때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 병원 밥상은 특이하게도 수저가 밥그릇 왼쪽에 놓여나온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매번 왼쪽에 놓인 수저를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먹을 때마다 (뭐 큰 노동은 아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배식 분업자들의 구조가 그렇게 자리 잡은 듯하니 귀엽게 이해한다. 


병원밥이 맛없게 느껴지는 절대적 이유는 분위기 탓이 아닌가 싶다. 병실에서 먹는 밥이 집이나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좋을 리가 없다. 병실 자체가 우울한 곳이고 무엇보다 같이 먹을 사람도 없이 병상에 앉아 홀로 수저를 뜨니 밥맛이 날 리가 없다. 메뉴의 선택이나 시간의 선택권도 없다. 그런 걸 감안하지 않고 밥맛 비교를 한다면 병원밥 입장에서는 억울할 노릇이다.  

    

역시 직접 먹는 것과 (먹는 것을) 보는 것에는 차이가 크다. 그래서 유통업체들은 신상품을 입점시키기 전 시식 행사를 고집하나 보다.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맛을 보게 하는 것이 약발이 세다는 얘기다. 


원래 계획 대로라면 2주 동안 해외출장을 가있어야 했다. 출국 전날 황당한 사고가 일어나 모든 일정이 어긋났고, 대신 병원밥을 음미하고 있다. 좀 쉬면서 생각 좀 하고 살라는 운명의 명령으로 받아들일밖에 도리가 있나. 한편으론 병원 생활도 일정 시점에는 겪어보는 것이 좋다… 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자위 같다. 기왕에 당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입원은 안 할수록 좋은 게다. 


그건 그렇고 병원 생활을 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병원의 주인은 누구일까.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고,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논법에 따르면 병원의 주인은 환자여야 할 텐데... 이 병원의 주인은 이사장인 것 같다. 아무리 병원이 공공성을 갖고 있다 해도 환자가 주인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치료가 끝나면 떠나야 하는 과객의 입장에서는 밥맛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과분하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세대차가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