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대회 망의 한 이유
한우로 유명한 지역, 횡성에서 ‘정말’ 맛있는 고기를 먹고 탈이 난 적이 있다.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마주앉은 조합장(지금은 고인이 되었다)이 “맛이 어때요?” 하고 물어서 진심으로 답했다.
“정말 맛있네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이런 맛은 살면서 처음입니다.”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고기를 씹으며 말했다.
“좋아하는 맛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게 최고의 맛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많은 이들이 ‘다르긴 다르네요’라고 합디다.”
어떻게 다른지를 활자로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다. 적확한 단어들을 적용한다면, 고기를 씹는 맛은 부드러우면서 고소하고 풍성한 육즙이 잘잘 나오는… ‘투뿔(++)’ 특유의 맛이었다. 여기까지는 다른 ++등급들과 비슷한데, 어금니로 씹을 때 아삭아삭한 촉감이 달려 오는 게 달랐다. 마치 아삭아삭 소리가 들리는 듯 싶고 그때마다 육즙이 입안에 배는 느낌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어떤 값비싼 고기를 먹어도 그때의 맛을 다시 볼 수 없었고 심지어 그날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가서 똑같은 고기를 주문했을 때도 그 맛은 느낄 수 없었다. 단언컨대 나는 그날 ‘좋은 고기의 맛’을 생애 최초로 알게 됐고, 그로써 ‘맛있는 고기’의 기준이 설정됐다(설정한 것이 아니라 설정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엊그제 전혀 엉뚱한 지역에서 그때의 맛과 가장 닮은 고기를 먹었다. 마치옛사랑과 재회한 듯 가슴이 벅차올랐고, 오른쪽 왼쪽 어금니를 총동원해 씹는 맛을 느끼고 확인했다. 십수 년 전 그날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위가 늘어났고 며칠 동안 배가 더부룩했던 원인도 거기에 있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더 먹고 싶은 욕망은 최대한 자제했다.
한우가 남다른 쇠고기임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경험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냥 맛있고, 그래서 비싸고, 때문에 귀한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태반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많은 지역(또는 브랜드) 고기들을 시식해보고, 많은 나라의 쇠고기를 비교 음미해 본 나로서는 한우(물론 잘 사육하고 잘 관리한 쇠고기)가 왜 특별한지 더 따지게 됐고, 역사적․유전적․환경적 배경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맛과 영양, 건강에 대한 가치를 부여한 한국의 음식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이른바 K푸드로 내세울 수많은 메뉴 중에 한우구이가 보기 힘든 것은 희한한 일이다(심지어 홍보를 위한 자조금을 가장 많이 쓰는 품목인데도 말이다). 한우가 치킨보다도 대접을 못 받는 현실이 단순히 (비싼) 가격 때문만은 아니리라 생각하면서 이 나라에 정말 맛을 아는 이들은 있는가, 한국음식 특유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의심하게 된다.
단적인 사례가 세계잼버리대회에서 나타났다. 잼버리대회의 식음 플랜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뻔하고 근시안적이었다(그나마 이런저런 문제를 거듭 만들며 보여주지도 못했다). 식음 플랜 어디에도 한국음식의 고유 가치나 K푸드의 철학(꼭 거창한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을 맛보게 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음식, 식품은 확실히 그렇다. 철학이 없고 소명감이 없으면 문제가 일어난다. 그런 이들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 ‘맛좀 볼래?’ 제발 맛좀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