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또는 사과가 필요한 이유
파리올림픽이 끝난 여운이 제법 길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올림픽 출전사 중에서 가장 특이했고, 가장 재밌었고, 가장 반전이 많았던 올림픽이었다… 고, 개인적으로 규정한다. 이유 몇 가지를 주관적으로 정리했다.
#1 끝나도 끝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 ‘(국가대표) 선수와 협회’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짐작컨대 깔끔하게 정리되긴 힘들 것 같고, 늘 바라는 대로 정의의 승리로 (스포츠 경기처럼) 명쾌하게 결론나긴 요원해 보인다. (제발 이 추측이 비관에 물든 기성세대의 억측이기를…)
#2 기쁘지만 기뻐할 수 없는
올림픽 이전부터 불거진 축구협회 사건부터 올림픽 피날레를 장식한 배드민턴협회에 이르기까지, 기뻐도 기뻐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선수와 협회는 어떤 관계이고, 어떤 관계여야 하고, 어떤 관계를 지향해야 하는지 모두가 묻고 있는데 답들이 없다. 더 착잡한 것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마저 세대별-입장별 다를 같아서다.
#3 특이 또는 반전의 사건들
가장 적은 선수단 규모로 가장 큰 성과를 낸 올림픽이라 할 만했다. 단순한 메달 성적을 놓고 평하는 게 아니다. 한국 선수촌과 K-푸드, K-도시락, K-컬처가 올림픽의 주요 이슈가 된 것,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 스타 선수들의 강렬한 인상, 총-칼-활로 시작해 격투기로 매듭된 메달 레이스의 진진한 스토리들이 모두 소설이나 영화, 만화를 보는 느낌긴이었다.
#4 그래도 사과해야 하는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얘기해 봤자 헛일이니, 나부터 사과할 것을 찾아봤다. 의외로 많이 나왔다. 가장 중요한 사과 하나를 ‘양궁 선수단’에게 하겠다.
그 동안 나는 한국이 양궁 강국인 것을 역사적-민족적 DNA로 해석했다. 중국인들이 고대역사서(<위지 동이전>을 말함)에서 기록한 ‘활을 잘 쏘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삼았다. 단 두 가지 특징을 잡아낸 중국인들의 혜안도 놀랍지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인의 저력도 놀랍다. 초딩 역사서에 늘 등장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말타고 활쏘는 장면들을 곁들이면 완벽한 해석이 분명했다.
이제, 그렇게 해석한 사고를 사과한다. DNA가 아무리 그럴 듯해도 노력과 협력,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들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불가한 것을 이번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5 반성하지 않으면 사과도 없다
국가의 3요소를 국민, 영토, 주권이라 한다. 모든 국민은 국가를 대표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분야별로 우월한 이들을 (경쟁을 통해) 뽑아 국가대표로 세운다. 이들은 기량의 우월성으로 뽑히지만 이후에는 품격의 책임과 리더의 의무를 짊어지게 된다. 딱히 스포츠에 국한된 게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분야가 그렇다. 연필과 지우개, 냉장고와 세탁기, 밥과 도시락, 국회의원과 각료, 대통령까지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