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줄까, 뇌물을 줄까

설맞이 모임에서

by 포포

몇몇 직업인들이 명절을 앞두고 만났다. 그리고 선물의 고통에 대해, 슬픔에 대해, 애매함에 대해 얘기했다. 물론 개중에는 선물이 왜 고통이고 슬픔이고 애매함인지를 전혀 모르는 이도 있었다. 우선 자칭 선물 전문가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다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30% 이론이 있지요. 10만원짜리 선물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선물을 하는 입장에서는 10만원 이상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주는 사람은 13만원 이상의 가치를 매기고, 받는 사람도 그렇게 받아들여 주길 바랄 겁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은 반대가 됩니다. 선물을 받은 뒤 가격을 어림잡을 때 실제 값 이상으로 가늠하는 이는 드물거든요. 싸게 샀거나, 많은 이들에게 공통으로 돌린 것이려니 가볍게 넘기기 쉽죠. 실제 선물 값보다 30%쯤 낮게 평가한다는 겁니다.”


아름다운 행위의 대표선수인 선물에도 이런 약점이 있다니.

그가 강조한 것은 “고로, 선물의 내용을 신중하게 고려하라”는 거였다. 선물이 때론 마음을 이간질하는 독이 된다는 주의랄까.

“모든 선물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아, 진정 슬픈 것은 그의 위로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옆 사람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정곡을 찔렀다.

“어떤 점에선 뇌물이 더 정직한 거죠.”

옆의 옆에 앉은 기자가 말했다.

“뉴스도 일종의 선물입니다. 다른 상품들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때론 공짜로 친절하게 배달 서비스를 하죠. 요즘은 독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라 ‘듣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구요. 귀중한 정보들을 선물해 줘도 ‘귀한 것’을 받았다며 감사해 하질 않으니, 이런 경우는 –30%가 아니라 –70%는 될걸요?”


이쯤 되니 옆에 있던 작가도 한마디 했다.

“우리는 더해요. 지인이 식당을 내면 한 끼 식사를 하러 가주고, 옷가게를 내면 옷 한 벌 사주는 걸 예의로 아는 한국인들이잖아요. 그런데 작가가 책을 내면 ‘왜 선물해 주지 않느냐’고 서운해 하죠. 밥값, 옷값보다 더 싼 책인데 한 권쯤 사줄 생각은 안하고 데려 화를 내니 쩝.”

다행히 웃으며 하는 푸념이었다. 어이없거나 괴로워 미칠 표정이 아니라서 작가의 마음 씀이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


곧 설이다. 우리는 매년 두 번씩 ‘새해 복’을 선물한다. 양력설과 음력설을 연이어 맞으며 반복해서 “복 많이 받으시라” 기원해 준다. 말뿐인 선물이니 어떤 이간질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거야말로 멋진 선물이 아닌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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