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의 끝판왕 가이드
‘술꾼들에게 당부합니다. 이번 추석에는 몸조심하시길. 의사 만나기가 첫사랑 만나기보다 어려운 역사적 명절임을 잊지 마세요.’
술꾼 중의 술꾼이 8월의 마지막날 보내온 문자 메시지다. 처음에는 웃어넘겼는데 저녁 무렵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환자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를 보고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명절에 술을 안 마실 수도 없고, 술이란 놈의 특성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절제와 담을 쌓게 만드는 것임을 안다면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몇몇 술꾼들에게 해장의 비법 또는 노하우를 물었더니 그야말로 다양한 응답들을 내놓았다. 저마다 갖고 있는 ‘나만의 해장 비법’ 몇 개를 소개한다.
“라면이 최고인데, 반드시 푹 끓여서 면발을 헬렐레하게 만든 뒤 먹어요.”
“구수한 누룽지를 뜨끈뜨끈하게 끓여 먹고 5분 뒤 화장실로 가서 장을 좍 비웁니다.”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이면 끝. 아, 지금도 생각난다. 전주 왱이집의 콩나물국밥..”
“해장국은 뭐니 뭐니 해도 선지가 최고지. 춘천의 팔도해장국 한번 드셔봐.”
“뭘 잘 모르는 분들이네. 해장국 하면 고디국이제.”
잘 나가던 아이템 놀이가 이 대목에서 끊겼다. ‘고디국’이 무엇인가?
‘고디’가 올갱이의 경상도 방언이고, 올갱이는 다슬기의 다른 말이며, 다슬기와 달팽이는 같은 건지 다른 건지 등등의 문답이 계속 이어지다가 한참 후에야 “그것이 해장에 그렇게 좋다구?”로 마무리됐다.
괴산 버스정류장 옆에서 올갱이국을 먹은 적이 있는데 과연 그랬다. 그 올갱이 식당은 허름하기 짝이 없어 식탁은 두 개, 옛날식 좌식상이 네댓 개 정도였다. 오래된 벽지에는 다녀간 사람들의 맛평가 사인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화장실이 어디냐 물었더니 터미널이라 했다. 어리둥절해 하다가 금세 알아차렸다. 그 작은 식당의 뒷문으로 나가니 바로 버스들이 정차한 터미널이었다. 올갱이집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 사이 좋은 사이를 과시하고 있는 버스터미널. 70년대 모습을 잘 간직하고 추억을 회상하라 권고하는 듯했다.
고디집의 주인은 할머니였다. 이모인지 고모인지 삼촌인지에게 물려받았다는데 과연 방 안쪽벽에 인증패가 걸려 있었다. 충청북도에서 인증한 ‘대물림 전통음식 계승업소’였다. 고디국 상차림은 잘생긴 청년이 해주었는데 할머니의 아들인지 조카인지 하여간 핏줄이었다.
올갱이국 한 숟가락을 떠먹고 나서 바로 이런 말이 나왔다.
“캬, 국물 죽이네. 속이 확 풀리는구먼.”
진한 된장국물에 올갱이의 초록향이 가득했으며 그야말로 해장 끝판왕이었다. 초록은 색이 아니라 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국물이었다. 술꾼들에게 추천하면서 부디 몸조심하길 기도해야 하는 이상한 날들이다. 이것으로 2024 추석 인사를 대신한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